외교력 업그레이드 한 부산 APEC 정상회의
어설픈 전시행정 비난도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합격점 평가 여론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감사의 인사를 건넬 정도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는 안전하고 성공적이었다.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제13차 부산 APEC 정상회의가 11월 19일 아무런 사고 없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숨 가쁘고 치밀한 준비 하에 열린 APEC의 모든 것을 정리해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라는 다자외교 무대와 4강을 비롯한 11개국 정상과의 양자 회담에서 한국의 외교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한편 경제ㆍ통상 분야에서의 실익도 적지 않게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제13차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역내 무역자유화의 이행방안을 담은 ‘부산 선언’과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오는 2006년 타결을 촉구하는 ‘DDA 특별성명’등 구체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이 같은 성과물들은 APEC 정상회의에 앞서 6개월 전부터 실무ㆍ장관급 조율을 진행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18ㆍ19일 이틀간의 정상회의를 통해 성과가 나온 것으로 개최국 외교역량을 세계에 과시하기 충분하다. 더욱이 이번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는 지난해 칠레 산티아고 APEC 정상회담이 반세계 물결로 이견만 확인한 채 좌초한 것과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노 대통령은 준비된 의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외에도 ‘APEC 역내 양극화 해소’라는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기도 했다.
개별 양자 회담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미ㆍ중ㆍ러ㆍ일 등 4강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해법의 긍정적 모멘텀을 유지하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경제ㆍ통상 분야의 실질적 협력을 한층 확대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관계를 ‘협력ㆍ동반자 관계’로 심화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김치분쟁 등 양국간 문제는 한중 우호협력 관계라는 큰 틀 속에서 원만히 합의해나가기로 한 것과 급증하는 교역증가를 감안해 무역마찰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점은 의미가 크다. 통상ㆍ교류의 확대는 한ㆍ러 정상회담에서도 이어졌다.
한ㆍ러 정상회담 후 채택된 ‘한ㆍ러간 경제ㆍ통상협력을 위한 행동계획’은 양국간 경제교류에 대한 포괄적 협력 계획을 담은 것으로 양국 물적ㆍ인적 교류의 새로운 이정표와 비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계획은 극동 시베리아 유전 및 가스 공동개발, 우주인 양성 프로그램, 시베리아 횡단철도 및 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사업 등을 망라하고 있다.
가장 주목을 끌었던 한ㆍ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장관급 전략대화 출범을 합의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여전히 ‘선 핵 폐기-후 경수로 지원’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해법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는 중국과 큰 괴리를 보여 후속 북핵 6자 회담이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다만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신사참배 등 과거사 인식에 대한 양국의 이견만 확인한 채 끝나 아쉬움이 남는다.
노 대통령은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18ㆍ19일 이틀 동안 분초를 쪼개 캐나다ㆍ칠레 등 6개국 릴레이 정상회담도 가졌다. 노 대통령은 한ㆍ아세안 FTA 교섭 과정에서 개성공단 물품을 FTA 대상 품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아세안 국가 정상들의 협력의사를 받아내기도 했다.
부시 “테러 및 안전 활동 훌륭”
APEC 정상회의의 성공 이면에는 안전에 관한 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는 각오로 빈틈없는 준비를 해온 관계 부처 및 기관들의 완벽한 대테러 활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 미 대통령도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19일 "대테러 및 안전 활동이 훌륭했다"고 현지 경호 실무책임자인 국가정보원 경호안전본부장을 격려하고 함께 기념촬영까지 했다. 특히 대테러 임무에 중추적 역할을 해온 국정원은 8월부터 2차장을 책임자로 하는 APEC 정보지원본부를 설치, 미 중앙정보국(CIA) 등 해외 정보기관과의 채널을 풀가동했다. 국정원은 이를 바탕으로 5천여 건의 국내외 `동향첩보'를 입수, 분석해 관계 기관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또 APEC이 열리는 부산을 비롯해 전국 11개 시.도에 국정원 지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지역 대테러안전본부를 설치, 24시간 대테러 상황실을 유지했다. 국정원 테러정보통합센터 대테러상황실도 24시간 체제를 유지하며 100여건의 폭발물 의심 신고를 받아 경찰, 군 등 관련기관과 현장에 출동, 현장 검증활동을 펼쳤다. 국정원은 이렇게 수집한 테러첩보 등을 기초로 법무부 등 유관기관과 협조, 88개국 테러용의자 5천여 명에 대해 입국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14개 국제공항 및 항만에도 `출입국 대책반'을 가동해 취약 국가 입국자에 대한 입국심사와 위해물품 검색활동을 강화했다. 또 국내 불법체류자 등 특이동향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내 체류상황을 점검하고 위해활동이 의심되는 인물에 대해서는 행적을 정밀 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대테러 관계자들은 특히 7월7일 발생한 런던 지하철 테러현장을 실사하고 이를 기초로 지하철 등 전국 1천300여개 주요 다중이용 시설에 대한 테러 대비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전하고 성공적인 APEC을 위해 전직 국정원 직원들도 동참했다. 국정원 전직 직원 100여명은 APEC 기간인 11월 15∼19일 서울 강남역 및 교대역 등 지하철역에서 ‘APEC 시민 지킴이’ 자원 활동을 벌였다.
5.1억불 외자유치+무형경제효과
이번 APEC을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 12개사로부터 총 5억1,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eBay)의 아태지역본부를 유치하는 한편 개성공단의 투자환경을 최초로 세계에 소개, 새로운 차원의 한반도 투자메리트를 알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시장경제지위(MES)를 부여해 교역확대의 기회를 마련했고,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의 진전을 촉구하는 ‘특별성명’을 채택해 교착상태에 빠진 DDA협상의 돌파구를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위성 DMB와 와이브로 단말기 등을 선보인 IT전시회를 통해 IT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을 뿐 아니라 부산지역의 관광수입 등으로 3,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11월 20일 APEC 성과 종합평가에서 "이번 제13차 APEC에서 우리나라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역내 무역과 투자의 활성화’를 위한 우리의 의지를 전 세계에 강하게 각인시켰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의장국으로서 우리 경제의 건전성과 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함으로써 국가와 기업의 브랜드가치를 한껏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는 APEC기간동안 유치한 외국인투자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국별 투자환경설명회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의 ITW, 홍콩의 뉴월드TNT, 캐나다의 마그나, 스위스 구델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총 5억1,000만 달러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아울러 34개 해외거점무역관을 통해 방한한 300명의 해외투자가와 2억2,000만 달러에 이르는 투자 상담 성과도 기록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의 아태지역 총괄본부를 서울에 설치하기로 한 것은 동북아 전자상거래허브로서의 도약을 꿈꾸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정부는 이베이의 아태지역본부 설치를 통해 향후 5년간 1조원 이상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APEC은 북한의 개성공단이 투자지역으로써 외국인들에게 최초로 선보이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개성공단이 한국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한 최적의 투자지로써 메리트를 지닌다는 점을 최대한 강조했다. 개성공단 설명회는 남북경협의 성공적인 진행을 홍보하는 한편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을 효과적으로 덜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APEC에 참석한 국내외 기업인 및 투자가들은 모두 2,000여명으로, 역내 투자활성화와 세계경제 자유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중국·러시아와 무역·투자관계 ‘돈독’
이번 APEC을 통해 우리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 역내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에도 큰 성과를 올렸다.
우선 중국과는 2012년까지 교역 2,000억 달러 달성, 중국에 시장경제지위 부여, 무역마찰 사전예방 등을 담은 `한중 무역투자협력 확대 MOU`를 체결해 향후 양국간 교역확대에 본격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된 식품위생안전과 관련, 한중 검사검역 고위급협의체를 조기에 마련키로 합의했을 뿐 아니라 한중 투자협력위원회를 투자와 무역을 포괄하는 한중 양국의 최고위급 협의체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해 양국간 통상관계가 더욱 발전될 수 있도록 길을 닦았다. 또 중국 서부대개발과 동북진흥계획에 대한 우리기업의 참여와 관련해 투자프로젝트 중심의 투자환경설명회와 연구회를 정례적으로 열어 양국 기업간 교류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도록 하자는 데도 양국은 뜻을 모았다.
러시아와는 경제·통상 협력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을 체결, 양국간 경제동반자로서의 장기적 비전을 마련했다. 명태쿼터의 추가배정에 따른 조업허가장을 신속히 발급해달라는 우리측 요청에 러시아측은 즉각적인 해결을 약속했고, 우리는 러시아측에서 요청한 시장경제지위 부여를 받아들이면서 양국간 협력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이밖에도 정부는 각국과의 양자정상회담과 한·아세안 통상장관회담을 통해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인정과 우리기업의 원전사업 참여 등에 대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베스트와 워스트
건국 이래 최대 외교행사라는 APEC 행사의 베스트(best)와 워스트(worst)를 꼽는다면?
각국 귀빈과 취재진의 눈길을 사로잡은 베스트는 단연 광안대교였다. 광안대교는 16일 오후 8시 30분부터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불꽃놀이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선언’ 발표장 배경이 되며 부산 APEC의 추억을 참가자들의 마음 깊이 새겼다. 그러나 불꽃놀이는 100만 명의 대이동을 유발해 교통통제가 뒤엉켜 난장판이 되고 만 ‘워스트’도 되고 말았다. 심지어 광안리 해수욕장서 축사를 한 반기문 외교부장관과 외국의 일부 각료급 귀빈들은 해운대 숙소까지 2시간 반 가량이나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벡스코 국제미디어센터(IMC)도 ‘베스트’와 ‘워스트’가 뒤섞인 평가를 받았다. 공동 브리핑룸에는 400여 개의 초고속 인터넷 선과 시내 전화가 무료로 제공돼 “역시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내ㆍ외신 기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외교통상부(총괄), 부산시(총괄), 산업자원부(투자환경설명회), 전국경제인연합회(CEO 서밋) 등으로 나누어 진행된 행사를 일괄적으로 취합하는 언론 창구가 없어 취재에 큰 혼선을 빚었다.
IT 특별 전시관에 선보인 아인슈타인의 얼굴의 휴먼 로봇‘알베르트 휴보’도 베스트였다. 사람처럼 걷고 움직이는 것은 물론 다양한 표정으로 감정까지 표현하는 이 로봇에 대한 외국 정상과 부인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각국 정상의 에스코트 역시 완벽에 가까운 타이밍을 연출하며 감탄을 자아냈다. 해운대구의 5개 호텔에서 출발했지만 의전용 차량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정상회의장에 정확히 1분 간격으로 도착했다.
일부 정상은 순서가 바뀌기도 했지만 정상을 영접하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다른 나라 정상들이 기다리지 않기 위해 수십 차례 모의훈련을 한 결과다. 또 90%가 훨씬 넘은 부산시민의 2부제 준수율도 베스트로 꼽을 수 있다.
거물급 재계 인사들이 일반 객실에 묵어야 했고, 외국인 신청자가 너무 적어 투어 코스를 한번도 운행하지 못하는 등 관광 및 숙박 인프라가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 낡은 건물이 모인 곳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임시벽으로 가린 전시행정도 부산 서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중 하나다.
APEC 뒷이야기
정상들이 묵었던 해운대 특급호텔에서 여러 가지 뒷얘기들이 무성하다. 11월 18일 제1차 정상회의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마이클 소마레 파푸아 뉴기니 총리는 옷에 달린 금장 단추 하나가 떨어졌다며 호텔측에 급히 SOS를 요청했다.
호텔 직원이 객실로 올라갔으나 떨어진 단추는 찾을 수 없었고 여분의 단추도 새 것이라서 나머지 단추들에 비해 반짝거려 어울리지 않았다. 호텔측은 여분의 단추를 사포로 문지르고 약품을 처리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여전히 색깔이 바랜 다른 단추들과 비슷한 색을 내기 힘들었다. 호텔측은 고심 끝에 가지고 있던 모든 종류의 단추를 갖고 올라가 옷에 대어보고 제일 어울리는 것을 선택해 모든 단추를 교체했다. 소마레 총리는 “원더풀” “탱큐” 를 연발했다고 한다.
쩐 득 렁 베트남 주석과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는 한국 라면을 좋아해 룸서비스로 라면을 주문했고 호텔측은 천연 양념으로 국물 맛을 낸 특별 라면을 제공했다.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은 호텔 내 이탈리아 식당을 찾았다가 18일 열린 정상만찬에 사용된 칠레산 몬테스 와인이 판촉 행사의 일환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직접 이 와인을 주문했다. 건강식을 좋아하는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을 위해 호텔측은 직접 만든 무설탕 쿠키류와 샌드위치 등을 제공했고 아로요 대통령은 호텔을 떠날 때 자신을 돌본 직원들에게 일일이 향수를 선물해 여성 정상의 섬세함을 보였다고 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도착한 다음날인 11월 17일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1시간 동안 자전거 하이킹을 즐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자전거를 탄 장소는 뜻밖에도 미군 부대가 아닌 국군 부대였다.
당초 물 샐 틈 없는 통제가 이뤄지고 있던 누리마루 하우스 순환도로와 국군 부대 2개 안이 검토됐으나 미국측은 한국측이 추천한 국군 부대를 둘러본 뒤 승낙 했다. 그가 자전거를 탄 부대는 해운대에서 10분가량 떨어진 부산 외곽 군부대였다.
APEC 회원국 정상 가운데 부산에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은 여성인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였다. 각국 정상의 정상회의장 도착 및 영접은 11월 18일 오후 1시 25분부터였으나 클라크 총리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전 11시 25분. 클라크 총리는 당초 국내선으로 부산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제1차 정상회의에도 지각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경호안전통제단은 즉시 인천공항에 대기 중이던 공군 수송기를 활용키로 결정, 클라크 총리는 12시 1분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하지만 통상 민간인 항로를 이용할 경우 비행시간만 55분이 걸리므로 공군이 부산까지 일직선으로 운항할 수 있는 항로를 열어 주었고 클라크 총리는 40분 만에 부산에 도착, 지각을 면했다.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모두 참석하는 행사에는 사전에 입장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18일 벡스코에서의 1차 정상회의 때는 알파벳 순, 그날 공식만찬 때는 알파벳 중간인 ‘N’ (뉴질랜드)부터, 19일 2차 정상회의 때는 알파벳 역순으로 각각 도착하기로 사전에 조율이 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순서가 몇 번 바뀌었는데 순서를 지키려다 행사가 지연되는 일을 막기 위해 경호안전통제단이 그때그때 적절하게 순서를 조절했다고 한다.
폐막을 앞두고 누리마루 하우스 옆에서 찍은 기념사진도 사전에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상 중 가장 키가 작은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아로요 대통령은 당초 뒷줄에 배정됐으나 앞줄의 폴 마틴 캐나다 총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바꾸었다.
어설픈 전시행정 비난도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합격점 평가 여론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감사의 인사를 건넬 정도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는 안전하고 성공적이었다.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제13차 부산 APEC 정상회의가 11월 19일 아무런 사고 없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숨 가쁘고 치밀한 준비 하에 열린 APEC의 모든 것을 정리해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라는 다자외교 무대와 4강을 비롯한 11개국 정상과의 양자 회담에서 한국의 외교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한편 경제ㆍ통상 분야에서의 실익도 적지 않게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제13차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역내 무역자유화의 이행방안을 담은 ‘부산 선언’과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오는 2006년 타결을 촉구하는 ‘DDA 특별성명’등 구체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이 같은 성과물들은 APEC 정상회의에 앞서 6개월 전부터 실무ㆍ장관급 조율을 진행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18ㆍ19일 이틀간의 정상회의를 통해 성과가 나온 것으로 개최국 외교역량을 세계에 과시하기 충분하다. 더욱이 이번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는 지난해 칠레 산티아고 APEC 정상회담이 반세계 물결로 이견만 확인한 채 좌초한 것과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노 대통령은 준비된 의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외에도 ‘APEC 역내 양극화 해소’라는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기도 했다.
개별 양자 회담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미ㆍ중ㆍ러ㆍ일 등 4강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해법의 긍정적 모멘텀을 유지하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경제ㆍ통상 분야의 실질적 협력을 한층 확대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관계를 ‘협력ㆍ동반자 관계’로 심화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김치분쟁 등 양국간 문제는 한중 우호협력 관계라는 큰 틀 속에서 원만히 합의해나가기로 한 것과 급증하는 교역증가를 감안해 무역마찰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점은 의미가 크다. 통상ㆍ교류의 확대는 한ㆍ러 정상회담에서도 이어졌다.
한ㆍ러 정상회담 후 채택된 ‘한ㆍ러간 경제ㆍ통상협력을 위한 행동계획’은 양국간 경제교류에 대한 포괄적 협력 계획을 담은 것으로 양국 물적ㆍ인적 교류의 새로운 이정표와 비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계획은 극동 시베리아 유전 및 가스 공동개발, 우주인 양성 프로그램, 시베리아 횡단철도 및 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사업 등을 망라하고 있다.
가장 주목을 끌었던 한ㆍ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장관급 전략대화 출범을 합의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여전히 ‘선 핵 폐기-후 경수로 지원’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해법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는 중국과 큰 괴리를 보여 후속 북핵 6자 회담이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다만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신사참배 등 과거사 인식에 대한 양국의 이견만 확인한 채 끝나 아쉬움이 남는다.
노 대통령은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18ㆍ19일 이틀 동안 분초를 쪼개 캐나다ㆍ칠레 등 6개국 릴레이 정상회담도 가졌다. 노 대통령은 한ㆍ아세안 FTA 교섭 과정에서 개성공단 물품을 FTA 대상 품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아세안 국가 정상들의 협력의사를 받아내기도 했다.
부시 “테러 및 안전 활동 훌륭”
APEC 정상회의의 성공 이면에는 안전에 관한 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는 각오로 빈틈없는 준비를 해온 관계 부처 및 기관들의 완벽한 대테러 활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 미 대통령도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19일 "대테러 및 안전 활동이 훌륭했다"고 현지 경호 실무책임자인 국가정보원 경호안전본부장을 격려하고 함께 기념촬영까지 했다. 특히 대테러 임무에 중추적 역할을 해온 국정원은 8월부터 2차장을 책임자로 하는 APEC 정보지원본부를 설치, 미 중앙정보국(CIA) 등 해외 정보기관과의 채널을 풀가동했다. 국정원은 이를 바탕으로 5천여 건의 국내외 `동향첩보'를 입수, 분석해 관계 기관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또 APEC이 열리는 부산을 비롯해 전국 11개 시.도에 국정원 지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지역 대테러안전본부를 설치, 24시간 대테러 상황실을 유지했다. 국정원 테러정보통합센터 대테러상황실도 24시간 체제를 유지하며 100여건의 폭발물 의심 신고를 받아 경찰, 군 등 관련기관과 현장에 출동, 현장 검증활동을 펼쳤다. 국정원은 이렇게 수집한 테러첩보 등을 기초로 법무부 등 유관기관과 협조, 88개국 테러용의자 5천여 명에 대해 입국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14개 국제공항 및 항만에도 `출입국 대책반'을 가동해 취약 국가 입국자에 대한 입국심사와 위해물품 검색활동을 강화했다. 또 국내 불법체류자 등 특이동향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내 체류상황을 점검하고 위해활동이 의심되는 인물에 대해서는 행적을 정밀 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대테러 관계자들은 특히 7월7일 발생한 런던 지하철 테러현장을 실사하고 이를 기초로 지하철 등 전국 1천300여개 주요 다중이용 시설에 대한 테러 대비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전하고 성공적인 APEC을 위해 전직 국정원 직원들도 동참했다. 국정원 전직 직원 100여명은 APEC 기간인 11월 15∼19일 서울 강남역 및 교대역 등 지하철역에서 ‘APEC 시민 지킴이’ 자원 활동을 벌였다.
5.1억불 외자유치+무형경제효과
이번 APEC을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 12개사로부터 총 5억1,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eBay)의 아태지역본부를 유치하는 한편 개성공단의 투자환경을 최초로 세계에 소개, 새로운 차원의 한반도 투자메리트를 알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시장경제지위(MES)를 부여해 교역확대의 기회를 마련했고,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의 진전을 촉구하는 ‘특별성명’을 채택해 교착상태에 빠진 DDA협상의 돌파구를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위성 DMB와 와이브로 단말기 등을 선보인 IT전시회를 통해 IT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을 뿐 아니라 부산지역의 관광수입 등으로 3,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11월 20일 APEC 성과 종합평가에서 "이번 제13차 APEC에서 우리나라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역내 무역과 투자의 활성화’를 위한 우리의 의지를 전 세계에 강하게 각인시켰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의장국으로서 우리 경제의 건전성과 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함으로써 국가와 기업의 브랜드가치를 한껏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는 APEC기간동안 유치한 외국인투자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국별 투자환경설명회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의 ITW, 홍콩의 뉴월드TNT, 캐나다의 마그나, 스위스 구델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총 5억1,000만 달러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아울러 34개 해외거점무역관을 통해 방한한 300명의 해외투자가와 2억2,000만 달러에 이르는 투자 상담 성과도 기록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의 아태지역 총괄본부를 서울에 설치하기로 한 것은 동북아 전자상거래허브로서의 도약을 꿈꾸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정부는 이베이의 아태지역본부 설치를 통해 향후 5년간 1조원 이상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APEC은 북한의 개성공단이 투자지역으로써 외국인들에게 최초로 선보이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개성공단이 한국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한 최적의 투자지로써 메리트를 지닌다는 점을 최대한 강조했다. 개성공단 설명회는 남북경협의 성공적인 진행을 홍보하는 한편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을 효과적으로 덜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APEC에 참석한 국내외 기업인 및 투자가들은 모두 2,000여명으로, 역내 투자활성화와 세계경제 자유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중국·러시아와 무역·투자관계 ‘돈독’
이번 APEC을 통해 우리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 역내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에도 큰 성과를 올렸다.
우선 중국과는 2012년까지 교역 2,000억 달러 달성, 중국에 시장경제지위 부여, 무역마찰 사전예방 등을 담은 `한중 무역투자협력 확대 MOU`를 체결해 향후 양국간 교역확대에 본격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된 식품위생안전과 관련, 한중 검사검역 고위급협의체를 조기에 마련키로 합의했을 뿐 아니라 한중 투자협력위원회를 투자와 무역을 포괄하는 한중 양국의 최고위급 협의체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해 양국간 통상관계가 더욱 발전될 수 있도록 길을 닦았다. 또 중국 서부대개발과 동북진흥계획에 대한 우리기업의 참여와 관련해 투자프로젝트 중심의 투자환경설명회와 연구회를 정례적으로 열어 양국 기업간 교류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도록 하자는 데도 양국은 뜻을 모았다.
러시아와는 경제·통상 협력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을 체결, 양국간 경제동반자로서의 장기적 비전을 마련했다. 명태쿼터의 추가배정에 따른 조업허가장을 신속히 발급해달라는 우리측 요청에 러시아측은 즉각적인 해결을 약속했고, 우리는 러시아측에서 요청한 시장경제지위 부여를 받아들이면서 양국간 협력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이밖에도 정부는 각국과의 양자정상회담과 한·아세안 통상장관회담을 통해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인정과 우리기업의 원전사업 참여 등에 대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베스트와 워스트
건국 이래 최대 외교행사라는 APEC 행사의 베스트(best)와 워스트(worst)를 꼽는다면?
각국 귀빈과 취재진의 눈길을 사로잡은 베스트는 단연 광안대교였다. 광안대교는 16일 오후 8시 30분부터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불꽃놀이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선언’ 발표장 배경이 되며 부산 APEC의 추억을 참가자들의 마음 깊이 새겼다. 그러나 불꽃놀이는 100만 명의 대이동을 유발해 교통통제가 뒤엉켜 난장판이 되고 만 ‘워스트’도 되고 말았다. 심지어 광안리 해수욕장서 축사를 한 반기문 외교부장관과 외국의 일부 각료급 귀빈들은 해운대 숙소까지 2시간 반 가량이나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벡스코 국제미디어센터(IMC)도 ‘베스트’와 ‘워스트’가 뒤섞인 평가를 받았다. 공동 브리핑룸에는 400여 개의 초고속 인터넷 선과 시내 전화가 무료로 제공돼 “역시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내ㆍ외신 기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외교통상부(총괄), 부산시(총괄), 산업자원부(투자환경설명회), 전국경제인연합회(CEO 서밋) 등으로 나누어 진행된 행사를 일괄적으로 취합하는 언론 창구가 없어 취재에 큰 혼선을 빚었다.
IT 특별 전시관에 선보인 아인슈타인의 얼굴의 휴먼 로봇‘알베르트 휴보’도 베스트였다. 사람처럼 걷고 움직이는 것은 물론 다양한 표정으로 감정까지 표현하는 이 로봇에 대한 외국 정상과 부인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각국 정상의 에스코트 역시 완벽에 가까운 타이밍을 연출하며 감탄을 자아냈다. 해운대구의 5개 호텔에서 출발했지만 의전용 차량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정상회의장에 정확히 1분 간격으로 도착했다.
일부 정상은 순서가 바뀌기도 했지만 정상을 영접하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다른 나라 정상들이 기다리지 않기 위해 수십 차례 모의훈련을 한 결과다. 또 90%가 훨씬 넘은 부산시민의 2부제 준수율도 베스트로 꼽을 수 있다.
거물급 재계 인사들이 일반 객실에 묵어야 했고, 외국인 신청자가 너무 적어 투어 코스를 한번도 운행하지 못하는 등 관광 및 숙박 인프라가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 낡은 건물이 모인 곳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임시벽으로 가린 전시행정도 부산 서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중 하나다.
APEC 뒷이야기
정상들이 묵었던 해운대 특급호텔에서 여러 가지 뒷얘기들이 무성하다. 11월 18일 제1차 정상회의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마이클 소마레 파푸아 뉴기니 총리는 옷에 달린 금장 단추 하나가 떨어졌다며 호텔측에 급히 SOS를 요청했다.
호텔 직원이 객실로 올라갔으나 떨어진 단추는 찾을 수 없었고 여분의 단추도 새 것이라서 나머지 단추들에 비해 반짝거려 어울리지 않았다. 호텔측은 여분의 단추를 사포로 문지르고 약품을 처리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여전히 색깔이 바랜 다른 단추들과 비슷한 색을 내기 힘들었다. 호텔측은 고심 끝에 가지고 있던 모든 종류의 단추를 갖고 올라가 옷에 대어보고 제일 어울리는 것을 선택해 모든 단추를 교체했다. 소마레 총리는 “원더풀” “탱큐” 를 연발했다고 한다.
쩐 득 렁 베트남 주석과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는 한국 라면을 좋아해 룸서비스로 라면을 주문했고 호텔측은 천연 양념으로 국물 맛을 낸 특별 라면을 제공했다.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은 호텔 내 이탈리아 식당을 찾았다가 18일 열린 정상만찬에 사용된 칠레산 몬테스 와인이 판촉 행사의 일환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직접 이 와인을 주문했다. 건강식을 좋아하는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을 위해 호텔측은 직접 만든 무설탕 쿠키류와 샌드위치 등을 제공했고 아로요 대통령은 호텔을 떠날 때 자신을 돌본 직원들에게 일일이 향수를 선물해 여성 정상의 섬세함을 보였다고 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도착한 다음날인 11월 17일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1시간 동안 자전거 하이킹을 즐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자전거를 탄 장소는 뜻밖에도 미군 부대가 아닌 국군 부대였다.
당초 물 샐 틈 없는 통제가 이뤄지고 있던 누리마루 하우스 순환도로와 국군 부대 2개 안이 검토됐으나 미국측은 한국측이 추천한 국군 부대를 둘러본 뒤 승낙 했다. 그가 자전거를 탄 부대는 해운대에서 10분가량 떨어진 부산 외곽 군부대였다.
APEC 회원국 정상 가운데 부산에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은 여성인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였다. 각국 정상의 정상회의장 도착 및 영접은 11월 18일 오후 1시 25분부터였으나 클라크 총리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전 11시 25분. 클라크 총리는 당초 국내선으로 부산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제1차 정상회의에도 지각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경호안전통제단은 즉시 인천공항에 대기 중이던 공군 수송기를 활용키로 결정, 클라크 총리는 12시 1분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하지만 통상 민간인 항로를 이용할 경우 비행시간만 55분이 걸리므로 공군이 부산까지 일직선으로 운항할 수 있는 항로를 열어 주었고 클라크 총리는 40분 만에 부산에 도착, 지각을 면했다.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모두 참석하는 행사에는 사전에 입장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18일 벡스코에서의 1차 정상회의 때는 알파벳 순, 그날 공식만찬 때는 알파벳 중간인 ‘N’ (뉴질랜드)부터, 19일 2차 정상회의 때는 알파벳 역순으로 각각 도착하기로 사전에 조율이 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순서가 몇 번 바뀌었는데 순서를 지키려다 행사가 지연되는 일을 막기 위해 경호안전통제단이 그때그때 적절하게 순서를 조절했다고 한다.
폐막을 앞두고 누리마루 하우스 옆에서 찍은 기념사진도 사전에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상 중 가장 키가 작은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아로요 대통령은 당초 뒷줄에 배정됐으나 앞줄의 폴 마틴 캐나다 총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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