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간 합의점 찾지 못하고 극한대립 치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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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간 합의점 찾지 못하고 극한대립 치달아
  • 지유석 기자
  • 승인 2012.04.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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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군, 정부 간 소통의 활로 뚫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2월 국가정책조정회의가 해군기지 건설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이 회의에서 15만t급 크루즈 선박이 보다 안전하게 입출항 할 수 있도록 일부 시설을 보완하기로 하는 한편 주변지역 발전을 위한 1조 771억 원 규모의 사업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뒤이어 해군은 구럼비 바위 발파를 실시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프로젝트는 2015년까지 9,776억 원을 들여 이지스함을 포함한 해군함정 20여 척과 최대 15만t급 크루즈 선박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49만㎡ 규모의 기지건설을 뼈대로 한다.
이 구상이 처음 제기된 시점은 문민정부 시절인 1993년이다. 대한민국 수출입 물동량의 99.8%가 제주 남방해역을 지나는 까닭에 인근해역 안전 확보가 절실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 구상은 노무현 정권 말기였던 2007년 구체화돼 그해 5월 강정마을이 후보지로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제주도가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4.3%의 주민들이 찬성했다. 이어 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는 이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승격시켰다.

순탄치 않은 해군기지 건설사업

하지만 사업진행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2010년 12월 공사가 시작된 후 2012년 1월 현재 진척도는 23%에 불과하다. 2011년 6월 말 공유수면 준설공사에 접어들면서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닥뜨려 공사가 3개월가량 중단된 때문이었다.
지난 해 9월 공사가 재개되기는 했지만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게다가 국회는 지난 12월31일 해군기지 건설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정부는 1,327억 원의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해군기지 건설 절차의 부당성과 목적의 부적합성을 제기하며 전액 삭감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선 탓이었다. 이에 국회예산결산위원회는 민주통합당의 요구를 수용해 정부 원안에서 1,278억 원 삭감한 49억 원으로 예산을 책정했고 본회의에서 이 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삭감된 예산은 항만 등 기지 시설공사 1,065억 원, 토지 보상비 196억 원, 설계 조사비 38억 원, 감리비 24억 원 등이다. 설계비 38억 원, 보상비 11억 원 정도가 간신히 국회심의를 통과했을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지건설 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대형악재가 터져 나왔다. 2월17일 국무총리실 산하 ‘15만t 크루즈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가 “제주해군기지 항만설계는 15만t급 크루즈 선박 입·출항이 사실상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기술검증 결과보고서를 채택한 것이다.
검증위는 설계 조건에서 선박조종 시뮬레이션의 운항난이도를 검토한 결과 15만t급 크루즈 여객선이 서방파제를 입·출항할 때 운항난이도(기준 1~7등급)가 각각 7, 6등급으로 최고 난이도에 해당돼 여객선이 자유롭게 입·출항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동안 해군은 제주해군기지가 ‘민·군 복합항이자 관광미항’으로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검증위 보고서는 해군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셈이었다. 보고서 내용이 알려진 직후 즉각 제주 강정마을회와 제주군사기지범대위 등은 제주특별자치도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해군과 정부 당국은 공사강행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해군 측은 2011년에 집행하지 못한 해군기지 관련 예산 1,000여억 원을 2012년으로 이월해 공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증위 보고서와 관련해  해명브리핑을 열고 “제주해군기지는 현재의 설계로도 크루즈 선박 운영이 가능한 상태로 (검증위의 결론대로) 추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해서 설계에 근본적 오류가 있다거나 입·출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보고서 내용을 정면 반박했다.

정부도 해군에게 힘을 실어줬다. 2월29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국방부, 국토해양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강정 해군기지가 “남방해역의 안정적인 관리에 필수 시설이자 제주지역 주민의 소득증대 및 일자리 창출 등 제주 경제발전에 중요한 국가사업”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15만t급 크루즈 선이 자유롭게 입·출항 하기 어렵다는 검증위 보고서에 대해선 한국해양대가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근거로 크루즈선의 입출항이 전반적으로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해양대의 보고서는 검증위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반영해 선박조종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현재 항만설계 상태에서도 15만t급 크루즈 선의 입출항이 전반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 이 보고서는 항만구조물을 재배치(서측 돌제부두 조정)하면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 안전성이 더욱 향상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부는 2015년까지 계획대로 사업을 완공하기 위해 3월부터 공사를 본격 추진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정부는 또 향후 10년 간 국비 5,787억 원(지방비 1,710억 원, 민자 3,274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회의를 주재한 김황식 총리는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사업에 대한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이나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을 끝내고, 훌륭한 항만건설과 제주지역 발전을 위해 민, 관, 군이 합심해야 할 때”라면서 “그간 공사중단으로 지연된 공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계획대로 2015년까지 제주 민군복합항이 세계적인 관광미항으로 건설될 수 있도록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국가정책조정회의 이후 해군기지 건설 공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서귀포경찰서는 3월6일 해군기지 시공사가 신청한 ‘화약류 사용 및 양도, 양수 허가신청’을 승인했다. 바로 다음 날인 7일 발파가 시작됐다. 해군은 21일 1.5t의 폭약을 동원해 구럼비 바위 본 발파를 실시했다. 한편 해군은 강정 앞바다에서도 준설선을 동원해 해저 평탄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거세지는 반발

정부와 해군이 공사강행 입장을 밝히자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발파가 시작된 3월7일부터 강정 마을엔 전운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주민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주민들은 정부가 주민들과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기지건설을 밀어 붙인다고 입을 모은다. 강정이 사업예정지로 결정된 시점은 2007년 5월14일이었다. 해직언론인이 주축이 돼 만드는 대안언론 ‘뉴스타파’는 이 당시 화순, 위미가 물망에 올랐을 뿐 강정은 후보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해군기지 유치 문제는 2007년 4월21일 마을 운영위원회에서 공식거론 됐는데, 이 자리에서 찬반토론이나 의견수렴 없이 유치로 여론이 모아졌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후보지역별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정 56.0%, 화순 42.2%, 위미 36.1%로 찬성여론이 나타나 강정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정 주민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주민들은 여론조사엔 불과 80여명만이 참석했으며 대부분이 해녀였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심지어 김태환 前 제주지사가 화순, 위미가 해녀들의 반발에 부딪혀 사업이 어렵게 되자 강정에선 이들을 회유했다는 의혹마저 제기했다.

갈등의 중심, 구럼비 바위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강하게 반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구럼비 바위다. 주민들에 따르면 해변을 따라 1.2km가량 펼쳐지는 구럼비 바위는 전세계적으로 강정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바위다. 게다가 바위틈에서 용천수가 샘솟아 이곳 주민들은 물론 서귀포 시민들의 식수원이 되고 있다.
주민들은 또 용천수로 인해 습지가 형성됐고, 이곳에 천연기념물 442호 ‘연산호’ 군락과 멸종위기종 ‘붉은발 말똥게’, 은어 등 온갖 희귀종들이 서식하는 생명의 보금자리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은 구럼비 바위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주민들은 특히 ‘할망물’로 불리는 용천수를 신성시 한다. 예로부터 이 마을 주민들은 이 물로 토신제를 지내는 한편 정성을 드릴 때 정화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실제 구럼비 바위와 주변해안은 2004년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같은 해 제주도도 이곳을 절대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런 탓에 발파가 실시되자 주민들은 일제히 “구럼비 바위 발파는 단순히 바위 하나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그리고 마을의 영혼을 부수는 행위”라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해군의 입장은 단호하다. 사업주체인 제주해군기지사업단은 3월9일 보도자료를 내고 “강원대학교와 부산대학교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및 평가에서 보존가치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지 않는다”면서 반대주장을 일축했다.

사업단은 “구럼비 바위는 195km에 달하는 제주도 해안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안 노출암이며, 이들 바위 인근에는 ‘까마귀쪽 나무’가 자생하는 데 이 나무를 제주방언으로 ‘구럼비’라고 하고 이 해안 노출암을 구럼비 바위”라며 구럼비의 보존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문화재청 역시 해군의 입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문화재청은 3월13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0년 10월5일 천연기념물분과위원장과 지질전공 문화재위원이 현지조사를 시행한 결과 구럼비 해안은 제주도 해안 곳곳의 현무암질 용암류가 노출되어 있는 평편한 해안과 유사하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특별한 비교우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또 “2011년 11월4일 문화재위원 3명이 개구럼비당 등 중요민속문화재 지정-보존 가치를 조사했고, 그해 12월 문화재위원회 민속문화재분과에 ‘중요민속문화재 지정가치 검토’ 안건을 상정했으나, 마을 단위에서의 민속적 가치는 인정되지만 역사성이나 학술성 부족을 이유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구럼비 바위의 보존가치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구럼비 해안에서 보이는 범섬 일대는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지다. 2002년 유네스코는 이 일대를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구럼비 해안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보전지역에서 제외돼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측은 “만약 구럼비 바위와 주변 지역 전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경우 해녀들이 물질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것을 고려해 범섬 일대만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구럼비 바위와 주변해안은 절대 보전지역에서 해제된 상태다.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자 2009년 12월 제주도 의회가 보전지역 해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기지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도의회의 결정에 하자가 있다고 본다. 보전지역 해제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 당시 도의회는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한나라당은 수적 우위를 이용해 날치기 통과시켰다.
주민들의 이야기와 사태의 흐름을 종합해보면 부지선정에서부터 구럼비 바위의 절대보전지역 해제, 그리고 공사진행과 발파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의사는 철저하게 배제돼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을 평범한 자영업자라고 소개한 한 주민은 “제발 정부가 주민들을 설득해줬으면 한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정부와 해군 측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강정 주민들과 공권력 사이의 갈등

현재 강정 마을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돈다. 첨예한 긴장감이 감도는 장소가 바로 강정교라고 불리는 조그만 다리다. 해군기지 건설현장으로 가려면 이 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다리 하나를 두고 주민들과 경찰은 극한 대치를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경찰이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민뿐만이 아니다. 천주교계도 공권력 남용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사실 천주교계는 사업 초기부터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지난 2007년 5월 제주교구 사제들은 ‘제주해군기지 철회’를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함께 단식 기도회를, 2011년 11월 해군기지 공사중단과 생명평화실현 염원을 위한 단식기도회를 갖기도 했다.

이 와중에 지난 1월10일 경찰이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 정문 앞에서 건설 중단을 위한 153배와 묵주기도를 하던 수녀 18명을 연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천주교계는 즉각 반발했다. 1월31일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이하 천주교연대)’와 ‘한국 천주교 여자 수도자 장상연합회(이하 장상연합회)’는 시국미사를 개최했다.
이 미사에서 사제와 수녀들은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시국미사를 주관한 천주교연대와 장상연합회는 경찰의 수녀연행이 “한국 천주교 220년의 역사 속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초의 사건”이라면서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인권, 반평화 행위들을 묵과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강정마을회와 제주참여환경연대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올해 2월27일까지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경찰에 체포, 연행된 사람들이 329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올해 1월과 2월, 두 달간 연행된 이들만 109명이다.
경찰은 질서유지를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찰의 연행이 비단 주민에게만 국한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3월9일 활동가들 29명이 펜스를 뚫고 공사현장 진입을 시도했다. 현장에 진입한 이들은 문규현 신부, 이영찬 신부, 박도현 수사, 김정욱 신부, 이영훈 목사 등 종교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영국출신의 평화운동가이자 노벨 평화상 후보인 엔지 젤터와 프랑스 출신 활동가 벤자민 모네도 섞여 있었다.

이들은 경찰과 현장 경비업체 직원에게 체포돼 연행됐다. 벤자민 모네는 즉각 출국조치를 당했다. 엔지 젤터 역시 출국권고 명령을 받고 3월22일 한국을 떠났다. 김정욱 신부와 이영훈 목사는 구속 처분을 받았다. 국책사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종교인이 구속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볼 수도 있는 정황이다.
해군은 3월21일 1.5t의 화약을 동원해 구럼비 바위 일대에 대한 발파작업을 벌였다. 이러자 또 다시 반발이 거세지는 양상이다. 타겟은 기지건설 시공사인 삼성물산이다. 예수회는 기지건설 시공사인 삼성물산 서초동 본관 앞에서 매일 오후 8시 ‘구럼비 폭파 중지와 삼성물산 회개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삼성카드 불매 운동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출발에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주민들과 사업주체인 군, 그리고 정부 사이에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소통의 부재는 극한대치로 나타나고 있다.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답은 가까운데 있다. 소통의 활로를 뚫는 일이 사태해결의 첫 단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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