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마침내 야권 연대를 이뤄냈다. 이를 이루기까지 양당 내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통합진보당에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식의 소모적 공방이 여러 차례 오고갔다. 야권 연대의 한 축인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가 후보에서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야권 연대는 수차례의 산고 끝에 얻어진 귀한 열매인 셈이다.
야권 연대의 필요성은 아래로부터 분출됐다.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염증을 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인 이른바 '反MB' 정서는 집권 말기로 접어들면서 노골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집권 마지막해인 올해 반MB 정서는 정점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4대강 사업 부실공사,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부정선거,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등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으로서는 국민들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결집해 정책대안으로 연결시켜야 했다. 무엇보다 야권은 심판을 별러왔다. 야권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이어 2008년 총선거에서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잇달아 패배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의회 과반인 153석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한나라당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켜 나갔다. 쟁점 법안의 경우는 특히 심했다. 지난 해 11월22일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처리과정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반MB정서가 비등한 데 비해 야권은 국민들의 요구에 재빨리 반응하는데 실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정치적 역량이 부족한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석패율제에 합의하는 한편, 공천과정에서는 계파간 나눠먹기식으로 일관했다. 공천 심의위원회 구성 및 공천결과에 반발해 문성근, 박영선 최고위원이 사퇴의사를 밝히는 등 당내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야권은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 현 정권의 실책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의를 거스를 수 없다는데 야권이 입장을 같이해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심한 난항이 있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정당은 특히 후보 단일화를 위한 지역구 경선 실시를 놓고 이견대립을 드러냈다.
산고를 겪은 야권연대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심야협상 끝에 3월10일 마침내 합의에 도달했다. 양당은 수도권의 경우 수도권의 경우 경기 성남 중원, 의정부을, 파주을, 인천 남구갑 등 4곳을 전략지역으로 지정했다. 또 서대문을, 마포을, 양천을, 금천, 영등포갑, 관악갑, 관악을 등 75곳은 경선을 치르며, 경선은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오는 17일~18일 양일에 걸쳐 진행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양당의 야권연대 합의에 따라 후보 단일화는 탄력을 받는 듯 했다. 하지만 야권연대의 근간을 흔들 초대형 악재가 연이어 불거져 나왔다. 악재의 진원지는 관악을이었다. 이 지역구는 민주당 김희철 의원과 이정희 대표가 맞붙은 지역이었다.
여론조사 실시 직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김 의원이 이 대표를 약 4~5% 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었다. 김 의원이 두 차례 구청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 대표가 경선에서 패배했을 경우 그 파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야권연대의 한 축을 이루는 인물이었다. 만약 그녀가 낙마한다면 야권연대의 의미 자체가 퇴색할 위험마저 배제하지 못했다. 특히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잇달아 지지를 표했고, 여론조사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독려했다. 조국 교수, 대한성공회 송경용 신부, 선대인 경제연구소 소장 등 유명 인사들도 이정희 대표 구하기 대열에 동참했다.
박빙으로 펼쳐질 것 같았던 경선은 김 의원 쪽에서 악재가 불거지면서 이 대표 쪽으로 기울었다. 여론조사를 하루 앞둔 3월16일 김 의원 사무실에서 "관악의 지역발전 종북좌파에게 맡길 수 없다"고 적힌 현수막이 걸린 사실이 한 인터넷 언론의 보도로 알려졌다.
이른바 '색깔론'이 고개를 든 것이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진보색채가 강한 이 대표를 다분히 의식한 문구였다. 이 대표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 대표는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단일화 경선을 치르면서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은 야권단일 후보로서 자격 미달"이라며 "통합진보당 대표인 나를 상대로 종북좌파라는 표현을 쓴 것은 연대에 대한 기본을 파기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야권 대선 유력주자인 문재인 후보도 쓴 소리를 했다. 문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당내 누구라도 이념적 색깔공세를 한다면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친북좌파니 종북좌파니 하는 표현부터 정치권에서 추방돼야 공존과 타협이 가능한 정치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색깔론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이 대표를 적극 지지했던 트위터 이용자들도 색깔론을 들고 나온 김 의원을 거세게 비판했다. 판세는 이 대표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경선 결과 이정희 대표가 야권 단일화후보로 결정됐다. 이 대표 외에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 등 통합진보당의 간판 의원들도 경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야권 단일후보의 진용이 갖춰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 대표 측에서 메가톤급 악재가 터져 나왔다. 이 대표 측 조 모 보좌관과 박 모 국장이 여론조사 조작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당원들에게 '여론조사 응답시 20∼30대로 응답하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 200여 통을 보냈다는 의혹을 받았다. 문제의 문자 메시지는 인터넷에 공개돼 빠르게 확산됐다.
이 대표는 3월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의혹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이러자 민주당 측에서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지원 최고위원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진보의 생명은 도덕성"이라며 이 대표를 질타했다. 이어 당차원의 대응이 이어졌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3월20일 국회정론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야권연대 후보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사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통합진보당과 여론조사기관 등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사퇴를 촉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우회적으로 후보사퇴엔 거부의사를 드러냈다.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에 "사퇴, 가장 편한 길이다. 그러나 상처 입더라도 일어서려한다"면서 "김희철 의원께서 이 일로 경선결과에 영향이 있다고 판단하신다면 재경선하겠다"면서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김 의원은 이 대표의 재경선 제안을 거부했다. 김 의원 외에 경선에서 노회찬(노원병), 심상정(경기 덕양갑), 천호선(은평을) 후보에게 패한 이동섭, 박준, 고연호 후보도 일제히 경선결과에 불복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안산 단원갑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백혜련 후보도 불복을 선언했다. 백 후보는 불복이유로 여론조사 오류 샘플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러자 민주당은 백 후보를 공천했다.
위기의 야권연대, 극적으로 탈출구 마련해

원탁회의는 "이번 야권연대 합의의 분명한 주체는 양당 대표들"이라고 전제한 뒤 "위기에 처한 야권연대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서는 바로 오늘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양당 대표들이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탁회의는 또 "오늘 중으로 대승적인 결단이 없으면 후보등록 전의 전국적·포괄적 연대는 실현불가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야권 연대의 두 축인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권영길 의원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권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어떤 상황에서도 야권연대는 깨어져서는 안 된다. 무엇을 위한 야권연대인가? 'MB심판이 이뤄졌는가? 정권교체가 됐는가? 서민들의 눈물을 생각하라"고 호소했다.
교착상태에 봉착했던 야권연대는 극적으로 물꼬를 트는데 성공했다. 이정희 대표가 사퇴를 결심한 것이다. 이 대표는 3월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많은 분이 애써 만들어온 통합과 연대의 길이 저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몸을 부숴서라도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며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야권 단일후보 선정 과정에서 부족함도 갈등도 없지 않았고, 경선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저"라며 "(저의 사퇴로)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갈등이 모두 털어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의 사퇴로 야권후보 단일화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관악을 지역구를 통합진보당에 양보했다. 뒤이어 백혜련 후보가 사퇴의사를 밝혔다. 한명숙 대표는 "백 후보가 양보를 했고, 그외 다른 지역도 다 해결이 된 만큼 더이상 통합진보당과의 갈등은 없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경선결과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의사를 밝힌 김희철 후보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한 대표는 "탈당한 만큼 민주당 후보가 아니다"고 전제한 뒤 "통합민주당이 관악을 후보를 정하면 야권 단일후보로 인정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통합진보당은 이상규 전 민노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후보를 내세웠다.
야권연대의 위기를 걱정하던 여론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민심의 척도인 트위터는 이 대표의 사퇴에 아쉬워 하면서도 대승적인 결단을 내린 데 대해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정희대표가 야권연대를 구했다. 스스로를 희생한 아름다운 결단이다. 통합진보당 뿐만 아니라 야권전체를 살렸다"고 환영 메시지를 남겼다.
야권연대는 이제 그동안 별러왔던 정권심판론을 본격 이슈화해 나갈 기세다. 이러자 정부여당인 새누리당에 비상이 걸렸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이 정권심판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새누리당은 먼저 한나라당에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어 공천을 통해 이재오 의원을 제외한 친이계 의원들을 대거 낙천시키며 이명박 정부와 선을 긋는 행보를 취했다. 또한 한미FTA와 강정 해군기지 건설 등의 민감한 이슈는 노무현 전 정권에서 시작된 일임을 부각시키면서 민주당이 말 바꾸기를 해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3월25일 야권 단일후보 지원을 위해 11인으로 구성된 공동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민주당에선 한명숙 대표를 비롯해 김진표 원내대표, 문성근, 박영선, 박지원, 이인영, 김부겸 최고 위원이, 통합진보당에선 이 공동대표,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가 대책위원을 맡았다.
야권연대의 과제
우여곡절 끝에 연대를 이뤄낸 양당은 반드시 정권심판을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할 경우 향후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전망마저 어두워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양당은 총선에 전력투구한다는 방침이다.
한명숙 대표는 "전국적 야권연대를 이룬 두 당이 4.11 총선에서 이명박·새누리당 정권의 민생파탄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한 대표는 야권연대 과정에서 통합진보당과의 불협화음을 낸데 대해선 "실망시켜 드린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며 깊은 성찰과 반성을 토대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뒤 "비온 뒤 땅이 단단해지듯이 야권연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공동대표도 사뭇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야권연대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국민의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표는 특히 선거철 마다 고개를 드는 '색깔론'을 경계했다. 이 대표는 "사상 초유의 전국적 야권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철 지난 색깔공세로 분열을 획책하는 세력이 있다"면서 "반드시 국민들께 심판받도록 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얼마만큼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2040 유권자의 표심을 잡는데 성공을 거둘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투표권을 갖고 있는 유권자 가운데 19~49세가 전체의 62%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50세 이상 유권자는 38%에 그쳤다.
이를 의식한 듯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조국 교수, 소셜테이너 김여진, 소설가 공지영, 화가 임옥상, 팟캐스트 '나꼼수' 기획자 탁현민, 영화감독 정지영·이창동 등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민주·진보진영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멘토단을 꾸릴 계획이다.
멘토단 구성은 야권에 유리한 선거구도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멘토단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 가능성을 한층 높였던 선례도 있어 양당에겐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박선숙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은 3월25일 "멘토단은 1+1을 단순한 2가 아닌 3으로 만들려고 한다"면서 "기존 지지층을 뛰어 넘어 합치면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들을 끌어 들이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야권연대 효과는 즉각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전문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양당의 지지율을 합했을 때 여당인 새누리당을 추월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야권연대의 앞날을 낙관하기는 아직은 이르다. 양당의 연대는 여당과 1 : 1 구도로 승부해야 한다는 열망의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만큼의 연대를 이루는 데에도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양당의 과제는 분명하다. 지금의 연대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높은 수준의 연대는 설혹 의회 과반의석 확보와 정권교체에 실패하더라도 민주·진보진영의 공고한 정치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이다.
야권연대 효과로 야권 새누리당 지지율 바싹 추격 여론조사 조작 파문으로 위기에 봉착했던 야권이 이정희 대표 불출마 선언 이후 반등하며 여당을 추월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3월 셋째 주 주간 정례조사 결과, 새누리당은 2.0%p 하락한 37.4%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민주통합당은 지난 주와 큰 격차 없이 33.3%를 기록했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전주 대비 1.8%p 상승한 7.5%로 조사돼 민주당과 합했을 경우 40.8%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연대 효과로 새누리당 지지율을 추월한 것이다. 여당은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검찰 조사로 지지율이 하락한 반면 야권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여론조작 파문으로 주 중반까지 지지율이 하락하다 후반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여당을 추월했다. 대선 다자구도에서는 박근혜 위원장이 0.4%p 하락한 34.6%로 1위를 유지했고, 2위는 문재인 이사장으로 2.0%p 상승한 20.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위원장과의 격차는 14.2%p로 좁혀졌다. 박 위원장과 야권단일후보 문재인 이사장의 양자대결에서는 박 위원장이 1.4%p 하락한 47.5%, 문재인 이사장은 1.2%p 상승한 41.9%로, 두 후보간 격차는 5.6%p로 좁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