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이 지는 자리, MB 정부의 지난 4년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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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이 지는 자리, MB 정부의 지난 4년을 돌아본다
  • 김길수 편집국장
  • 승인 2012.03.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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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통령 자임하며 등장한 권력, 경제는 제대로 살렸을까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권세는 십 년을 넘기지 못하고, 꽃의 아름다움은 열흘을 채우기가 힘들다고 했다. 등장이 있으면 퇴장이 있고,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뒤따르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이에 세상은 늘 등장과 절정에 주목하고 환호하기 마련이지만, 정작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할 대목은 퇴장 후에 남은 흔적들이다. 이런 점에서 집권 4년, 임기말의 이명박 정부를 짚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당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주로 돈과 관련된 문제였다. 한 평생을 경제인으로 살아온 만큼 선비만큼의 청렴함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분량이나 수위가 심상치 않았다. 이미 경선과정에서 박근혜 당시 상대후보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고, 본선에서도 도곡동 땅 실소유주 문제와 BBK주가조작 의혹에 시달렸다. 이는 거의 대부분 법적으로 깨끗하게 해결된 사안이라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임기 말에 이른 현재까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며 이 대통령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는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531만 표 차이로 누르며 압승했다. 이 대통령을 향해 제기됐던 여러 도덕적 의혹에 대한 명쾌한 해명 덕분이 아니었다. 세계경제위기가 엄습하기 직전의 상황이었고, 민생경제는 양극화 문제 등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정해숙 씨(부산 남구, 여, 32세)는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으로 불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권위주의와 독재의 잔재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국민 개인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민생고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는 이 대통령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당시의 시대적 결핍은 민생고였고, 이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라 기대했던 인물은 ‘경제대통령’을 자임했던 이명박 당시 후보였다고 풀이했다. 다시 말하자면, 그를 둘러싸고 터져 나왔던 각종 석연치 않은 의혹들에게 대해 논리적으로 납득했다기보다는 그보다 우선하는 사안에 더 집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대통령의 경제성적표

따라서 이명박 정부 4년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경제 분야에 대한 성적표는 매우 중요하다. 이 대통령의 자질론까지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그가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신속한 대처로 큰 피해 없이 위기를 탈출했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거시경제와 별도로 민생경제를 세심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당초 이 대통령은 747공약(연 7% 경제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진입)을 통해 민생경제의 회생을 약속한 바 있다. 주가지수 3,000포인트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년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경제성장률은 4년 평균 3.1%에 불과했다. 성장위주의 거시정책을 지속하는 가운데 고물가가 초래됐고 서민들의 실질 소득은 줄어들었다. 지난 4년 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에 달해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극심했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들을 위한 고환율, 저금리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들의 순이익이 증가하면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면서 서민들까지 그 이익이 고루 퍼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투자와 고용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기업, 그 중에서도 대기업으로의 이익 집중이 이뤄져 소득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평가다.
종합적인 경제지표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고도,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불통의 꼭짓점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부쩍 ‘소통’이라는 단어가 자주 거론됐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채우기도 전에 범국민적 저항과 마주해야 했다.
2008년 5월을 강타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운동’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국가 간 통상교역은 가장 기초적이고 정치 일반적인 행위인데,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광우병을 둘러싼 각종 진실과 괴담이 인터넷에 횡행했고, 집권 초반의 이명박 정부는 이를 효율적으로 수습하지 못했다.
광우병 파동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어떤 정책을 진행함에 있어서 국민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정치가 설득과 이해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정치의 부재’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정치부재는 4년 내내 지속됐다. 정운찬 총리의 사퇴로 끝난 세종시 문제가 그랬고, 숱한 논란을 뿌리고 지속되고 있는 4대강사업도 마찬가지다. 근자에 와서는 한미FTA를 둘러싸고 제2의 쇠고기 촛불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범국민적 저항이 발생할 때마다 이명박 정부는 즉각적이고 설득력 있는 제스처를 취하지 못했다. 해당 정책의 문제점들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를 짚어내는 대목에서는 늘 ‘국민의 오해’라고 해명했고,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거나, 아예 광장을 원천봉쇄해 집회를 막기도 했다.

소통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대통령이 직접 라디오에 출연해 국정운영에 대해 설명했고, 특임장관 제도를 신설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또한 트위터를 비롯한 SNS를 통해 상대적으로 보수층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젊은층을 공략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다양한 도구와 형태로 소통을 시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을 1년 앞둔 현재까지도 ‘국민의 오해’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내 사람이냐, 네 사람이냐

집권 초반부터 인사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른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 인사가 지탄을 받았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주요 요직에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도 ‘코드인사’로 불리는 인사파동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지연, 학연 등 지극히 인간적인 요소가 부각되었으며, 해당 인사들의 도덕성과 역량 등에서도 많은 잡음이 일었다.
이 결과 장관 등에 지명된 후 국회에서 각종 비리나 의혹들이 터져 나와 낙마한 사례가 적지 않다. 정운찬 총리 후임으로 지명됐던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국회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한 것도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명쾌하게 해명해내지 못한 탓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람관리 실패’는 당내에서도 감지됐다. 여당 내에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라는 양대 계파가 존재했는데, 계파갈등 해소는커녕 이 대통령 자신을 위한 계파라 할 수 있는 친이계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남자’를 자임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비리의혹이 터져 나왔고, 자질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현 정부 출범의 브레인 탱크로 불리는 ‘6인회’ 인사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러한 문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6인회 좌장이자, 이 대통령의 친형이기도 한 이상득 의원은 본인은 물론이고 측근인사들의 비리연루로 몸살을 앓고 있다. 6인회의 핵심멤버이자 2008년 당 대표를 지냈고, 국회의장 역임한 박희태 전 의장의 경우에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을 받고 불명예 퇴진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인사폭풍은 임기 말은 물론이고, 퇴임 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야권은 현 정부의 실정과 측근인사들의 비리캐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그나마 우군으로 불릴 만한 여당 역시 청와대와의 거리두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외교력도 도마 위에

이명박 정부의 외교는 크게 세 갈래로 분류해 평가해 볼 수 있다. 통상적인 외교, 대북외교, 자원외교가 바로 그것이다.
집권 초반 이 대통령은 ‘한미동맹 회복’을 강조하며 대미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이 결과 참여정부에서 입안되었으나 진행과정이 지지부진하던 한미FTA가 신속하게 체결되었으며, 미국을 국빈방문할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남다른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쇠고기수입파동과 한미FTA를 둘러싼 범국민적 저항을 겪는 과정에서 한미동맹외교가 아닌 친미외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미국 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다”라는 이상득 의원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이러한 파문은 더욱 확산된 바 있다.

대북외교 역시 큰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대북 퍼주기’ 비판을 받았을지언정 각각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의 평화를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대북강경책을 고수하면서 대화채널이 단절됐고, 이후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남북관계 회복의 전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북측이 요구한 유연한 대처에 실패함으로써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이 결과 북한핵문제 해결의 거의 유일한 돌파구라 할 수 있는 6자회담은 몇 년째 표류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유지의 주체가 남과 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게 있어서 우리 정부는 협상의 대상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가 비운 자리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이 자리잡고 있다.

경제대통령을 자임한 이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자원외교 역시 문제점투성이다. 세일즈 외교를 표방하며 세계 각국을 넘나드는 가운데 적지 않은 실적을 기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임기 말에 이르러 받아든 성적표에는 각종 의혹과 논란이 붙어 있는 실정이다.
UAE원전수주,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 획득 등 발표 초기에는 큰 지지와 호응을 받았으나 이를 둘러싼 잡음들이 함께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 획득과 관련해 외교부 인사가 개입된 주가조작이 있었고, 정작 카메룬의 광산에 돈이 될 만한 다이아몬드가 없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는 실정이다.
이렇듯 일련의 참담한 결과들의 중심에는 이명박 정부의 ‘성과주의 과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차분하게 현황과 전망을 분석하고 추진해야 할 일들이었음에도 발표시기를 서두르다 보니 놓치고 간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정치집단과 이익집단

대통령은 행정가가 아닌 정치가다. 따라서 청와대를 둘러싼 각종 정치적 논란들이 줄을 잇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는 정치적 논란보다는 각종 성과적 논란들이 많았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맞닿아 해석해 봐야 하는 대목이다. 통상 같은 뜻과 이념을 가진 이들을 정당 혹은 세력을 구성해 권력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획득한 권력은 자신들의 이념에 맞추어 움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이념집단이라기보다는 이익집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는 의견이 제기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를 양분했던 진보와 보수 혹은 지역 대 지역의 구도가 사라진 자리에 ‘경제’라는 아젠다를 중심으로 각종 이익창출이 핵심과제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으로 출발했다가 4대강사업으로 마무리된 이 대통령의 핵심공약도 그러하고, 자원외교의 허상에 관한 논란들도 이념에 관한 문제가 아닌 이익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정부가 정작 서민들의 경제를 챙기지 못한 점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이익집단의 지상과제라 할 수 있는 생산과 성장까지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를 국민 개개인에게 분배할 수 있는 이념, 즉 나눔의 프로세스는 부족했다고 평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1년을 남기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대통령으로서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뤄낸 측면도 있지만, 현재의 지지율이 말해주듯 그 성과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 최대 수혜자이어야 할 국민들은 알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다시 소통의 문제로 돌아가 이명박 대통령이 챙겨봐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이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이념만 존재했던 정치에서는 비생산적인 정쟁만 가득했지만,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 경제 역시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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