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천주교계의 반대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1월31일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이하 천주교연대)’와 ‘한국 천주교 여자 수도자 장상연합회(이하 장상연합회)’는 시국미사를 개최했다. 이 기도회에서 사제와 수녀들은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뒤이어 세계적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 이 문제가 국제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천주교연대와 장상연합회의 시국미사는 1월10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 정문 앞에서 건설 중단을 위한 153배와 묵주기도를 하던 수녀 18명을 경찰이 연행한 데 따른 항의의 표시로 열렸다.
시국미사를 주관한 천주교연대와 장상연합회는 시국미사 개최배경과 관련, 경찰의 수녀연행이 “한국 천주교 220년의 역사 속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초의 사건”이라면서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인권, 반평화 행위들을 묵과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장상연합회측은 이날 조현오 경찰청장 앞으로 공개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평화는 그리스도가 맡긴 임무
천주교계의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반대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해군기지 건설이 가시화되던 시기는 2006년이었고, 그 즈음부터 꾸준히 사제들을 주축으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제주교구 사제들은 2007년 5월 ‘제주해군기지 철회’를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함께 단식 기도회를, 그리고 2011년 11월 해군기지 공사중단과 생명평화실현 염원을 위한 단식기도화를 갖기도 했다.
천주교계가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명분은 ‘평화’이다. 2007년 5월 당시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는 ‘해군기지 반대’ 메시지를 통해 “평화는 힘으로 얻을 수 없다”며 국방부와 해군이 건설하려는 해군기지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었다.
지난 1월 시국미사를 집전한 박동호 신부(천주교연대 공동대표) 역시 “평화는 달콤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건져 올린 사랑과 정의의 구체적인 열매”라면서 “평화는 그리스도가 이 땅의 제자들에게 맡긴 사명임을 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국제적 이슈화 조짐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국제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일고 있다.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세계적인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이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있어서다. 지난 해 5월 강정마을을 방문한 바 있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8월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지에 ‘군비경쟁이 낙원을 깨뜨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스타이넘은 이 기사를 통해 “UNESCO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도의 해안선이 해군기지로 인해 파괴될 처지에 놓였다”면서 세계 여론에 관심을 호소했다. 그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가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이고 두 번째는 이 기지로 인해 자칫 미-중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스타이넘은 “현재 한-중 관계는 원만한 편이다”면서도 “해군기지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적 분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녀는 또 “한국이 미국 군부라는 개의 꼬리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우려하기까지 했다.
세계적 명배우 레드포드, 환경재앙 경고
지난 2월3일, 트위터는 왕년의 명배우에 대한 칭찬의 물결로 뒤덮였다. 주인공은 ‘스팅’, ‘내일을 향해 쏴라’, ‘위대한 갯츠비’, ‘보통 사람들’, ‘흐르는 강물처럼’의 명배우이자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였다.
그는 환경전문 싸이트 ‘지구위에서(www.onearth.org)’에 ‘제주도의 투쟁 : 군비경쟁이 한국의 낙원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나?’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한편,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 가져줄 것을 촉구했다. 레드포드의 글은 트위터에 소개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왔고, 이에 힘입어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다시금 여론의 이목을 끌었다.
레드포드는 자신의 글에서 “제주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독특한 문화, 그리고 사람과 인간, 남성과 여성이 균형을 이뤘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섬이다. 제주는 평화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제주도의 환경은 탄도미사일 요격체계로 중국을 에워싸려는 미국, 그리고 항공모함, 잠수함, 이지스함이 정박할 수 있는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한국 해군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해군측은 멸종위기종은 이동이 가능하고 산호초는 복원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과학자들과 제주도 주민들은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고 한 뒤 “대형 콘크리트 조형물은 모든 바다생물을 도태시킬 뿐만 아니라 바다에 사는 모든 종들에게 필수적인 햇빛을 차단할 것”이라고 환경파괴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로버트 레드포드는 오랜 기간 환경운동가로 활동해온 데다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어서, 두 사람의 문제제기는 향후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해군기지 건설 사업, 안개 속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2014년까지 9,776억 원을 들여 이지스함을 포함, 해군함정 20여 척과 최대 15만t급 크루즈 선박을 동시에 댈 수 있는 49만㎡ 규모의 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 사업이 결정된 것은 2007년 6월이었고, 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는 이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승격시켰다. 그렇지만 이 사업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2010년 12월 시작된 기지건설 공사는 2012년 1월 현재 23%에 불과한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2011년 6월 말 공유수면 준설공사에 접어들면서 주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공사가 3개월가량 중단된 탓이다. 지난 해 9월 공사가 재개되기는 했지만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게다가 국회는 지난 해 12월31일 해군기지 건설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정부는 1,327억의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해군기지 건설 절차의 부당성과 목적의 부적합성을 제기하며 전액 삭감을 강력히 요구했다. 국회예산결산위원회는 민주통합당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다. 정부 원안에서 1,278억 원이나 삭감된 49억 원으로 결정했고, 본회의는 이를 그대로 확정해 의결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지건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를 대형악재가 터져 나왔다. 국무총리실 산하 ‘15만t 크루즈 입·출항 기술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가 2월17일 “제주해군기지 항만설계는 15만t급 크루즈 선박 입·출항이 사실상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기술검증 결과보고서를 채택한 것이다.
검증위는 현재 설계 조건에서 선박조종 시뮬레이션의 운항난이도를 검토해본 결과 15만t급 크루즈 여객선이 서방파제를 입, 출항할 때 운항난이도(기준 1~7등급)가 각각 7, 6등급으로 최고 난이도에 해당돼 여객선이 자유롭게 입, 출항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동안 해군은 줄곧 제주해군기지가 ‘민·군 복합항이자 관광미항’으로 설계됐다고 주장해 왔지만 검증위 보고서는 해군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로 인해 검증위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자 제주 강정마을회와 제주군사기지범대위 등은 제주특별자치도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기지 공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악재에도 해군 당국은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해군 쪽은 2011년에 집행하지 못한 해군기지 관련 예산 1천 여억 원을 2012년으로 이월해 공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증위 보고서와 관련해서 해군은 2월19일 해명브리핑을 열고 “제주해군기지는 현재의 설계로도 크루즈 선박 운영이 가능한 상태로, (검증위의 결론대로) 추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해서 설계에 근본적 오류가 있다거나 입, 출항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보고서 내용을 반박했다.
해군 당국이 공사 강행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향후 주민들, 그리고 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부들과 정면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갈등이 고조될 경우 국제사회가 사태를 방관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다행스러운 점은 주민들이 일부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비폭력으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레드포드 역시 이 대목에 감명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는 “주민들이 기지건설을 중단시키기 위해 힘겹게 비폭력투쟁을 벌이고 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주민들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가면서까지 몸을 던져 블도저와 시멘트 트럭을 막았다”면서 “주민들 모두 자신들의 고향, 그리고 지구상에서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을 지켰던 것이다”고 찬사를 보냈다.
국익 바탕으로 공감대 형성해야
세계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격언에 따르면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쪽은 늘 로마인의 지혜를 강조한다. 이들은 또 중국 위협론도 내세운다. 향후 해양세력인 중국과의 충돌이 예상될 수 있는데 이를 억제하려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대하는 쪽 입장도 만만치 않다. 무력증강, 그리고 이를 통한 힘의 균형이 진정한 평화를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반대자 쪽 주장이다. 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발판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경고도 무시할 수 없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우려한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문제는 찬반 양쪽의 의견이 너무나도 첨예하게 대립해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애초에 기지건설 사업을 추진하면서 정부와 군 당국, 그리고 주민들 사이에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탓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철저하게 ‘국익’을 목표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