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회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성중심의 사고가 지배적인 사회였다. 여성의 고용은 공무원 및 교사와 같은 몇 가지 직종에만 집중적으로 적용되어 왔으며, 여성의 가사노동을 천시하고, 사고(事故) 시에는 그 노동에 대해 경제적인 보상도 평가하지 않았다. 특히 정치, 행정 등의 공공분야에서는 여성 진입 장벽이 더욱 높았는데, 이러한 사회의 실태와 의식을 개선시키고자 이기숙 교수는 여성 교육에 뛰어들었다. 남녀차별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여성과 어머니들이 평등의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에 대학 내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던 교수와 강사, 활동가들이 모여 ‘(사)부산여성사회교육원’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기숙 교수는 이곳에서 1994년에 초기 원장을 거쳐, 2007년부터 2012년 2월까지 이사장직을 수행해왔다.
인정받지 못한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한 첫 걸음

그녀는 이렇게 여성교육 및 인권을 위해 다방면에서 활동을 해오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재정 문제를 꼽았다. “사무실 임대료와 간사 월급 그리고 최소한의 프로그램비가 필요했고, 이를 15년간 전적으로 회원들의 회비 및 후원금으로 꾸려왔다”라며, “이는 어려운 점이기도 하지만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이기도 하다. 왜냐면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사업을 한다. 우리가 하는 이 일들이 모여져, 사람사는 것 같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며, 그런 희망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와 더불어 “여전히 여성들의 결집이 필요하다. 여성 세력화가 더 이루어져야 정치가 바뀌고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 우수한 여성인력들이 결혼 혹은 출산 후, 그 능력들이 사장되지 않도록 그들을 지원하는 법과 제도가 더 필요하며, 아직 정치의 90%가 남성이고, 교사의 80%가 여성인 점도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이다. 특정 분야에서 한쪽의 성비가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룰 때까지 여성대회를 계속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