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혼선 원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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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혼선 원인 분석
  • 글/ 김정숙 기자
  • 승인 2005.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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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VS 서울시 ‘따로놀기’ 무엇이 문제인가
이견 조정 창구 없어, 차기 대권 관련 신경전 작용
정부와 서울시가 시민생활과 직결된 각종 주요 정책에서 사사건건 충돌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같은 시간대에 남대문과 서울광장에서 정부와 서울시가 따로 벌인 기념음악회라든가, 청계천 복원 이후 청계천 물길 유지에 필요한 용수 비용을 둘러싼 논쟁 등이 대표적이다. 부동산대책과 관련해 강북 뉴타운 개발이나 강남 미니 신도시 정책을 놓고 빚어지는 엇박자는 안쓰러울 정도이다. 협력을 해도 모자랄판에 이렇게 사사건건 부딪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시장은 국무회의 출입금지?
강남 대체 신도시 건설과 지방세 세목교환 논란에 이어 청계천 물값 문제가 소송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서울시 간부들이 “서울시장이 국무회의 참석 고정 멤버였다면 이렇게까지 꼬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푸념을 잇달아 털어놓고 있다. 서울시와 관련된 주요 정책들이 갈등과 혼선을 거듭하고 있는 데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야당 출신으로 집권당과 당적이 다르고 대권주자 후보라는 이유로 이곳 저곳에서 견제를 받으면서 정부와의 상시대화 채널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장은 참여정부 들어 국무회의 배석 규정이 바뀌면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장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매주 화요일 국무회의 고정 참석 멤버였다”며 “이 자리에서 주요 시정을 협의해왔는데 노무현 대통령 취임후 몇 차례 참석하다 중단됐다”고 전했다.
대통령령으로 돼 있는 국무회의 배석 규정이 2003년 4월17일자로 개정되면서 서울시장이 상시 참석 멤버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대신 광역자치 단체장이 배석할 경우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요청하거나, 광역자치 단체장이 요청할 경우로 제한됐다.
이시장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전례에 따라 국무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당이 다르다고 서울시장이 참여하지 않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오히려 참석을 요청했었다”며 “참여정부는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토론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서울시장이 참석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명박 시장도 “오라도 하지도 않는데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이시장을 국무회의 배석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야당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지방자치를 존중하고 국무회의를 효율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도 참석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서울시 갈등 주 요인
국무회의라는 정책협의 통로를 잃어버린 서울시는 정부·여당과 주요 정책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있다. 수자원공사와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 이후 청계천의 물길 유지에 필요한 용수 비용을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 남대문과 서울광장에서 정부와 서울시가 따로 벌인 광복 60주년 기념 음악회를 두고 시민들은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한다.
정부가 준비 중인 강남 대체 미니 신도시 정책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강·남북 균형 개발에 어긋난다며 반대한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이명박 시장이 ‘강남아줌마보다 못하다’며 정면 공격한 것도 따지고 보면 대화통로가 없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시장의 공약으로 시작돼 10월1일 준공된 청계천 복원 사업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가도로 철거를 앞두고 경찰의 교통대책 비협조가 최대 걸림돌이었다. 결국 이 시장은 2003년 6월4일 국무회의 참석을 요청, 청계천 복원에 따른 정부의 협조를 부탁하고 대통령을 설득했다.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장관들이 반대했는데 대통령이 좋은 사업이라고 ‘적극 밀어주라’고 말해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고 회고했다.
서울시장은 그동안 국무회의에서 광역자치 단체장을 대표하는 역할도 겸해왔다. 서울시장은 전국 시·도 지사협의회장을 맡고있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불참하면서 이같은 연결고리가 사라졌다.
충북도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 관련 부서를 통해 국무회의에서 무엇이 논의되는지 알곤 했는데 이제는 언론보도를 통해서 정보를 아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전시 관계자도 “서울시를 창구로 의견을 개진해 왔지만 지금은 ‘눈 먼 장님’ 이 됐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 대립 심화
뿐만아니다. 정부가 서울시와 제대로 조율하지 않은 채 송파 신도시 조성 및 강북 개발 계획을 내놓아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서울 지역 개발을 놓고 정부와 서울시가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는 탓에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송파 거여ㆍ마천지구다. 서울시는 송파, 거여, 마천지구를 3차 뉴타운 후보지로 선정했고, 이틀 후엔 정부가 거여동의 군부지 200만 평을 신도시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책 발표에 따라 인접한 두 지역이 함께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일대 아파트와 노후 주택의 호가가 며칠 사이 수천만원씩 급등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거여 지구에 ‘뉴타운’이라는 한쪽 날개를 달아주자 곧바로 정부가 '신도시'라는 다른 쪽 날개를 달아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이틀 사이 개발 계획을 내놓았지만 투기방지 장치에는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지난해 4월 송파구 전역이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됐지만 같은해 11월 건설교통부는 “아파트가 많지 않고 낙후돼 있는 3개 동을 빼달라”는 송파구청의 요청에 따라 거여ㆍ마천ㆍ풍납동 등 3개 동을 신고지역에서 해제했다. 그러나 거여ㆍ마천동 일대 집값이 급등하자 건교부는 이번 주에 두 동을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키로 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신도시 예정지역이 국유지인 것만 믿고 주변 지역의 투기 방지에는 소홀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건교부 관계자는 “신도시예정지가 국유지이므로 토지보상금이 풀려 주변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우려가 없다”며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최근 가격이 오르는 등 일정한 요건에 해당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지정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가 송파 지역에 신도시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사전에 있었고 이틀 후에 정부의 부동산종합대책이 발표되는 상황에서 거여ㆍ마천지구를 뉴타운 후보지로 지정한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최창식 서울시 뉴타운 본부장은 “뉴타운 발표는 오래전에 예정됐던 것이고 송파 신도시 계획은 사전에 정부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강북 뉴타운도 기대감만
서울시는 8월 29일 뉴타운 후보지 9곳과 3개 균형발전 후보지를 발표했다. 정부는 부동산종합대책에서 강북 등 구도심 15만평 이상을 공공기관이 광역 개발하면 용적률을 높여주고 층수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강북의 뉴타운 지역도 정부와 서울시의 대책 발표로 기대감만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용적률과 층수제한 완화는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개발하는 경우로 한정하는 것인데도 모든 지역에 해당하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의 ‘따로놀기’는 이번만이 아니다. 6월 서울시가 강남 등의 재건축 계획을 세우겠다고 발표하자 건교부는 “강남 재건축은 공급 확대보다는 집값만 올릴 가능성이 있어 엄격히 규제할 것”이라고 대응했다.
감정 대립까지 가기도 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6월 초 간부회의 석상에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군청 수준”이라고 말하자, 다음날 추병직 건교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이 시장이 전시용 행정을 많이 해왔지만 뉴타운 사업은 실적이 없다”고 맞받았다. 정부와 서울시의 대립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자 건교부가 직접 나서 서울시와 뉴타운 개발을 놓고 충돌한 적이 없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청계천 물값 논쟁은 일단락
서울 청계천 복원 이후 유지용수로 사용될 ‘물값’을 놓고 서울시와 한국수자원공사가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최근 건설교통부가 서울시에 물값을 요구한 수자원공사의 손을 들어주자 시가 소송의지를 비치는 등 강하게 반발, 청계천 물값을 둘러싼 양 기관의 힘겨루기가 벌어진 것. 시는 청계천이 복원되는 10월 1일부터 잠실대교 인근 자양취수장에서 하루 9만8,000t의 용수를 끌어다가 사용할 계획이며, 이 대가로 수자원공사가 요구하는 물값은 하루 469만원, 연간 17억1,445만원에 이른다.
건교부는 8월 24일 “최근 청계천 유지용수 사용료 부과 여부 민원인 질의에 대해 ‘한강물은 댐 건설로 인해 생긴 물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서울시가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사용료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6월 서울시와 수자원공사 간 갈등이 생긴 이후 소관부처인 건교부가 처음으로 공식입장을 밝힌 것이다. 계속되는 논란 끝에 건설교통부는 9월 5일 서울시와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중앙하천관리위원회를 열어 청계천 물값 문제를 논의한 결과 청계천 유지용수 사용에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감사원과 법제처 유권해석대로 청계천 유지용수가 ‘댐 용수’임이 분명해 댐법에 따라 유수 사용료를 받을 수도 있으나, 생태계 복원과 친수환경 조성을 위한 비영리사업인 점을 감안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자원공사는 공익상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유수 사용료를 감면할 수 있다는 댐용수공급규정을 적용, 서울시가 청계천으로 한강물을 끌어다 쓰는 데 따른 물값을 받지 않기로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서울시는 “청계천 물이 공공목적에 사용되는 만큼 물값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 반면 수자원공사는 “청주시는 부족한 무심천 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청댐 물 일부를 끌어쓰면서 물값을 내고 있는데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요금을 매기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대화 창구 만들어야
각종 정책시행을 놓고 생기는 이러한 갈등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상시 참석 멤버였던 서울시장을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령을 바꾸어 배제시키고 난 후부터의 일이다. 양쪽의 이견이 조정될 장이 없어진 셈이다. 물론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요청하거나, 광역자치 단체장의 요청이 있을 경우 참석이 가능토록 했다지만 요청 절차를 두어 참석을 어렵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오라고 하지도 않는데 굳이 이쪽에서 요청해 갈 필요가 있느냐”는 서울시측의 볼멘소리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상황.
지방자치가 중앙정부에 구애받지 않도록 지방자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취한 조치라는 정부의 변명은 군색한 변명이 되는 상황이다. 오히려 전국 시·도지사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광역자치단체와 중앙정부를 연결하는 고리역할도 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시민들의 눈에는 정부와 서울시의 충돌이 기 싸움으로만 비칠 뿐이다. 당이 다르다고 서울시장이 참여하지 않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오히려 이명박 시장을 줄곧 국무회의에 참석토록 한 김대중 정부 시절의 자세와 일견 비교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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