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항공사 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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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항공사 뜰까
  • 글/ 신혜영 기자
  • 승인 2005.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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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도 저렴하게’ 저가 항공 시대 활짝
출범 한달 긍정적 평가, 과다경쟁 출혈 예고도

저가형 민간항공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부정기 항공운수사업자인 청주소재 (주)한성항공이 지난 9월1일부터 하루 2차례 제주∼청주 노선에 터보프롭 ATR기종(66석)을 띄운 데 이어 제주도와 애경그룹이 공동으로 설립한 (주)제주항공이 내년 6월부터 운항한다. 이는 한성항공이 단 한대의 비행기를 도입해 기존 항공요금의 70% 수준의 요금으로 한달간 운항한 결과, 평균 84%의 높은 탑승률을 보여 기존 대한·아시아나 양대 항공사의 탑승률(50%)을 크게 넘는 등 ‘성공’을 거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지자체들이 잇따라 항공기 취항사업을 계획하거나 구상하고 있다.


저가항공사 업계 ‘파이 키워’
항공사별 탑승객수를 보면 지난해 9월에는 대한항공 2만7,855명, 아시아나항공 2만666명을 기록했고, 올 9월에는 대한항공 2만8,857명, 아시아나항공 2만27,00명, 한성항공 6,221명을 기록했다. 즉, 한성항공의 취항으로 신규수요가 그 만큼 창출됐다는 해석이다.
탑승률도 상승했다. 지난해 9월 탑승률은 대한항공 63.1%, 아시아나항공 54.7%로 총 59.2%를 기록한 반면 올 9월에는 대한항공 64.0%, 아시아나항공 63.1%, 한성항공 81.3%로 총 65.1%를 나타냈다.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다른 국내선 노선의 탑승객 수에는 큰 변동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한성항공의 취항으로 청주~제주 노선의 신규수요가 창출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성항공이 중부권 고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요금이 기존 항공사의 70% 수준에 불과한 것도 큰 요인이다. 한성항공은 9월 한 달 동안 취항 기념으로 청주~제주 노선 요금을 1만원 내린 3만5,000원(공항 이용료 포함 3만9,000원)에 판매하자 대한한공과 아시아나 항공사들도 잇달아 요금을 내렸다. 업계 관계자는 "한성항공 취항으로 파이가 커진 것은 긍정적인 요소로서 기존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도 신규수요에 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서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좀더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가항공사는 1971년 설립된 미국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을 시초로 보고 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뒤에 우리나라에서도 저가항공 시대가 열린 셈이다. 우리나라 항공운송은 국제선의 경우 여객과 화물 운송에서 세계 10위권이다. 그러나 단거리 국내선은 대형 항공기 위주라서 낮은 탑승률 등으로 인해 채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수지를 맞추기 위해 항공 요금이 계속 오르고 적자 노선은 폐쇄 또는 감축돼왔다. 대한항공측은 “국내선에서 발생하는 적자가 연간 1천억원에 이른다. 항공사업은 공익성이 강해 적자가 난다고 노선을 곧바로 줄이기도 어렵고 운항을 안 하면 지역에서 들고 일어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저가항공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 저가항공사가 활성화된 유럽은 60여개 저가항공사가 영업 중인데, 유럽저가항공연합에 따르면 유럽 항공여객 시장의 11%를 저가항공이 차지하는 등 고속성장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사우스웨스트, 제트블루, 에어트랜 등 20여업체가 저가항공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저가항공사의 시장점유율이 25%에 이른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JAL 익스프레스가 1988년 처음으로 저가항공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타이, 뉴질랜드,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20여개 저가항공사가 영업 중이다. 뉴질랜드는 저가항공의 시장점유율이 70%에 이른다.


등록 기준만 갖추면 신규 허가 가능
한성항공이 항공 당국으로부터 받은 사업면허는 ‘부정기 항공운수사업’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화물 운송은 부정기 운송이 있었지만 여객은 한성항공이 처음이다. 그러나 내년 6월에 취항 예정인 ‘제주에어’는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처럼 정해진 노선을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정기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받았다. 제주에어는 애경그룹과 제주도가 합작으로 총 150억원을 출자해 설립했는데, 내년에 항공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자본금을 2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제주에어는 캐나다 봄바디어사가 제작한 Dash 8-Q400(74인승) 기종 5대를 들여올 예정이다. 제주에어가 봄바디어사에 직접 발주한 새 비행기로 Q-400도 ATR기처럼 프로펠러가 장착된 터보프롭 항공기다. 전세계적으로 Q-400 97대가 지역항공사에서 운영 중이며, 동체 길이 32.8m로 ATR기(27.2m)보다 약간 크고 길다. 노선은 제주∼김포, 제주∼김해, 김포∼김해, 김포∼양양을 취항하고 5대로 하루 50편을 운항하기로 했다. 제주에어측은 “바람이 많은 제주지역의 기상을 고려해 안전성이 뛰어난 기종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내년 5월 소형 비행기 1∼2대를 임대해 부정기항로 취항에 나선다는 목표로 지난 7월 설립된 전북항공도 정기 항공운송쪽으로 운항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군산지역 투자자 5명이 자본금 50억원을 출연한 전북항공은 제주에어처럼 정기운송으로 바꾸기 위해 자본금을 200억원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군산항공은 내년 5∼6월부터 군산∼서울, 군산∼양양, 군산∼부산 등의 노선에 저가항공기를 투입할 예정이다.
저가항공 시대가 열린 뒤 가장 주목되는 건 항공산업의 판도 변화다. 전화로는 안 되고 인터넷 예약만 가능한데다 기존 항공사가 제공하는 특급호텔 수준의 기내 서비스도 모두 없어져 다소 불편하지만, 요금을 대폭 낮춘 부정기 저가항공사는 자본금 50억원 이상 같은 등록 기준만 갖춰 신청하면 신규 허가가 가능하다. 따라서 잇따라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저가항공사는 탑승률이 50% 이상만 돼도 수익창출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다. 저가항공사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일본, 중국 등 근거리 국제선 노선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양분해온 국내 노선에 상당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건설교통부 항공정책팀은 “부정기 항공운수는 항공기 1대, 정기 항공운수는 5대 이상만 갖추면 된다. 저가항공사의 진입을 쉽게 해주려고 부정기 운송은 면허제를 등록제로 바꾸고 항공기도 50인승 이하에서 80인승 이하로 더 넓혔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측은 “저가항공사가 우리와 본격적인 경쟁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미 KTX가 일종의 저가항공기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고속열차로 부산∼대구 노선 타격이 크고, 가뜩이나 좁은 시장인데 기존 항공사도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저가항공사가 순항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저가항공이 국내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가장 큰 변수는 항공기의 안전성이다. 대형 항공사에 비해 안전성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고객들의 불안을 빨리 해소하는 것이 과제다. 소형 항공기는 대형기에 비해 기류 등 자연현상에 약하고 엔진과 계기 등 장비 부실로 사고 위험이 높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과연 어느정도 사실일까.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측은 “지역민항에 쓰이는 항공기의 기종을 따로 제한하는 건 없다. 들여온 비행기가 여객운송에 적합하게 비행이 가능한지 기술적 검토를 거쳐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내준다”며 “기종이 다르기 때문에 초속 몇m의 바람 같은 운항이 가능한 자연조건 기준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6일 태풍 ‘나비’가 상륙했을 때 한성항공은 청주∼제주 노선을 운항하지 못한 반면, 대한항공은 비슷한 시간대에 청주∼제주 노선을 계속 운항할 수 있었다.
저가항공사는 대형 항공사에 비해 영세업체이기 때문에 정비 등 관리가 부실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건설교통부측은 “항공기 1대나 100대를 보유하나 당국의 안전 지도·감독 체계는 똑같다”고 말했다. 한성항공 관계자는 “큰 비행기에 있는 부품이 작은 비행기라고 없는 건 아니다. 비행기가 한대뿐이라도 정비 부품은 다 갖추고 있다. 부품이나 정비 설비가 비싸다고 안 갖춘다면 비행 자체가 곤란하다.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운항증명(AOC)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비, 운항 관리 등 모든 과정이 기종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감독되므로 항공기가 작다고 해서 사고 확률이 높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한성항공측은 “새 비행기이고 자체 보유 비행기여야 꼭 안전한 것도 아니다. 대한항공의 경우 평균 기종 수명이 10년을 넘었고, 새 비행기는 15%에 불과하고 90%가 임대 비행기”라고 말했다. 또한 “정비사 4명이 40여년을 항공기 정비만 해왔다. 다들 기종별로 4∼5개 이상씩 항공기 정비사 면허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장밋빛 꿈을 꾸는 지방공항
저가 항공사의 출현에 쾌재를 부르는 것은 저렴해지는 가격에 호응하는 이용객들만이 아니다. 지방공항들도 이제서야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됐다며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황금노선'인 김포~제주 노선을 제외하면 지방공항들이 누릴 파급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뭐래도 저가 항공사의 최대 수혜자는 제주공항이다. 제주공항은 모든 저가 항공사가 취항 목적지로 삼고 있어 내년 중반 이후에는 ‘항공 체증’을 겪을지도 모른다며 내심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제주공항과 더불어 회심의 미소를 짓는 곳은 제주도다. 제주도는 저가 항공사의 취항이 관광 잠재수요를 폭발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에어에 50억 원을 투자하고 설립지원단을 구성해 가동하는 등 지역 저가 항공사 출범을 주도했다. 제주에어가 본격적인 운항을 시작하면 관광산업에서만 2015억 원의 매출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제주도는 전망한다. 제주도민의 편의를 위해 추진했던 지역 항공사가 제주도 관광산업을 한단계 끌어올릴 구원투수 노릇까지 하는 셈이다.
그러나 다른 지방공항과 지자체도 제주와 같은 호황을 누릴지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애초부터 과학적인 수요예측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지은 공항이 많은 탓이다. 한 항공학 전문교수는 “지방공항 활성화는 저가 항공사의 취항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면서 “지방공항이 살아나려면 항공기 운항 횟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하는데 아직 뚜렷한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가 항공사들의 인기가 지방공항에 활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위기를 전환한 것일 뿐 실제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하루 2번 청주~제주 노선을 오가는 한성항공은 취항 이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평일에도 탑승률이 90%에 가깝고 주말엔 빈 좌석을 찾기 힘들 정도다. 추석연휴와 개천절 연휴 표도 이미 매진됐다. 그러나 한성항공의 인기는 기존 이용객들의 ‘쏠림현상’에 가깝다. 잠재 수요가 신규 수요로 전환되지 않아 고객을 뺏긴 대형 항공사들의 탑승률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존 항공사들은 취항 편수를 줄일 가능성도 있어 지방공항 활성화는 더 멀리 달아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한국공항공사 홍보실 관계자는 “지금 상황만 놓고 봐서는 지방공항 활성화를 언급하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 내년 6월 제주에어가 본격적으로 취항한 이후로 판단을 미뤘다.
그런 가운데 현재 항공기 취항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지역은 전북과 경북, 인천시 등으로 이들은 이미 항공사 설립을 위해 이미 민관 합작의 항공사를 설립하거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설립된 전북항공도 내년 5월 소형 비행기 2대를 임대해 부정기항로 취항에 나선다. 군산지역 투자자 5명이 자본금 50억원을 출연한 (주)전북항공은 제주항공처럼 정기운송으로 바꾸기 위해 최근 자본금을 200억원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경북지역에는 민간사업자들이 가칭 ‘신라항공‘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경북도의회가 제주항공과 같은 저가의 지역항공사 설립을 집행부에 요구해 설립문제가 불거졌고 민간사업자들이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경북이 직접 자본을 투자하라는 민간의 요구에 경북도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도 영종지구를 국제적 특성화 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8대 시책사업의 일환으로 국제선 환승이 용이한 국내선 중심의 저가 항공사 설립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즉 부산이나 제주 등의 승객이 외국으로 나가려면 일단 김포공항을 거쳐 또다시 육로로 2∼3시간을 걸려 인천 영종도 공항에 나가야 한다. 인천시는 이 같은 경제적·시간적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제주∼인천(영종도), 부산∼인천 등의 항로를 개설한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강원도 원주상공회의소는 최근 원주시가 중앙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 전철 복선화가 진행돼 수도권과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들어 지역민항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밖에 부산시도 최근 지역항공 설립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나 민간단체들이 잇따라 민항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함으로써 한정된 국내시장에 과잉공급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저가항공은 새로운 성장모델이기는 하지만 가뜩이나 좁은 국내 민항 시장에서 민간사업자와 지자체들이 시장에 뛰어드는 현상은 문제”라며 “수익을 못 낼 경우 엄청난 직접 투자금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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