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이 가뿐 숨을 내쉬고 있다. 지난 달 29일 국무총리실이 "제주 해군기지를 계획대로 2015년까지 건설하기 위해 준설 등 본격적인 공사를 빠른 시일 안에 시작하겠다"고 밝히면서 공사는 급물살을 탔다.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공사중단을 요청했지만 국방부는 공사 강행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 달 7일엔 구럼비 바위의 시험 발파가 시작됐다.
이러자 기지건설에 반대하는 강정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결사적으로 반대에 나섰다. 해군기지 건설 공사현장 진입로엔 강정교라고 하는 조그만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엔 지금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돈다.

8일 오전 9시40분 경,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됐다. 주민 한 명이 구럼비 바위 발파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곧 경찰의 제지를 당했고, 이에 격분한 주민은 실신하기에 이른다. 이러자 공사 현장에서 농성을 벌이던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문정현 신부가 격분한 나머지 경찰들과 맞섰고, 이 과정에서 충돌은 격화됐다. 공사 현장 진입을 시도하던 활동가 한 명이 연행될뻔한 상황도 연출됐다.


다행히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장은 이내 안정을 찾았고, 문정현 신부 이하 4명의 농성자들만 빼고 나머지 시위대들은 경찰 저지선 밖으로 빠져 나갔다. 강정의 오전은 이렇게 지나갔다.
오후가 되자 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침 이 날은 서경석 한국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주도로 보수단체의 집회가 예고됐었고, 오전 11시35분 경 두 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시위대 앞에 등장했기에 양측간의 충돌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오후 1시를 넘기면서 속속 집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노인들이었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띠었다. 자신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제주도민이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평화를 이룩하려면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 환경보다는 안보가 우선이다"면서 강한 소신을 드러냈다.
보수단체의 집회는 시종일관 해군기지 건설 반대자들을 비판하는데 집중됐다. 이 날 연사로 나선 안형환 전 한나라당 대변인은 "한명숙은 2007년 총리시절 해군기지가 대양해군 육성과 남방항로 진출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며 "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수장인 이해찬 씨도 예전에 '평화의 섬이라고 해서 해군기지를 막는 건 말도 안된다'고 했다가 이제는 딴소리를 한다"고 해군기지 문제가 전정권에서 시작된 것임을 꼬집었다.
집회를 주도한 서경석 목사는 "구럼비 바위는 수많은 바위 중 하나"라면서 "구럼비 바위가 일출봉처럼 제주도의 대표 관광자원이 아니다"고 말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집회 후 강정 마을을 돌아볼 예정이었으나 참가자 대부분은 집회 중간 흩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경찰이 기지반대 시위대와의 충돌을 우려해 차벽으로 진입로를 막아 우려했던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구럼비 바위, 강정 사태를 이해하는 열쇠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핵심은 바로 구럼비 바위이다. 공사 강행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해군, 그리고 공사에 찬성하는 쪽은 구럼비 바위의 보존가치가 낮다고 주장한다. 구럼비의 파괴가 환경재앙을 일으킨다면 제주도에 골프장을 44개나 지었을 때에도 반대의견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강정 주민들과 환경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구럼비 바위가 외부에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럼비 바위는 전세계적으로 제주 강정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바위인데다 용천수가 흘러나와 이곳 주민들은 물론 남제주군 주민들의 식수원이 된다는 것이다. 또 용천수로 인해 습지가 형성됐고, 여기에 수초, 맹꽁이 등 온갖 생명들이 서식하는 생명의 낙원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구럼비 바위와 주변해안은 2004년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고, 같은 해 제주도도 이곳을 절대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해군 기지건설 프로젝트가 실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주도 의회는 2009년 12월 구럼비 바위를 절대 보전지역에서 해제시킨다. 문제는 해제과정이었다. 당시 의회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은 날치기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구럼비 바위의 가치는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의 결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UNESCO에 따르면 구럼비 바위는 세계자연유산이나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사실상' 지정된 지역이나 다름없다. UNESCO측이 만약 구럼비 바위와 주변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경우 해녀들이 물질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것을 고려해 공식적으로는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여전히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정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도 반대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양쪽이 극적인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자칫 극한의 상황이 벌어질 위험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명피해마저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 어느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