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피해 증가
상태바
야생동물 피해 증가
  • 글 /김정숙 기자
  • 승인 2005.10.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구에서 적으로…야생동물 피해 늘어
농촌수도권 피해심각, 정부 지자체 대책마련 부심
발 문: 전남 광양시 외곽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는 정모씨는 “요즘엔 농사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야생동물 피해가 심해졌다”며 한숨쉬었다. 충북 옥천군의 이모씨는 지난달 추석 직전 선산에 성묘하러 갔다가 봉분이 없어진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멧돼지가 산소를 여러번 파헤친 끝에 아예 봉분이 없어진 것이다. 야생동물 피해가 워낙 심해지자 시·군별 엽사들로 구성되는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은 올해 처음으로 밤에도 총기를 사용해 사냥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10월 2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멧돼지, 까치, 청설모 등 유해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 규모는 2백6억3,900만원으로 2002년(121억원)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났다. 이중 멧돼지에 의한 피해 규모는 2002년 31억원에서 2003년 51억원, 지난해에는 82억원으로 해마다 급증해 농민들에게 가장 큰 골칫덩이다.

도심 공포에 떨게한 ‘멧돼지 사건’
최근에는 서울 도심이나 도시 근교까지 출몰, 피해를 입히는 등 새로운 국면을 보이고 있다.
서울 강동소방서에 따르면 9월 29일 0시 16분경 서울 강동구 암사동 사거리의 한 주점에 몸길이 150cm, 몸무게 130kg의 대형 멧돼지가 들어와 술을 마시던 백모(29)씨의 오른쪽 허벅지를 물고 달아났다. 이 멧돼지는 이어 강동구 천호동 천호공원에서 정모(42)씨를 들이받아 정씨가 넘어지면서 뇌출혈을 일으켰다.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백씨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곧바로 퇴원했으며 정 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멧돼지는 이날 오전 11시경 서울 광진교 북단에서 발견됐으나 경찰 수렵회원 소방대원 등 100여 명으로 구성된 포획단을 피해 강변북로를 따라 40여 분간 도망치다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사냥개 10여 마리를 동원해 멧돼지를 추적하던 포획단은, 700여 m를 헤엄쳐 올림픽대교와 천호대교 사이 송파구 한강시민공원 쪽으로 올라온 멧돼지가 격렬하게 반항하자 칼로 찔러 도살했다. 멧돼지의 사체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매립되었다.
한국야생동물협회 관계자는 이 멧돼지는 야생이며 먹이를 찾아 경기 구리시 쪽 야산을 타고 서울 도심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멧돼지의 도심 출현은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멧돼지는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도 서울 난지도 등지에서 여러 차례 목격됐으며 올해 5월에는 서울 공릉동 아파트 단지내를 활보하다 사살되기도 했다.

농작물 피해도 상당규모
지난해 인천(6억5천만원)·대전(3억6천만원)·부산(2억3천만원) 등 광역시의 야생동물 농작물 피해 규모도 상당했다.
특히 경기 북부지역에서 야생동물로 인한 농가 피해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9월 9일 경기도 제2청에 따르면 지난해 북부 10개 시ㆍ군의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모두 11억4,400여만원으로 2003년 8억9,400여만원보다 2억4,000여만원이 늘었다.
농작물별로는 채소류 피해가 4억5,600여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벼 3억8,400여만원, 과일류 1억9,600여만원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피해를 끼친 동물은 까치가 5억3,300만원, 멧돼지 3억8,900여만원, 고라니 1억4,900여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시ㆍ군별로는 양주시 4억3,000여만원이 가장 많았고 이어 연천군 2억3,500여만원, 남양주시 1억4,800여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같이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야생동물 개체수 증가에다 주간에만 포획이 가능하고 막상 피해가 많은 야간에는 포획을 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연천군의 경우 민통선 지역 내 총기포획 허가가 전면 금지돼 농가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경기도 제2청은 민통선 농경지 보호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6억9,300여만원을 들여 파주시 201농가(230㏊)와 연천군 57농가(55㏊)에 대해 전기울타리 등 농작물 보호시설을 설치했다.
그러나 농가 부담금이 40%에 달해 보호시설 설치 면적이 전체 민통선 농경지 6,640㏊의 4.3%(285ha)에 불과한 실정이다. 농민들은 또 보호시설 설치 이후 야생동물이 시설 없는 농지로 몰리는 부작용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환경 복원에 야생동물 피해 증가
수도권, 대도시 지역까지 야생동물 피해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균형이 무너진 것과 ‘웰빙’ 풍조가 한몫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멧돼지 퇴치기 제조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친환경농법, 유기농 바람으로 화학비료 대신 퇴비를 많이 쓰면서 굼벵이, 지렁이가 늘어났다”며 “이를 먹기 위해 멧돼지가 인가 바로 옆 텃밭까지 망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림부는 지난달 유해동물 포획에 실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총포규제를 완화해달라고 경찰청에 요청했다. 또 전기·전선 울타리, 방조망, 경음기 등 야생동물별로 효과적인 농작물 피해 예방법을 연구·개발해 조속히 보급해달라는 공문을 농촌진흥청에 보내기에 이르렀다.
환경부와 농림부는 강원 양구·인제군, 충북 옥천군, 경북 문경시 등 피해가 심한 7개 도, 10개 시·군에 실력좋은 엽사들로 구성된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4명 이내로 팀을 이뤄 10월 한달간 유해 야생동물 출몰·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출동, 사냥에 나선다.
작년까지는 수렵기간(11월부터 4개월간) 중에도 해가 지면 총을 관할경찰서에 반납하도록 했으나, 피해가 막심하다는 농민들의 하소연에 따라 올해는 10월 한달간 야간에도 총을 소지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야생동물 피해방지단 운영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을 즉시 포획하는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이 경기 연천, 강원 양구 등 전국 10개 시·군에서 10월 한달동안 운영된다.
환경부는 수확기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대책을 확정하고 이 기간에는 전기 울타리 등 피해예방시설 지원 및 특별수렵장 운영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처음 운영된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은 포획실적이 있고 밀렵·밀거래로 처분받은 적이 없는 모범엽사 15명 내외로 구성되며, 민간단체회원을 1명 이상 포함하도록 해 무분별한 야생동물 포획을 막기로 했다. 환경부는 10개 시·군의 시범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전국적 시행 확산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피해예방시설 설치를 위한 지원도 연차적으로 확대키로 했다. 환경부는 농림부와 농촌진흥청 등과 연계해 FTA 기금지원을 멧돼지 퇴치용 전기울타리 설치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유해야생동물별 농작물 피해예방과 퇴치방법을 개발·보급키로 했다. 또한 산간지역의 옥수수, 고구마 재배지역처럼 예방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운 곳에는 지자체가 조례를 정해 피해보상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권장키로 했으며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예방시설 설치비 지원 및 피해보상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이 끝나는 내년 2월에는 피해보상기준과 절차 등도 제정·고시할 계획이다.


농작물 야생동물 피해 보상 전망
그런 가운데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보상이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보은군은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보상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지난 9월 28일 관련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조례안은 야생동물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 대상작물이 농작물(산림작물을 포함한다)일 것 등으로 보상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피해보상은 총 피해면적이 1000㎡ 미만이거나 총 피해보상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 시설하우스, 주택의 울타리 기타 시설물로 둘러싸인 곳에서 발생한 피해인 경우, 각종 법령 등에서 경작을 금지하는 곳에서 발생한 작물 피해, 야생 동식물보호법 등에서 보상이 추진되고 있거나 이미 이루어진 경우 등은 피해보상에서 제외된다. 또 피해보상 한도는 연간 1농가당 최대 300만원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군은 이 같은 내용으로 조례안을 입법예고해 10월 18일까지 주민들의 의견을 접수 받아 타당성 여부를 검토한 후 타당한 의견은 조례에 반영해 올 12월말까지 조례를 공포한다는 내용이다. 조례안이 시행되면 야생동물로부터 농작물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일정액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군 관계자는 “지난 2월 야생동식물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환경부가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 보상 기준 마련을 마련하기 위해 용역을 발주, 내년도 상반기면 용역 결과가 시행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보은군은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보상을 신속히 시행해 농가들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결하기 위해 조례안을 서둘러 입법예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경남도역시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 방지단’을 구성하고 보상비 일부를 지원하는 등 농작물피해예방대책을 추진키로 했다. 9월 28일 경남도에 따르면 최근 농촌지역마다 유해 야생동물의 서식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피해방지단을 설치키로 하고 보상비 일부 지원을 위해 내년도 도비를 포함한 국비 및 시·군비 등을 확보하기로 했다.
도내 산간 농지와 소규모 영세농 등지의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2003년 32억4,300만원, 2004년 33억2,000만원, 올들어 6월 말 현재 9억7,600만원으로 집계가 돼 피해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인 것. 이에 따라 경남도는 야간 총기사용 등을 경찰에 협조 요청하는 한편 피해 농민들의 포획허가 신청이 있으면 즉시 허가하고 관할 경찰서에 총기영치해제 협조요청으로 신속하게 출동·포획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피해가 큰 지역을 대상으로 수렵관리협회 등 민간단체가 추천한 엽사 또는 지역 모범엽사를 지역별로 15명 내외로 구성한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 방지단’을 운영키로 했다. 한편 2006년도 피해예방시설 설치비와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보상비로 예산을 확보해 피해 농민에게 지원할 방침이다.

동물 보호와 농작물 보호 적절히 이뤄져야
공들여 키운 농작물을 조류나 청설모, 각종 야생동물로부터 지키려는 농민들의 안간힘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산간마을의 채소나 고구마, 콩밭에 멧돼지나 고라니의 접근을 막기 위해 철조망, 심지어 전기울타리를 치는 농가까지 있다.
개체수가 크게 늘어난 야생동물의 농작물 침해가 농민들의 한계를 넘은 듯하다. 2002년 121억원 정도였던 피해액이 지난해 206억으로 늘었다. 전체로는 아직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피해가 집중된 산간 지역 농가로서는 한해 농사가 결딴날 정도의 심각한 문제다.
농림부와 환경부가 10월부터 야생동물 피해가 심한 전국 10개 시ㆍ군에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설치해 시험 운영하는 등 피해예방 대책을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다. 모범 엽사들로 이뤄진 방지단은 사전에 포획허가를 받아 야생동물을 잡되, 민간감시단체 단원이 남획 여부를 감시한다.
방지단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신속한 총기 영치 해제를 가능하게 하고, 야간 총기 사용을 허용하는 등 포획 규제를 완화한다. 방조망이나 철조망, 전기울타리 설치 지원도 함께 이뤄진다. 기존의 유해야생생물 포획허가제를 보완하는 것이지만 야생동물 보호정책의 수정이라고 할 만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야생동물 보호와 농작물 보호라는, 언제고 충돌하는 목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다. 농작물 피해 현실을 들어 야생동물에 무조건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야생동물 보호를 이유로 농가 피해를 외면하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포획 중심의 정책으로 방향을 틀거나 하는 대신 피해방지 시설 확충이나 피해 보상 실질화 등 우회책이 우선돼야 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