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방송, 음악 전방위 인기몰이…장기적 안목 필요
한류의 힘이 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일본에서 ‘욘사마’ 돌풍을 일으켰고,이에 힘입어 드라마와 영화 수출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1,000만 관객돌파라는 ‘꿈’을 이뤄낸 한국 영화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점유율 50%를 넘어섰다. 국내에서 불황인 가요시장도 해외에서는 낭보를 터뜨리고 있다. 비, 보아, 신승훈 등 국내가수들이 앞다퉈 해외진출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 그러나 그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반짝 인기로 사그라 들지도 모른다는 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금’으로 제2의 한류 도모
일본 TV에서 한국 배우를 만나는 일은 낯설지 않다. 3대 지상파 방송사에서 한국 드라마가 나란히 시청률 경쟁을 벌였다. 후지TV에서는 김희선 권상우(슬픈 연가)가, TBS에서는 조인성 하지원 소지섭(발리에서 생긴 일)이, NHK에서는 이병헌과 최지우(아름다운 날들)가 일본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불러 들였다. KBS 글로벌전략팀 김신일 PD는 “요즘 한국에서 만들어진 미니시리즈는 전부 외국에 팔린다”며 “국내에서 인기가 있는 작품의 경우는 선매 경쟁이 벌어질 정도”라고 설명했다. 비와 송혜교가 주연한 ‘풀하우스’의 경우, 현재까지 동아시아 10개 국가에 판매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2004년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고,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꿈의 숫자로 여겨졌던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베를린 칸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는 지난해 내내 수상소식이 전해왔다. 다들 “어렵다”고 말하던 2004년, 한국 영화는 유일하게 잘 나가는 품목이었다.
일본에서 한국 영화를 만나는 일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는 10여편. ‘욘사마’ 배용준이 출연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비롯,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올드 보이’ ‘살인의 추억’ ‘고양이를 부탁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등 다양한 영화들이 소개됐다. ‘실미도’를 수입한 일본 굴지의 영화사 도에이의 쿠사나기 슈에이 전무이사는 “일본 영화계는 한국 영화계의 열정과 파워를 배워야 한다. 한국 영화는 뛰어난 점이 많다. 한일 양국은 교류를 활발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류는 드라마에서 이제 대중음악 분야로 그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보아가 2001년 일본에 진출, 유일하게 오리콘 차트에 오르며 가요계의 한류를 주도했지만, 무명가수 K가 지난 15일 오리콘 차트에서 4위에 올랐고, 지난달 25일에는 한국 가요계의 빅3인 비, 세븐, 보아가 오리콘 차트에 동시에 오르는 등 차세대 한류가 가요계로 이행될 것임을 예고했다.
드라마 ‘대장금’이 중화권을 비롯,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 조짐을 보이자, 한국관광공사가 아시아권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이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태세다. 특히 지난해 ‘겨울연가’ 및 ‘욘사마’로 불리는 배용준씨 등으로 일본내 한류열풍이 거세게 일다가 올들어 주춤해지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을 ‘대장금’을 통해 극복하려는 것.
관광공사는 지난해말 일본 NHK 위성방송을 통해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된 데 이어 오는 11월 지상파 방송을 앞두고 대장금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공사는 특히 대장금은 현대물 드라마와 달리 음식, 의복, 건축, 의학 등 우리 전통문화를 제대로 홍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류확산에 더욱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공사는 지난 9월 13일 국내여행업자 150여명과 함께 대장금 관광상품 개발을 위해 수원 화성행궁, 경복궁 소주방터 등 대장금 촬영지를 답사했으며 10월에는 일본 언론인 및 여행업자를 초청, 대장금 여행지를 홍보한다는 계획이다.
드라마 대장금은 올해초 홍콩에서 4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 1일부터 중국대륙에서 호남위성TV를 통해 매일 2회씩 방영하고 있다. 첫회에 이미 8.6%라는 중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보여 중국 본토에서도 대장금 열풍을 이어나갈 태세다. 일본에서도 지난해말부터 위성방송을 통해 방영된 이후 대장금 관련 요리책과 인물구성 자료집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한류’ 세계서 주목
할리우드도 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본 홍콩까지만 들렸다가 바쁘다며 한국을 외면하고 갔던 외국 스타들도 지난해말 줄줄이 한국을 찾았다.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2’의 르네 젤위거, ‘내셔널 트레저’의 제리 브룩하이머, 니컬러스 케이지등이 줄줄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제 미국을 제외하고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세계 유일한 국가이자 아시아 영상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한국을 모른 척 할 수 없게 됐다는 반증이다.
드라마를 사고 파는 BCWW(국제방송영상견본시) 역시 하반기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켓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11월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4회 ‘BCWW 2004’에는 26개국에서 온 706개사, 3,200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도쿄필름페스티벌과 대만이 타이베이TV마켓 행사 주간 사이에 열린데다 해외 바이어들 초청 지원도 적었지만 성황을 이뤘다. 3일간 거래실적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신장한 1,300만 달러.
해외 바이어어들의 주요 관심 대상은 당연히 한국 드라마였다. KBS MBC SBS 등 방송 3사의 부스에서는 밀려오는 바이어들로 북적였다.
영화산업은 극장 매출과 해외수출, DVD와 비디오 TV 등 2차 판권시장에서 수익을 올린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극장매출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지나치게 흥행성적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부는 ‘한류열풍’, 그리고 이와 함께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스타들이 한국영화의 수익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조사한 2005년 상반기 한국영화 수출총액은 4,180만 9,976달러로 약 42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03년 한국영화의 경상수익 358억원을 뛰어넘는 액수. 상반기 이같은 수출기록을 세운 한국 영화는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외출’, ‘야수’ 등 153편에 이른다. 특히 아시아를 넘어 52개국에 수출됐고 ‘활’, ‘살인의 추억’ 등은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 남미시장도 개척했다.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은 국내에서 122만 관객을 기록하며 예상보다 부진했지만 개봉 전 일본에 30억 원 이상에 판매됐다.
‘친절한 금자씨’ 역시 영화 촬영이 끝나기도 전 중화권 한류스타인 이영애와 칸 영화제 스타감독 박찬욱의 힘으로 20개국에 500만 달러의 수출가를 기록 순제작비 40억원을 다 벌었다. 배용준의 ‘외출’은 CG와 대규모 촬영이 없는 멜로영화지만 아시아 8개국에서 동시 개봉된다. 일본 산케이 신문이 이 영화의 일본수출가를 75억원으로 보도하는 등 ‘외출’은 배용준을 캐스팅하는 순간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과 다름없었다.
하반기에는 한류국가대표 장동건 주연의 대형영화 ‘태풍’과 권상우 주연의 ‘야수’ 그리고 최지우의 ‘연리지’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어 더 많은 수출기록을 예고하고 있다. ‘태풍’은 1,000 여 명의 장동건 일본 팬들이 엑스트라를 자청하며 부산을 방문, 높은 관심을 보여줬고 ‘야수’와 ‘연리지’는 촬영단계부터 일본 개봉날짜가 정해졌다. 이러한 성과에 영화 관계자들은 높아진 수출비중을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부 한류스타가 출연한 작품에 편중되는 모습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외출’ 시사회장에서 “해외도 중요하지만 국내관객들의 반응과 성적이 첫 번째다”고 말하는 배용준의 말처럼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열풍을 스크린에서 계속 이어가려면 더 높은 완성도와 재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씨는 “많은 이들이 한국영화가 일본 열도를 석권하고 있으며 미국 시장 공략도 시간문제라고 알고 있지만 한국 영화 붐 또는 르네상스는 끝나가고 있다”며 “한국영화의 제작-배급-상영 시스템 전체가 돈을 벌기는 커녕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다 구조적으로 곪아 터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즉 2003년까지만 해도 철마다 관객 300만∼400만 하는 대박 영화가 나왔는데, 지난해는 150만∼200만이 고작이고 아무도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게 문제라는 것. 한마디로 한국 영상의 체질개선이 시급하다는 결론이다.
개혁의 시작은 스타의존적인 영화 제작풍토와 이로 인한 다양성 부족부터 바꿔야 한다. 영화제작사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는 “작품 창작의 주체가 작가 감독 PD가 되어야 하는데, 요즘은 스타가 중심이라 창의성과 작품성보다는 스타의 입맛에 맞춰진다. 솔직히 투자 배급사도 스타가 나오느냐 아니냐에 따라 투자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스타가 없으면 투자 받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오카모토 NHK 서울지국 특파원은 “한국 드라마는 이야기자체가 별로 재미있지 않더라도 스타만 출연시키면 된다는 안이한 경향이 있다. 또 어떤 게 인기가 있다면 한 장르에만 우르르 몰려가니 작품의 다양성이 떨어진다. 일본 국민들도 다양한 장르나 스토리가 있어야 계속 한국 드라마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자배급사의 독과점, 외주제작사 횡포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03년까지만 해도 제작사에서 영화를 기획하면 6∼7개 중견투자사의 상황에 따라 제작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상 CJ, 쇼박스 등 메이저 배급사가 거부하면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라도 영화로 만들어지기 힘든 실정이다. 국내 방송국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에이전시들은 주로 방송사를 보고 거래계약을 맺는데 이름도 모르는 외주사가 아시아 시장 혹은 국제 시장을 무대로 마케팅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영화나 드라마 모두 살인적 촬영 스케줄과 비정규직 노동자 수준의 처우도 확보하지 못하는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걸림돌이다.
부실한 콘텐츠, 바가지 상혼도 문제
한편에서는 또 다른 소식도 들려온다. 니혼TV는 지난해 9월부터 방영해 오던 ‘드라마틱 한류’라는 코너를 폐지하기로 했다.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시간대에 10개 이상의 한국 드라마를 방영해 왔던 이 프로그램은 더는 방영할 만한 특별한 작품이 없고 시청자들도 없어서 중단하기로 했다고 한다. 후지TV도 역시 토요일의 한국드라마 방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 한류가 식었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근의 한류 흐름에는 무엇인가 여태까지와는 다른 기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기류들을 감지할 수 있는 몇 가지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얼마 전 배용준이 무대인사에 나서는 ‘외출’의 VIP 좌석권이 10만엔에 일본관광객들에게 팔렸다는 소식도 있었다. 관련 제작사에서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면 아마도 홍보 효과를 위해 그 돈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행사를 기획하고 서비스해서 흡족하게 돌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일을 벌인 사람들은 제작사와 상관없는 일부 장사치들이었고 부실한 여행상품은 관광객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일부의 이러한 행태처럼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부실한 콘텐츠와 바가지 상혼은 결국 한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문화산업이 이렇게 급속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한류열풍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한류의 거품을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한류의 효과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문화산업의 발전과 문화외교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초기의 한류가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의 각 영역에서 몇몇 사람의 뛰어난 창의력과 열정으로 만들어낸 개별적 성과라면 이제는 이러한 개인의 노력이 각 분야에 폭넓게 자리잡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고 관리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과 정부의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가 걱정하는 한류의 거품은 비단 한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화산업의 전반적인 거품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최근 몇 년간 세계를 놀라게 한 초기의 한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없어 생겨난 것이다.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에 모두 해당되는 이러한 거품을 거두기 위해서는 시류에 편승하는 마구잡이식 이벤트를 지양하는, 약간의 호흡을 조정하려는 절제의 미덕과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한류에 대한 좀 더 진지한 분석과 전망을 제시하여 국가장래의 최대 경쟁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울러 한류상품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아시아 각국이 공동 투자하고 시장을 공유하는 공동 제작이 필수적이다. 어차피 시장에 한계가 있는 우리로서는 아시아 나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상품을 만들어 이익을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 일방적으로 독점하는 방식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의 문화상품을 좋아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좋아하고 즐기며 활용하고자 하는 상호 호혜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문화부에서 지원하고 부산국제영화제와 동서대학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매우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재능있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영화아카데미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시아가 함께하는 진정한 한류를 위한 진지한 첫 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중국 당국에 ‘한류’ 관련 규제완화 요구
우리 정부가 중국내 각종 한국 문화사업에 대한 허가절차 간소화를 중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외교통상부는 8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우리나라와 중국간 문화교류협력분야 정례협의인 제6차 한중 문화공동위원회 회의에서 이 같이 요청했다고 9월 6일 밝혔다. 현재 중국에서 불고있는 ‘한류’를 가속화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중국정부에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이 회의에는 구본우 외교부 문화외교국장은 “중국내에서의 한류 관련 공연 등 각종 문화사업에 대한 복잡한 허가 절차로 시간이 너무 소요돼 간소화 필요성을 제기했다”며 “게다가 가수 등 우리나라 연예인이 중국에서 공연할 때 중국내 합작회사를 통해야 해 비용이 증가하는 부작용 도 있어 이에 대한 개선도 요구했다”고 밝혔다.
딩웨이(丁偉) 중국 문화부 부장조리는 우리측의 불만을 잘 이해하며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현재로서는 문화사업 뿐 아니라 중국내에서의 모든 활동에 중앙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중국측은 중국 메니지먼트사를 통해야 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중국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오면 비용이 더 많이 들 수가 있다”며 “우리도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으로 각종 규제를 완화하려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덧붙였다. 구 국장은 “중국 정부도 자국내 한류열풍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우리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인 만큼 일단 내년 쯤에 이 문제를 다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