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사랑, 그 편애의 시대
첨단문명이 정착한 후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예술영역은 단연 영상과 음악예술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TV에서부터 손바닥 안에 꼭 들어오는 스마트 기기를 통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영상과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근자에 와서는 3D-TV, IP-TV 등 더욱 새롭고 박진감 넘치는 기기들이 등장해 당분간 이들 예술분야의 발달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렇듯 표면적으로 살펴보자면 인류는 르네상스시대에 못지않은 예술의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들은 자본과 대중취향에 치중한 대중예술에 국한되며,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순수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예술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 속에서 화학적으로 융화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정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누릴 마땅한 권리를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그 출발점입니다. 예술을 행하는 당사자 역시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

“한류열풍에 K-POP 등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문화콘텐츠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 내부의 분위기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편애라고나 할까요. 돈이 될 만하고 자극적이며, 대중친화적인 분야에서는 돈이나 사람이 들끓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순수예술 분야는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고는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드물었습니다.”
그것은 노 단장은 서울시오페라단에서 9년 간 활동하는 동안 ‘오페라’라는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콘텐츠를 상연하는 과정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티켓판매만으로 제작비를 충당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에 가깝다는 평을 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국립 오페라단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민간오페라단은 오죽하랴.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창작능력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임은 자부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무대는 턱없이 부족하고 관문 또한 비좁기 이를 데 없지요. 예술을 공급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관객이 적은 탓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기들만의 리그가 심화되고, 능력보다는 표를 팔고 무대에 서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오페라계에 혁신이 필요하고 국민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 오페라의 대중화를 도모하는 것이며 제작여건을 성숙하게 키워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런 고민들 속에 빠져 있던 가운데 노 단장이 탁계석 음악평론가를 만난 것은 또 하나의 작은 기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오페라와 관련된 공개 오디션을 제안하셨어요. 지금 준비 중인 <나도 오페라 가수다>라는 프로젝트가 그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지요.”
예술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꿈꾸다

이에 인씨엠 오페라단은 매년 2회 정기공연과 초청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씨엠 극단은 청소년극단에서 출발 후 재창단하여 현재는 7명의 상임단원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남성중창단 인씨엠 쏠리스티와 인씨엠 오페라합창단이 있어 국내에서 민간단체로는 유일하게 7개의 소속 공연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노 단장이 구축한 거대 예술네트워크로 파악할 수 있다. 인씨엠이 이태리 고어로 ‘함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심이 되는 인씨엠예술단 산하에는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오페라단, 오페라합창단, 소년소녀합창단, 극단, 아미치, 쏠리스트가 물리적, 화학적으로 융화된 채 예술의 향기를 피워내고 있다.
“예술은 천상이 아닌 지상에서 이뤄지는 활동입니다. 따라서 열정과 전문성만으로는 작품을 완성할 수 없지요. 튼실한 경제력이 밑바탕 될 때 보다 완벽하고 풍성한 공연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공연은커녕 단체를 이끌어갈 수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민간 예술단체들이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종사자들의 처우나 활동환경이 열악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인씨엠예술단은 4대 보험에 가입된 인원만 45명이 될만큼 종사들의 활동지원에 아낌이 없다.
인씨엠예술단 노희섭 단장에게 있어서 “배가 고파야 예술이 된다”는 이야기는 낡아 빠진 논리다. “예술인들의 배가 불러야 더욱 질 높은 공연이 나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자립을 이뤄내는 것이 노 단장의 머릿속에 가득찬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노동부의 지원과 순수 공연수익으로 그럭저럭 버텨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민간단체의 특성상 이러한 지원과 후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불투명하고 지속적으로 일정한 기업후원이 없기 때문에 그는 더욱 질 높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공연이 관객을 모아줄 것이며, 그렇게 모인 관객들은 인씨엠예술단에게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