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부쳐도 벤처 통해 전인미답의 꿈 꾸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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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 부쳐도 벤처 통해 전인미답의 꿈 꾸고 싶어
  • 김현기 실장
  • 승인 2012.02.0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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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가 나더라도 창업정신을 훼손하지 않을 것

벤처기업은 고도의 전문능력과 창조적 재능, 그리고 기업가 정신을 살려 대기업에서는 착수하기 힘든 특수한 신규 산업에 도전하는 연구개발형 신규기업을 뜻한다. 보통 벤처사업은 젊은이들이 주축이다. 경제적, 직업적 위험을 무릅쓰고 인생을 건 모험을 벌여야 하는 벤처사업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벤처산업 중심지인 실리콘 밸리엔 인생의 모험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이 가운데 정일남 (주)JSI실리콘 대표는 정년퇴임 이후 뛰어든 보기 드문 벤처사업가다.

정일남 대표는 1943년 생이다. 우리나이로 일흔이다. 국가부도위기를 몰고왔던 IMF 구제금융 이후 한창 일할 나이인 40~50대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내몰리고 있다. 틀에 박힌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 창업을 준비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고급 연구인력의 경우, 고부가가치의 벤처사업에 뛰어들 수 있지만 젊은이들과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정 대표는 정통 기업인 출신도 아니다. 정 대표는 평생을 규소화학 연구에 바친 학자다.

정 대표는 한남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햄든 시드니 대학에서 화학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북텍사스대학에서 유기금속화학을 전공해 1974년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취득 후 남가주대학에서 1년간 연구원으로 재직한 후, 197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 해외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선임연구원으로 위촉됐다. 이후 정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책임연구원, 실장, 센터장을 거쳐 2004년 정년 퇴임했다. 정 대표는 KIST에서 몸 담았던 30여 년의 세월은 인생전부였다고 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도전으로 자리에 연연하고픈 욕심은 없었다고 토로한다.

미래의 새로움 위해 미련 버려

“국내최고의 연구기관에서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는 현장을 뛰었고, 연구결과를 발표하러 세계를 누볐습니다. 다양하고 폭넓은 삶을 경험한 건 시대의 혜택이라 생각합니다.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은 KIST에 감사합니다. 자랑스런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붙잡을 수 없는 과거를 서러워하지 말자, 미래의 새로움을 채우기 위해 과거를 버리자고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정 대표가 창업한 (주)JSI실리콘은 실리콘 신제품 및 응용방법을 개발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유기규소 화학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정 대표의 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실리콘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실리콘은 유기물이 결합된 규소와 산소로 이뤄진 고분자 화합물로 원래 자연 상태에서 나오지 않는 합성 제품이다. 정 대표는 KIST 재직 시절 규소와 유기물을 직접 반응시키는 새로운 합성방법을 개발해 냈다. 이에 힘입어 실리콘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이 개척될 수 있었고, 동시에 신제품이 개발될 수 있었다. 정 대표는 실리콘 기술의 사업 가능성에 주목했다.
“새로운 화합물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 있으므로 원천기술입니다. 얼마나 많은 용도를 개발하느냐에 따라서 큰 산업이 될 수도 있어요. 이런 기술을 사장시키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문득 ‘특허나 논문으로 발표된 결과를 산업현장에 적용시키는 일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 가진 실리콘

정 대표에 따르면 국내 실리콘 공업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공업적인 용도가 다양해 실리콘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리콘은 전자공업에서 많이 쓰이는데 전자기술 발전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꾸준히 새로운 화합물이 필요한 상황이지요.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인 삼성과 LG는 최첨단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연구개발에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물질을 사용해 성능이 더 좋은 신제품을 만들거나 새로운 공정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자소재 시장이 커짐에 따라서, 그만큼 관련 기업의 성장 가능성도 높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규소 화합물을 만들어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공급한다면 새로운 벤처회사의 시범이 될 것입니다.”

높은 시장성에도 불구, 평생 연구에 헌신한 학자가 벤처사업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창의력이 필요했고 이를 뒷받침할 재력과 체력이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지 정 대표 자신은 잘 몰랐다. 연구에 매진하느라 자신을 검증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던 것이다. 젊은이들도 버거워하는 벤처 사업에 예순이 넘은 늙은이가 뛰어드는 일이 과연 어울리는 일인가도 의심스러웠다. 그렇지만 정 대표는 모험을 감행했다. 새로운 꿈을 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벤처를 통해 꿈을 위해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정상을 향해 올라가려고 합니다. 벤처회사 운영이 눈보라 속에서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것 처럼 산소가 부족해 숨을 헐떡이는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이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벤처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건 바로 건강이다. 건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연구와 사업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 대표는 기독교 신자이다. 신앙이 돈독해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남서울은혜교회 장로를 맡고 있다. 건강도 신앙으로 관리해 나간다. 신앙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정 대표가 강조하는 건강관리의 비결이다.

이윤만으로 감동 주지못해

정 대표는 회사가 유지되려면 이익을 내야 하지만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는 소비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창업 목표를 정했다. 바로 작지만 강한 기술력, 투명한 회사운영, 노년 및 청년실업 해소다.
이런 목표들은 규모를 키우기 보다는 작지만 최고의 기술을 보유해야 하고,‘정직’이란 전제하에 기업과 사회가 운영되어야 하며, 기업을 통해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춘 중견 기술인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정 대표는 연륜을 갖춘 고급기술 인력들이 은퇴와 함께 그들이 지닌 기술력과 노하우, 그리고 연륜 마저 사장되는 일에 많이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어하는 열망이 무척 강하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정 대표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창업정신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부당이익이 아무리 크더라도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이 이익을 위해 자기 명예나 정직성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회사도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부당하게 돈을 벌어서는 안 됩니다.”
사업은 현실이기에 이상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현실에 급급하다 보면 이상은 살아남기 어렵다. 무엇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안일을 뿌리치는 모험심,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정일남 대표는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을 몸소 보여주는 백발청년 사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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