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패러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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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패러디 문화
  • 글/김영권 기자
  • 승인 2005.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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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인가 사이버 폭력의 경계 인가
억압적 현실에 대한 비판…정치적 자유는 어디까지

인터넷 패러디, 무수한 네티즌의 심금을 울리더니 이제는 근엄한 오프라인 정치 세계로까지 ‘퍼 날라져’ 여야간 논쟁을 낳고 있다. 게다가 선거법의 심판대에도 올랐다. 온라인 세계에서 쑥쑥 자란 이 패러디는 풀기 쉽지 않은 여러 논쟁 거리를 던지고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어느 수준까지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부터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까지 걸려 있다. 과연, 패러디에 대한 규제는 필요한가?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는 무한대로 주어져야 하는 것인가?


패러디 전성시대, 양날의 검
풍자는 인간생활과 정치현실의 악폐나 허위에 대해서 조롱하고 빈정대는 표현 방법을 가리킨다. 현실을 향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되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조롱하는 유머의 한 형식으로 이용돼왔다. 풍자는 오래 전부터 서사문학이나 시문학에서 주요한 표현법이었고 현대에 와서도 연극, 미술, 영화에서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대놓고 비판하기 버거운 상대를 은근히 놀려대는 풍자는 당연히 지배층보다 피지배층에게 어울리는 문화적 양식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권의식이 움트기 시작한 조선 중, 후기 무렵, 양민들의 놀이에는 풍자가 빠지지 않았다. 춘향가, 흥부가 같은 판소리나 하회가면극 같은 연희(演戱)를 보아도 풍자가 얼마나 풍성하게 이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풍자는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되,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이기도 하다.

패러디 전성시대, 양날의 검
가히 패러디(parody) 문화의 전성시대라고 일컬어질 만큼 패러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잉러한 흐름을 타고 인터넷에서 정치 패러디가 일상화함에 따라 표현의 자유와 저작권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4.15 총선 때는 특정 정치인을 소재로 한 패러디를 인터넷에 유포시킨 이가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그러면 정치 패러디는 어느 수위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원래 패러디는 문학 작품의 한 형식으로 어떤 저명한 작가의 시구나 문체를 모방하여 풍자적으로 꾸민 익살스러운 시문을 말한다. 무엇보다 패러디의 장점은 유명한 원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약간의 손질로 인해 세인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아마추어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빠른 유포 등으로 인해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패러디 문화는 한 번 보고 웃고 넘길만한 작품들이 대다수를 이루지만 최근에는 많은 수의 패러디 물들이 사회의 통념을 비트는 풍자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 단순한 사진 합성에서 시작된 패러디 문화는 이제 플래시 에니메이션을 넘어 CF나 영화에 이르기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실례로 만두 파동이나 대통령 탄핵, 서울시 이전, 국민연금 파동 당시에도 패러디 물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대변했고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통령 선거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모두가 선거전략의 한 부분으로 패러디 물을 제작, 발표하는 사례도 있을 정도로 패러디 문화는 이미 사회의 한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정치의 풍자, 풍자의 정치
사실 오늘날에 와서도 풍자는 넘쳐나고 있는데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에서 가장 활발히 일어난다. 불만이 있으면 풍자가 생기는 법. 그중 정치적인 것은 가장 비옥한 풍자의 토양이다. 더러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기발한 패러디 물들은 온라인을 떠돌며 네티즌들에게 풍자의 공격성과 카타르시스의 즐거움을 한껏 맛보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한 점은 일반 국민만 아니라 권력층도 풍자를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때는 권력의 피라미드가 좁혀질수록 풍자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17대 국회는 개원하자마자 야당의원들이 모여 정책연구 발표가 아니라 한바탕 풍자극부터 선보였다. 경제정책 실정을 빌미 삼아 대통령을 조롱하는가 하면 정부여당은 집권 후부터 꾸준하게 풍자적인 발언들을 띄워 보냈다. 그야말로 풍자로써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풍자를 사용해서 정치를 하는 셈. 정치권의 풍자는 끝도 없다.
실제로 몇 달 전 야당 쪽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 조롱하니, 여당 쪽에서는 당신도 ‘경포대’(경기도민이 포기한 대선 후보)라고 대응한 일이 있었다. 나도 밤나무, 너도 밤나무란 말처럼, ‘나도 경포대, 너도 경포대’란다.
뿐만 아니다. 인터넷상의 정치패러디가 확산되더니 청와대 홈페이지에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의 여주인공 얼굴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로 바꾼 사진이 실려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다. 영화 ‘해피앤드’의 포스터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재되면서 정치권은 한동안 시끄러웠으며, 정치인 사진을 합성한 패러디 물을 제작한 네티즌이 벌금형을 받는 등의 사태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LG정유 노조가 김선일 씨의 참수 장면을 패러디 한 퍼포먼스를 해 여론의 질타를 당했던 일, 한총련 홈페이지에도 김선일 씨 참수를 패러디 한 사진이 오랜 기간 게재되어 있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렇듯 패러디 문화는 즐겁게 비판하고, 즐겁게 발전하자는 의미의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반면 네티즌 혹은 패러디제작자들의 협의적인 마인드를 그대로 공개해 개인 혹은 단체에게 인격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기수 씨는 “패러디 문화는 일회성 문화이기 때문에 오랜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단기간 내에 폭넓은 보급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런 패러디 물을 가지고 정치적 혹은 사회적으로 이용하려는 집단들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메시지를 표현해내는 기발한 표현력, 사회적 문제를 꼬집는 날카로움, 편협하지 않은 중용적 사고방식. 이러한 기본 요건을 잊지 않았을 때 이 시대의 패러디 문화는 하나의 타당성 있는 문화로 자리잡겠지만 독단적인 사고방식에 기인한다면 결국 하나의 저급문화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킬 건 지켜라’ 사이버폭력특별법 등장?
그 동안 패러디는 신랄한 풍자와 촌철살인의 묘미를 던져주며 네티즌들에게 많이 이용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일부 패러디를 놓고 시끌시끌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패러디라지만 노골적인 사이버폭력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과 사법처리를 운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 이같은 논란은 실제 법원으로 이어지기까지도 하고, 사이버폭력특별법 제정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패러디에 대한 시비는 얼마 전 한 극우매체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저격하는 내용의 패러디를 선보이면서 더욱 격화됐다. 작년 6월, 검찰은 인터넷 아이디 ‘하얀쪽배’를 쓰는 신상민씨(29)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신씨는 패러디물을 인터넷에 게시한 것이 ‘죄’가 되어 벌금형을 선고받기에 이르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한,민,자 3당의 탄핵소추안 발의 이후 인터넷에는 탄핵을 주도한 3당을 비꼬고 비판하는 내용의 수많은 패러디가 올라왔는데 문제가 된 신씨의 패러디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검찰은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표현을 할 수 없도록 하고, 탈법적 선거운동을 막기 위해 정당 또는 후보자를 반대하는 내용이나 정당의 명칭을 나타내는 인쇄물 등을 배부할 수 없도록 한 선거법 255조 규정을 들어 신씨를 기소했다.
24개 작품을 하나씩 보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모아놓으니 ‘정치적 편향과 의도’가 있다는 것. 결국 신씨는 1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아야 했다. 그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패러디 작가에 대한 부당한 선고가 대법원 판례로 남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신씨 외에도 다른 패러디 작가들이 최근 고소고발에 휘말려 소송을 진행중이다. 이같은 현실에 대해 신씨는 “패러디 작가들이 이름 공개를 어려워하고, 창작마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고소고발의 의도는 패러디 작가들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극우 인터넷매체인 ‘독립신문’이 사이트에 올린 이 패러디는 수많은 논란을 낳고 결국 패러디를 제작한 대학생 등이 불구속 입건되는 것으로 일단락 됐지만 그 여파는 사이버폭력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 법안의 요지는 사이버 폭력의 반의사 불범죄 및 친고죄 적용에 예외를 두는 것. 한마디로 피해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처벌할 수 있는 길을 트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이버폭력특별법이 등장한 배경에는 범람하는 패러디 작품이 모두 ‘작품’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창작은 그야말로 ‘살 떨리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법처리를 반대하면서도 네티즌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씨는 “무분별한 패러디는 지양해야 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 여성이나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지켜야 할 선’을 강조했다.

위험한 패러디, 브레이크는 없나?
패러디에 대한 논쟁은 주로 예술로 인정할 수 있을까를 둘러싸고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어디까지 패러디로 볼 것 인가도 불분명한 상태인데다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 들어간 패러디도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패러디가 범람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어떤 식으로 규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패러디는 비꼬아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도구로 잘못된 사회통념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인터넷은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자유가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해도 좋은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받고 싶은 만큼 타인의 인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이 민주 사회의 규범이고 상식이다. 물론 정치인과 같은 공인의 경우 국민의 알 권리가 사생활권에 우선한다. 그렇다면 이런 패러디가 국민의 알 권리와 같은 공공의 이익에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만이 강조되고 민주 사회의 규범과 상식이 무시됐을 때 인터넷은 ‘정보’의 공간이 아닌 ‘폭력’의 공간으로 변한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면 그 순간 표현의 자유의 의미는 소멸된다. 무분별한 욕설과 비방은 그 자체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미 각종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는 확보되었다. 이젠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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