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일 종합편성채널(TV조선, jTBC, 채널A, MBN)과 신규 보도채널(뉴스Y)가 일제히 개국했다. 이는 지상파 방송 중심이던 국내 방송산업의 틀을 뒤흔드는 미디어 빅뱅으로 예상돼 왔다. 종편의 등장으로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이어져 온 지상파 독점시대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1995년 케이블TV의 출범과 유료방송의 등장으로 지상파 방송 독점체제는 한 차례 균열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특정장르에 특화된 케이블 채널들이 방송산업의 기존 판을 깨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종편, 축하받지 못한 탄생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은 케이블TV의 한 종류이다. 한 가지 장르만 방송할 수 있는 일반적인 케이블 채널과는 달리 뉴스를 비롯해 드라마, 교양, 오락, 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방송한다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2009년 7월22일 국회에서 통과된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에 의해 신문의 방송사 겸업이 가능해지고 기업의 방송사 지분 소유 허용에 대한 규제도 완화되었다. 이 같은 신문법과 방송법 그리고 기타 미디어 관련 법안의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종편의 도입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잡음이 발생했다. 종편과 관련된 법안을 통상 ‘미디어법’이라 묶어 부르는데, 이를 여당인 한나라당이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강행처리를 단행한 것이었다.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주장하자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개정안에 반대해 국회의사당에서 10여 일 간 농성을 벌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나서는 등 찬반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2009년 2월25일 고흥길 국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미디어 관련법을 직권 상정했으며, 그 해 7월22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권을 한나라당 소속 이윤석 국회 부의장이 넘겨받아 미디어 관련법을 모두 가결시켰다.
표결과정에서 재투표, 대리투표 논란이 일어났으며, 통과 다음날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3당이 헌법재판소에 방송법 효력정지가처분 및 권한쟁의심판청구를 신청한 바 있다. 하지만 2차에 걸친 권한쟁의 심판청구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이 떨어짐으로써 미디어법의 법적 효력이 발생하게 됐다.
이렇듯 2009년에 통과된 미디어법은 현재까지도 논란이 진행 중인 사안이다. 찬성 측에서는 이러한 미디어법이 관련 산업을 발전시켜 미래의 성장동력을 만드는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찬성파였던 나경원 한나라당 전 의원은 “각종 규제를 풀어 업계에 돈을 끌어와 이를 신성장동력, 즉 미래의 먹을거리로 만드는 기반”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신문과 방송 겸업은 세계적인 추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OECD 국가들이 신문과 방송의 겸업을 허용한 것은 사실이나 최소한의 겸업만을 허용하고 ‘매체 교차 소유권 규정’을 운용하는 등 언론의 독과점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규제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경쟁으로 인한 관련 산업의 활성화를 이룰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언론의 독과점이 심화되어 여론의 다양성을 해치는 등 부작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광고시장의 규모가 작은 상황에서 규제완화 및 철폐가 방송경쟁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미미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디어법 발효 이후 실질적인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의혹과 논란을 낳았다.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이른바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비계량 부문’과 수치로 비교가 가능한 ‘계량 부문’으로 나눠 평가한 후 이를 합산해 최종 결정을 내렸는데, 여기에 많은 의혹과 논란이 불거졌다.
비계량 부문인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의 실현계획’ ‘시청자 권익 실현방안’ ‘방송프로그램 기획·편성, 수급, 제작협력 계획’ ‘경영의 투명성·효율성’ ‘방송발전 기여계획’ ‘콘텐츠 산업 육성·지원계획’ 등에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나란히 3위 안에 드는 등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계량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배점비율 자체가 낮아 사실상 당락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4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중 방송전문가가 2명에 불과해 심사의 전문성 여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렇듯 종편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여러 의혹과 우려가 나오던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한 종편 사업자 선정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고, 특정 언론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 시민단체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심사자료를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2011년 3월8일 종편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하여 보고서를 작성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종편의 경제적 가치가 과장되어 작성됐다”고 보도한 MBC에 대해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MBC의 보도가 허위라고 볼 수 없다”며 과장된 부분을 인정하며 원고 패소판결하기도 했다.
종편, 방송계에 연착륙할 수 있을까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종편이 우여곡절 끝에 개국했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선 이들을 바라보는 방송계의 시각은 그리 곱지 못하다. 국회 강행처리로 탄생한 미디어법을 근거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업을 허가하면서 태생부터 ‘특혜논란’에 휩싸인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편사들은 기존 지상파 방송에 없는 중간광고 허용, 편성 및 심의에 대한 규제완화 등 온갖 특혜를 받고 있음에도 선정과정이 불투명했고, 종편 프로그램 공급사업자 선정과정도 비밀에 부쳐졌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개국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종편사들이 단기간에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존 공중파 등에서 활동하고 있던 연예인들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섭외전쟁에 나서면서 연예인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는 장기적으로 방송산업 전반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종편이 보여주고 있는 ‘방송의 질’도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다. 종편 4사의 평균 시청률이 0.3%대를 간신히 넘기고 있는 실정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다. 정우성, 채시라 등 몇몇 톱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만 1%를 넘기며 간신히 명분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종편을 운영하고 있는 각 신문사들은 서로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낯뜨거운 자사 종편 띄우기에 나서 눈총을 받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개국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거의 매일 반복되는 방송사고는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TV조선의 경우 개국 첫날 시험방송을 하는 과정에서 화면의 절반이 위아래로 분할되는 방송사고를 냈다. 이외에도 각 종편사들은 화면과 음성이 맞지 않는 등 크고 작은 사고를 연발하고 있다.
보도부문에서 선정성과 과장성도 제기되고 있다. 종편사 뉴스들은 각자 ‘단독보도’, ‘특종보도’를 내세워 연일 뉴스를 방송하고 있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화면을 여과 없이 내보내거나 오래 전 뉴스를 마치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인양 과장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채널A가 개국 첫날 뉴스에서 내보낸 ‘강호동의 일본 야쿠자 행사 참석 보도’이다. 잠정은퇴 상태인 방송인 강호동 씨가 고등학교 시절이던 지난 1988년 일본 오사카의 한 일식집에서 국내 폭력조직과 일본 야쿠자가 결연식을 맺는 장소에 동석했다고 단독보도하며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당사자인 강 씨가 “코치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것 뿐이다”라고 밝히면서 종편사의 대표적인 ‘무리수 방송’으로 지적됐다.
종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공개적으로 종편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교수, 법조인, 문화예술인 등 633명은 지난 12월22일 종편채널 출연 및 취재거부를 선언했다. 함세웅 신부 등 진보성향의 사회원로 20여 명이 지난 12월15일 종편취대를 거부한 뒤 이어진 것으로 향후 종편에 대한 범사회적 거부 운동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10개 단체는 이날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조중동 종편 불참여는 국민의 불복종 선언이다”라는 제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현재 운영 중인 종편을 ‘위헌과 위법한 날치기로 탄생한 불법방송으로 규정’하고, ‘99% 국민의 여론을 외면한 채 1% 특권층만을 감싸고도는 공해방송’이라며 ‘시청거부, 종편 투자기업 상품구매 거부, 종편 출연 및 인터뷰 거부’ 등 ‘3붕 운동’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무분별한 광고영업으로 시장의 혼란 가중
한편에서는 종편사들이 무분별한 광고영업을 계속하면서 광고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상대적으로 재정 기반이 취약한 매체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취약매체들은 발전커녕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 복수의 기업 홍보관계자들은 “종편사에 광고를 나눠줄 경우 마이너신문이나 인터넷 등 취약매체들을 위한 광고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다시 말하자면 광고물량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종편4사라는 거대공룡이 탄생한 꼴이라 광고시장의 생태계가 교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침체에 따른 여파로 각 기업들의 경기전망이 비관적으로 나타남에 따라 속속 광고비를 줄이는 추세여서 매체들 간의 광고수주 경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종편들이 무리한 광고영업을 펼치고 있어 광고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종편사들의 대기업에 대한 무리한 협찬광고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종편을 둘러싼 또 다른 논란, 미디어렙
충분히 준비되고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종편이 서둘러 개국함에 따라 관련 법률 정비에도 적지 않은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사들의 광고영업 및 수주에 관한 법률인 미디어렙법을 둘러싸고 새로운 논란이 펼쳐지고 있다.
미디어렙은(Media Representative)은 방송사의 위탁을 받아 광고주에게 광고를 판매해주고 판매대행 수수료를 받는 회사를 일컫는다. 이런 대행체제는 방송사가 광고를 얻기 위해 광고주한테 압력을 가하거나 자본가인 광고주가 광고를 빌미로 방송사한테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일부 막아주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한국방송광고공사라는 미디어렙을 설치하고, 그동안 공영 미디어렙 형태로 이를 독점으로 운영해 왔다. 하지만 2008년 1월27일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 방송법 73조(방송광고 등) 5항을 근거로 한국방송공사의 판매대행 독점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현재 국회에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미디어렙법을 논의하고 있다.
2011년 12월말 현재 여야는 미디어렙법을 두고 막바지 입장조율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여야 지도부가 장기간 진통 끝에 합의안을 도출해 의원총회까지 거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각 당의 일부 강경파를 중심으로 합의파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여야는 종편의 미디어렙 적용을 2년 간 유예하고 미디어렙에 대한 방송사 소유지분을 40%까지 허용하는 등의 핵심쟁점에 의견을 모은 상태이다. 또한 ‘크로스미디어 판매’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1공영, 다민영 체제’를 골격으로 하되, 1개 미디어렙이 2개 이상의 방송사를 맡는 조항을 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향후 협상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일단 지상파 방송이 지상파계열의 채널과 묶어 광고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문제는 중소PP들이 비상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상파방송사가 계열 채널까지 묶어 광고 영업을 시작하면 극심한 광고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12월29일 오전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를 의견서에 담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위원에 각각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견서에는 지상파와 지상파 계열 채널의 광고영업을 금지하는 조항을 미디어렙법이나 하위규칙에 추가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PP업계는 지상파가 계열PP 연계 판매 시 약 1,000억 원 이상의 방송 광고 매출이 추가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미디어렙법 도입 시 지상파 매출액은 최소 1,683억 원에서 최대 6,163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