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 서울시장 선거일, 선관위가 공격받았다”
상태바
“10월26일 서울시장 선거일, 선관위가 공격받았다”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2.01.13 15: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력 의원 비서에 청와대 행정관까지 연루된 특급사건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새벽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과위)와 박원순 당시 후보의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 경찰의 수사결과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실 수행비서를 비롯해 여권 내 실세 보좌관들이 다수 연루된 것으로 밝혀져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은 최 의원의 수행비서였던 공 아무개 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 사건의 또 다른 몸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혹의 서막, ‘선관위 피격’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이었던 지난해 10월26일 사이버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날 새벽 선관위 홈페이지는 새벽 6시15분부터 8시32분까지 2시간 동안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아예 홈페이지에 접속이 되지 않거나 초기화면에서 ‘일반투표소 검색’과 ‘내 투표소 검색’ 등 일부 항목을 클릭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일찍 투표를 하고 출근하기 위해 자신의 투표소를 확인하려던 많은 직장인들이 곤란을 겪어야 했다. 이 사건으로 당일 아침 선관위에는 홈페이지 다운을 항의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투표소를 확인하려는 전화로 업무가 마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시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도 디도스공격으로 추정되는 사이버테러로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의 범인과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즉각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사이버테러 사건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유난히 투표소 이동이 많았다는 점이 밝혀지며, 두 사건의 연관성과 관련한 의혹과 음모론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두 사건의 연관성을 최초로 제기한 이는 인기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였다.

그가 제시한 ‘밑그림’은 이러했다. 젊은층의 투표율이 높아질 경우 서울시장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해 질 수 있다는 여권의 누군가가 다수의 투표소 위치를 바꾸고, 젊은 직장인들이 바뀐 투표소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하는 시간대인 6시~8시 사이에 의도적으로 홈페이지를 다운시켰다는 것.
이에 중요한 점은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선관위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에 의해 일시적으로 다운된 것이 아니라, 선관위 홈페이지와 투표소 확인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는 고리를 일부러 끊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단순 괴담으로 끝날 뻔했던 이번 사건은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가 연루됐다는 점이 밝혀지고 난 후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박희태 국회의장의 비서와 청와대 행정관의 연루 의혹마저 불거지며, 이번 사건을 둘러싼 근원적인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드러난 사건의 재구성

당초 경찰은 이번 사건이 2010년 청와대와 공공기관을 공격했던 디도스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한 달 넘게 공격자를 추적해, 최구식 의원실 수행비서 공 아무개 씨와 실제로 공격을 감행한 IT업체 관계자 등 5명을 검거해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공 씨 등은 지난 10월26일 200여 대의 좀비PC를 동원해 초당 263MB 용량의 대량 트래픽을 유발시키는 디도스 공격을 가함으로써 선관위 홈페이지를 약 2시간 동안 마비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공격을 감행한 강 아무개 씨는 인터넷 도박 등 각종 인터넷 불법사업을 해 온 인물로 알려졌다. 범행 6개월 전쯤 공 씨와 관게를 맺었고, 같은 진주 출신으로 때때로 안부전화를 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씨는 PC방 사업을 하면서 공범 2명을 만났으며, 이후 대구에 K커뮤니케이션즈라는 사업체를 차렸다. 이 업체는 홈페이지 제작대행 등을 사업목적으로 등록했지만, 지난해 3월 법인설립 이후 매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명의 직원들에게 급여를 꼬박꼬박 지급했다.
강 씨가 진행하던 사업은 사업자등록증에 기재된 홈페이지 제작이 아니라, 신분증 위조를 비롯해 대포폰, 대포통장 등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범죄행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 등을 운영해 돈을 벌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강 씨는 이 과정에서 디도스 공격에 필요한 장비와 전문가적인 지식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도박 사이트들이 경쟁 사이트의 영업을 방해하려고 디도스 공격을 하는 사례가 많고 방어를 위해 더 강력한 공격을 하는 성향이 있다”고 밝혔다.
통화내역에 따르면 공 씨는 범행 전날인 25일 9시경 강 씨에게 부재중 전화를 남겼다. 그리고 11시경 강 씨가 공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후 26일 새벽까지 30여 통의 전화통화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범행내용을 상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필리핀에 있었던 강 씨는 공 씨의 요청을 받은 후 국내에 있는 직원들을 동원해 선거 당일 새벽 1시경 실제로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해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이로써 선관위 홈페이지는 26일 새벽 5시50분부터 가해 오전 6시15분~8시32분에 공격 받았고, 박 시장의 홈페이지는 오전 1시47분~1시59분에 1차 공격을, 5시50분~6시52분에 2차 공격을 받아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

선관위와 박 시장 측은 KT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사이버대피소로 이동한 이후 정상가동되기 시작했지만 디도스 공격 강도는 되레 강해져 한때 1,500여 대의 좀비 PC가 초당 2기가의 트래픽을 유발하기도 했다. 경찰은 일반인들이 일과가 시작되면서 전원이 켜지는 PC가 많아졌고 이에 따라 디도스 공격에 참여한 PC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 커지는 의혹들

검찰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들의 개입과 이들 사이에 금전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전거래 사실은 당초 경찰조사 결과에서도 밝혀졌지만, 수사결과 발표 당시에는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후 새로운 인물과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김 아무개 씨가 총 1억 원을 디도스 공격 실행자인 강 아무개 씨에게 전달한 사실이 계좌추적 결과 확인된 것이다.
김 씨는 사건 6일 전인 10월20일 범행을 주도한 공 씨에게 1,000만 원을 보냈고, 11월11일 강 씨의 계좌로 9,000만 원을 송금했다. 이러한 자금의 흐름은 김 씨가 공 씨를 통해 착수금 1,000만 원을 준 뒤 성공사례금으로 9,000만 원을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이번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파악했지만 범죄자금으로 보기 어려워 수사결과 발표 때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해 경찰의 축소 및 은폐 의혹이 일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처음 1,000만 원은 강 씨에게 전달돼 강씨 회사 직원 7명의 급여로 지급됐고, 9,000만 원 중 8,000만 원은 강 씨 회사 임원이자 공 씨의 고향 친구인 차 아무개 씨가 온라인 도박으로 탕진했다.
경찰은 은폐 의혹이 일자 “강씨는 11월 17일과 26일 5,000만 원씩 총 1억 원을 김 씨에게 갚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개인 간의 채무관계라는 입장이다. 김 씨가 돈을 빌려주면서 1,000만 원에 대해선 월 25만 원, 9,000만 원에 대해선 원금의 30%를 이자로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 씨가 범행을 결심하고 김 씨를 만나기 직전 청와대 국내의전팀 박 아무개 행정관을 만난 사실도 확인됐다. 당초 경찰은 25일 저녁 공 씨가 합류하기 전인 1차 술자리에는 김 씨와 정두언 의원 비서 김 아무개 씨, 공성진 전 의원 비서 출신 박 아무개 씨 등 3명만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꺼린 청와대 측이 박 행정관의 술자리 참석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말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추청 되고 있다. 이에 경찰은 박 행정관의 존재를 숨긴 것에 대해 “필요 이상의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 공개를 안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시 1차 식사자리에 함께 있다가 박 행정관과 마찬가지로 2차 술자리에는 가지 않은 정 의원 비서 김 씨는 공개하면서 박 행정관만 인권침해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궁색한 해명이다.

위기의 한나라당, ‘특검카드’ 꺼내나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각종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여당과 청와대를 향한 의혹의 눈초리도 매서워지고 있다.
이에 지난 12월19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된 박근혜 위원장은 수락연설을 통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국민의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철저히 수사해야 하고 거기에 관계되는 사람이 있으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디도스 사건은 헌법 기관을 공격한 것이고, 선거를 방해한 것”이라며 “이는 우리나라 대의민주주의, 대의정치를 위협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박 위원장의 의지에 발맞추어 한나라당은 디도스 공격 사건과 관련해 특별검사제 도입을 야당에 제안했다. 한나라당이 기존 입장을 바꿔 특검을 먼저 주장하고 나선 것은 심상치 않게 악화되고 있는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특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을 수사하면서 청와대가 은폐, 축소하려고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보도됐다”며 “민주당이 주도하는 특검을 통해 범국민적 의혹을 풀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건은 현재 검찰로 넘어가 막바지 수사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흘러나온 말처럼, 만약 이번 사건의 몸통이 따로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초유의 헌법유린 사건이 된다.
이에 본지는 검찰수사가 끝난 이후에도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