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묻힌 국내 뉴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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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묻힌 국내 뉴스들
  • 김길수 편집국장
  • 승인 2012.01.1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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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묻힌 뉴스의 부활을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

37년 동안 북한을 철권통치 해 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숨을 거뒀다. 이로써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으로의 3대 부자세습이 현실화 됐다. 소식을 처음 들은 곳은 식당이었다. 점심을 먹고 있던 중에 국회에 나가있던 정치부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정일이 죽었답니다” 기자는 그 한마디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밥을 절반쯤 남기고 황급히 사무실로 돌아오니 TV의 모든 방송사가 김정일 사망 특보를 내보내는 중이었다. 1월호 마감 중이던 편집부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한 관련 기획기사에 대한 몇 가지 지시를 한 후 줄곧 TV 앞을 지키고 있었다.

필자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지난 2008년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바 있고, 70세를 앞두고 있는 고령을 감안할 때 늦어도 2012년 중에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던 터였다. 정작 걱정이었던 것은 언론에서 꼼꼼하게 보도한 것처럼 북한의 우발적인 도발이나, 향후 김정은 체제의 경착륙으로 인한 한반도의 평화위협 정도였는데, 20여 년 전 있었던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와 비교해도 남북한 모두가 놀랍게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를 호들갑스럽게 보도하는 일부 언론과 방송들이 문제였다. 거의 24시간에 가까운 특보방송을 이어가며 뉴스를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물론 북한의 정세가 어느 때보다 엄혹한 탓에 김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이 한반도의 위기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준 언론과 정부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김정일의 사망시점, 북한주민이 흘리는 눈물이 진실된 것인가 아닌가, 사망 당시 김 위원장 전용 열차가 정지해 있었으므로 북한 당국이 발표한 야전열차 사망은 거짓이라는 등 시시콜콜한 문제를 너무 자주 그리고 깊게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 중앙조선TV가 사망소식을 전하기까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 김 위원장 전용 열차내부 인테리어라든지, 그의 복잡한 여자관계와 이복 자식들을 포함한 가계도 등을 너무 많이 보도했다.

이에 비해 국민들은 차분했다. 서울대 일부 학생들과 일부 급진적 진보단체에서 빈소를 마련했다가 철거당하는 소동이 일어났지만,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일었던 이른바 ‘조문파동’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가도, 시민사회도 그저 차분하게 북한의 동향을 지켜봤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김정일 사망’에 묻힌 국내 뉴스들이다. 김 위원장 사망소식이 전해지기 직전까지 우리는 정치몸살을 앓고 있었다. 10.26재보선 당시 국회의원 수행비서 다수가 연루된 선거방해 디도스 사건이 있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층의 비리도 연일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에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은 급속히 레임덕에 빠지는 모양새였다. 이에 집권여당의 지도부는 총사퇴를 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야당 역시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시민사회세력이 합세한 민주통합당이 출범했으며,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통합진보당의 깃발을 올렸다. 사실상 총선과 대선정국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국운이 걸린 양대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 사망소식이 전해진 후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 듯 이 모든 뉴스들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특히 선관위 디도스 사건에 청와대 비서관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이 터져나온 것이나, 대통령의 친인척이 포함된 측근 비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깊다는 점은 결코 묻히면 안되는 뉴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해가 바뀔 무렵에 김 위원장이 사망했고, 장례식과 애도기간이 모두 끝났다는 것이다. 2012년의 새해가 밝아온 후 일시에 묻혀 버렸던 그 소중한 뉴스들이 어떻게 살아날지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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