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주도 학습법’과 ‘자기주도 교육법’
최근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귀농’과 ‘귀촌’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농촌으로 돌아가는 일은 얼마간의 용기와 준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누구나 친환경적인 삶을 꿈꾸면서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 그 중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교육문제였다.
6.25전쟁의 상흔을 지우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 21세기 IT강국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는 우리민족 특유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경제기반을 마련했지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척박한 땅은 여전한 터라 교육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여전히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 척박한 환경을 발판삼아 더욱 지혜롭고 슬기롭게 발전을 이뤄왔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농촌교육도 딱 그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부모·다문화·조손가정이 많은 현실, 그리고 대부분의 학부모가 농업에 종사하는 탓에 그리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이 모든 것이 우리 학교만의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구축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경남 합천에 자리 잡고 있는 초계중학교(www.chogye.ms.kr/이하 초계중) 노정임 교장의 얼굴에는 여유와 미소가 넘쳤다. 노 교장은 자칭타칭 ‘초계중 전문가’라고 했다. 그녀는 이곳 합천에서 태어났고, 초계중을 다니며 꿈을 키웠다. 한 평생을 지역사회와 함께했으니, 전문가로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계의 사계는 풍광이 늘 멋진 곳이죠. 넓은 한들은 대암산에서 패러글라이더들이 장관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평야이기도 합니다. 이 멋진 고장에서 배움과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초계중 학생들이 ‘자기주도 학습법’을 통해 공부에 대한 흥미와 동기를 스스로 부여한다면, 노 교장과 교사들은 ‘자기주도 교육법’을 통해 가르침에 대한 열정과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고 있었다. 그 출발점은 초계의 사람들을 오롯이 안고 있는 자연과 그 자연을 담고 있는 고장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초계중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것

이러한 열정은 한 동안 교육시절을 정비하는데 집중됐다. 부족했던 특별실을 확보하기 위해 3층 규모의 신관을 신축했고, 개인 독서대가 있는 독서실도 마련했다. 넓은 미술실과 방음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음악실 그리고 특기적성 다목적 교육을 위한 밴드부 전용실도 초계중의 자랑이다. 또한 영어전용실 앞 공간을 갤러리로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학생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를 찾아내고 바로잡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석면이 함유된 천정텍스를 교체하고, 소음과 분진이 심한 건물 내 바닥마루를 친환경적인 밝은 참나무마루로 교체한 것도 그 과정이었지요.”
노 교장과 교사들의 선물은 계속됐다. 학생들과 차량이 함께 진입하던 위험한 콘크리트 통학로를 꽃과 함께 오솔길을 걷듯 마음이 건강하고 안전한 통학로로 바꿔냈고, 평소에는 전혀 활용하지 않았던 콘크리트 3단 스탠드를 꽃과 어우러진 자연석 조경 화단으로 조성했다.
특히 학교에서는 해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식초 등을 직접 담가 식재료로 이용하는 유기농 급식을 실천하며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초계중은 아름다운 자연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안에 또 다른 작은 자연을 만들어냄은 물론, 온정 가득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돌보는 교직원들이 자리해있다. 이에 평화롭고 싱그러운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사랑받으며 마음껏 뛰놀고, 산책하며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초계중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누구보다도 많은 추억을 가지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자연 속에서 한가로이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캠퍼스형 산책로를 완벽하게 구축해 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교육계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와 교사는 가시적인 성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로 인해 마음으로는 알고 있으나 시공간적 제한으로 인해 몸으로 실천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농산어촌 교사의 근무여건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대단한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요. 이런 점에서 저희 초계중 선생님들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합천, 초계, 학교사택 등지에서 거의 대부분의 교사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셈이죠. 이는 단순한 출퇴근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과의 거리가 그만큼 가깝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 교장의 열정, 교사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2010년에는 학력향상 우수학교에 선정됐고,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경남도선정교육감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초계중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산타클로스의 빨간 보따리처럼 커다랗고 풍성해 보였다. 노 교장의 경영철학이기도 한 ‘부모품 교육실현’을 위해 ‘1교사 10자녀 동아리’를 시작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교사가 10명의 학생을 책임 지도하는 동아리를 구성해 공부 방법뿐만 아니라 형제애 예절 등 인성교육을 위한 밀착지도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권의 붕괴와 공교육의 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는 요즘이지만, 초계중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오히려 학교와 가정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이 동화되면서, 언제나 아이들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정임 교장의 이야기처럼 아이들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단순한 추억이 아닌 21세기를 이끌어갈 글로벌 인재의 저력이었고, 인성이었으며, 또한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