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 오카리나, 기타 그리고 웃음이 개울처럼 흐르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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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오카리나, 기타 그리고 웃음이 개울처럼 흐르는 학교
  • 박진혜 기자
  • 승인 2012.01.11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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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즐겁고, 행복하며, 다정한 곳이 바로 학교이어야”

시속 300km의 KTX열차가 서울과 부산 사이를 2시간 30분대에 주파하고 있다. 100MB 광랜으로 연결된 인터넷이 온 세계를 하나의 그물망으로 엮어내고 있다. 이러한 기술문명의 발달은 시공간의 한계를 충분히 좁혀 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던 도시와 농산어촌의 간극 역시 마찬가지다. 교통이나 통신수단의 눈부신 발달에도 불구하고, 농어촌으로의 회귀는 ‘소수의 의식 있는 귀촌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문명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의식적 간극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섬마을 중학교의 작지만 위대한 기적

우리가 순수한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과 이로움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선뜻 그곳을 선택하지 못했던 이유는 다양하다. 교통문제와 통신문제가 거의 해결된 뒤에도 끝까지 남는 문제는 자녀교육문제였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그 문제만큼은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여기, 울릉서중학교(www.ulsm.ms.kr/이문직 교장/이하 울릉서중)를 비롯한 농산어촌 학교에 다시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IT강국 대한민국이 끝까지 풀지 못했던 그 난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역설적이게도 그 중심에는 IT기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10년 9월부터 교육과학기술부의 ‘농산어촌 전원학교’로 지정되면서 자연친화적인 교육시설을 구축하는 한편 최첨단 이러닝 교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첨단의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특색 있는 교육과정과 우수인력 배치를 할 수 있었고, 지역사회와의 실질적인 연계와 학교운영의 자율성 확보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교육환경 개선은 농산어촌 교육문제에 대한 성찰과 숙고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농산어촌 교육의 획기적 발전기반 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 17년, 장학사 7년, 교감 6년 등 다양하고 오랜 교직생활을 토대로 울릉서중을 이끌고 있는 이문직 교장의 목소리는 잔잔한 파도소리를 닮은 듯 했다. 이 교장은  시인이자, 수필가이기도 했다. 천혜의 자연풍광 속에 자리 잡은 울릉서중 그리고 이 아담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영락없는 ‘섬마을 선생님’이었다.
‘교육이 희망’이라는 천생 교육자인 이 교장은 좋은 학교에는 좋은 교장이 있어야 하며, 교장은 곧 학부모들이라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학생, 교사, 학부모가 서로 다정하게 소통하며 함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제대로 된 멍석을 깔아 놓은 셈이다. 그의 꿈이, 교육철학이 참 낭만적이고 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0여 년간의 교직생활이 빚어낸 이 교장의 ‘낭만적 교육철학’은, 육지로부터 200여km나 떨어져 있는 울릉서중에 학생들이 오히려 늘어나는 기적을 일으켰다. 하루에 한 번 여객선이 운행하고, 그나마도 날씨가 좋지 못하면 결항되는 경우가 허다한 고립된 섬에 잦아지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전교생이 28명인 소규모 학교입니다. 학부모님들은 주로 나물재배나 어획활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시지요. 그렇게 부유한 가정들은 아닙니다만, 교육에 대한 열의만큼은 서울 못지않게 높고 뜨겁습니다.”
이 교장과 교사들은 이러한 학부모들의 사랑과 열의를 묶어내는 소통로 역할을 했다. 그 결과 학생, 학부모, 교사가 혼연일체를 이뤄 글로벌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오롯이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전자칠판과 T/P를 활용한 최첨단 이러닝 교실과 야외교실 및 천연잔디구장으로 구성된 자연친화적 교실로 특색 있는 교과과정을 수립, 운영해낸 울릉서중. 그것은 최근 들어 실질적인 성과로 인정받아 2011년 국가성취도 평가에서 전국 단위 19위, 경북도 단위 6위라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즐거운 소문은 꽃향기처럼 퍼져나가는 법이지요. 2010년 초에 18명에 불과했던 학생수가 2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어느새 전입 선호학교가 되었는지 요즘 들어 전학을 문의해 오는 전화가 부쩍 늘었습니다.”
또한 교직원과 학생 모두가 이웃 노인회를 방문하여 경로잔치 및 청소, 말벗되어드리기 등을 행하며 사랑의 봉사정신을 지속적으로 실천, 지역민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고 있다.

사랑과 낭만과 음악이 있는 학교

울릉서중의 이 교장과 교사진들은 매우 기본적이고 원천적인 질문으로 교육준비에 임한다고 했다. ‘즐거운 학교’,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학교’, 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도심에서 본다면 이곳은 도서벽지의 시골학교일 수 있습니다. 그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도, 교사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교사들은 우리 학생들이 지역적·문화적·교육적 소외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마음껏 이룰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최첨단 교육장비를 동원한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신장으로, 프로그램과 개별지도 및 소집단 지도 등을 통한 맞춤형 학습지원으로 이어졌다. 울릉서중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도시와 달리 사교육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득이 됐다. ‘공부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학생들은 자신감이 부쩍 향상되었으며,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 즉 학습동기를 스스로 부여함으로써 폭발적인 교육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도시의 학교를 따라잡아야 한다며 학생들을 공부로만 내몰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자신이 머물고 있는 이 땅과 하늘과 학교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했습니다.”
그것은 울릉서중의 자랑이기도 한 ‘1학생 1악기 다루기’로 집약된다. 1학년 학생은 플롯, 2학년 학생은 오카리나, 3학년 학생은 기타를 배우고 있다. 이러한 음악과 함께하는 자연친화적 학습은, 학생들 얼굴에 순박하고 해맑은 미소를 선사하고 있는 듯 보였다.

도시의 학생들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과 독서실로 내몰리는 동안 울릉서중 학생들은 자연과 함께 교직원들의 진정성 있는 따뜻한 품 안에서 배움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직 진학과 취업이 지상목표가 되어 버린 기존 교육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교육방식이기도 하다.
“야간에 이루어지는 돌봄 학습과, 방과후 교육활동 등 학생들 대부분의 시간은 학교에서 보냅니다. 교사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났지요. 학부모들이 가파른 산과 뒤척이는 바다를 누비며 생계를 이어야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들 학생들을 맞이해주는 사람이 드물어요. 저희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과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학생들 역시 자신을 이해해주는 든든한 심리적 지지자를 얻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 성향으로 엇나갈 가능성도 낮아졌습니다.”

기자가 겪은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과 입시의 중압감이 떠올랐다. 학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갑갑함은 그때부터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울릉서중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해묵은 오해가 모두 풀리고 말았다. 학교란, 사랑과 낭만과 음악이 개울처럼 흐르는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곳이다. 이는 울릉서중이 빚어내는 이상적인 공교육의 참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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