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당’을 닮은 깊고 아름다운 학교
이렇듯 공교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엄동설한처럼 불고 있는 가운데, 소리 없는 교육혁명을 추진하고 있는 학교가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그 시절의 서당을 빼닮은 당진초등학교(www.dangjin.es.kr/정상진 교장)에서는 나날이 흐뭇한 웃음소리와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1913년에 개교했으니, 벌써 백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인 덕분에 많은 인재들이 이곳 당진초등학교를 거쳤습니다. 학교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에서도 초등교육의 요람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지요.”
정상진 교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묘한 울림이 되어 교장실을 채우고 있었다. 서당을 닮은 학교라고 해서 시설이 낙후하거나, 교육방식이 고리타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당진초등학교가 서당에 비유되는 것은 정 교장과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 그 옛날 서당에서나 볼 수 있었던 뜻 깊은 가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인생의 멘토로 여긴다는 정 교장은 다산 선생이 펼쳤던 실학에 바탕을 둔 학문적 깊이와 실사구시의 정신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다산 선생이 살았던 시절과 오늘날의 사회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함의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살기 좋고, 일거리가 많은 명품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발전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분명 교육으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당진초등학교와 정 교장은 세 가지를 갖춘 인재상을 제시했다.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있는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 인격을 갖춘 사람,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의 소중함을 알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심성을 갖춘 사람, 그리고 실력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이 ‘실력’이라는 점을 돌이켜 보면 정 교장이 제시하는 인재상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먼저 인격과 소양을 갖춘 사람을 만들고 그 위에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의 세상은 결코 빈곤하지 않다. 오히려 생산의 과잉으로 인한 문제가 더 많을 정도다. 다만, 그 과잉에 대한 제대로 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한쪽에서 풍요로움에 탄성을 지르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빈곤과 기아로 신음하고 있는 모양새가 아니던가.
그가 이야기했던 ‘더불어 사는 삶’,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은 이렇듯 삐뚤어진 21세기를 새롭게 재편할 수 있는 글로벌 리더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와 덕목이 주입식 교육을 통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진초등학교를 더욱 주목하게 된다. 글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는 첫 관문인 초등학교에서부터 소리 없이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마술사들

무조건 외워야 하고, 이해를 강요받았던 교과서는 아이들 스스로가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자기주도 학습법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야말로 스스로 익히고 때때로 돌아보는 가운데 학교와 정 교장이 원하는 인재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방과 후에 학원과 독서실로 내몰리는 도시의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지고, 정신의 논과 밭이 기름져야 싱싱하고 풍요로운 꿈과 희망이 자랄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정 교장은 유독 아이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기초체력 증진을 위해 전 학생에게 배드민턴을 장려하고 있으며, 학교 곳곳에는 ‘건전한 정신’이라는 슬로건을 걸어 놓았다. 특히 중점 육성종목인 당진초등학교 배드민턴부는 제40회 전국소년체전에서 준우승을 거두는 등 놀랄만한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어린이합창단을 통해 학생들의 감성발달과 예술적 감각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합창단 역시 각종 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
이러한 과외활동이 더욱 눈부실 수 있는 것은, 당진초등학교가 보여주고 있는 높은 학력 때문이다. 서울 도심의 초등학생들처럼 각종 선행학습과 독서실로 내몰리지 않아도 충분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당진초등학교는 정 교장을 비롯해 70여 명의 교사와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남다른 애향심과 애교심을 바탕으로 학생과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땀 흘리고 희생해 온 결과가 오늘날 당진초등학교가 보여주고 있는 성과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남이 건네주는 꿈은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부대껴가며 스스로 발견해내는 것이 진짜 자신의 꿈이라 할 수 있지요. 우리 교육에서 창의성과 자발성이 보강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가정 내 생활이든, 학교 내 교육이든 무엇이든 잘 다듬어진 채로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것은 도리어 아이들을 망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당진초등학교의 정상진 교장과 교사들은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마술사처럼 보였다. 분명히 빈손인 듯 싶었는데, 그들의 손에는 어느덧 온기 가득한 즐거움이 쥐어져 있었던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