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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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이하며
  • 글/이종철 기자
  • 승인 2005.10.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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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무분별한 한글파괴
인터넷 생활화로 통신문자 발달 한글훼손 심각

한글 파괴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는 또래 청소년이 아니면 알아보기 힘든 통신체가 난무하고 있다. 신조어도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여서 흐름을 잠깐 놓치기라도 하면 따라집기 힘들 정도로 급속도의 유행어가 인터넷을 통해 번지고 있다. 그런데 심각한 점은 인터넷상의 용어가 넷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생활속에 깊숙이 침투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거나 ‘반가워’를 ‘방가’, ‘여자친구’를 ‘여친’ 등으로 줄여 사용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일반인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자를 사용하기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특수문자와 일본어, 한자, 한글 등을 뒤섞어 의사를 표현하는 일부 누리꾼(네티즌)의 언어를 ‘외계어’라고 부른다.
외계어는 ‘㉯㉯납별뉨ⓔ는ⓔ렇퀘글쓰능高☆로㉯뽀게생각안훼(나 별님이는 이렇게 글 쓰는 것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처럼 자세히 보면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읍ㅎ℉를_ㅁ|てつ효_∩∇∩★(오빠를 믿어요)’처럼 암호 같은 것도 있다. 외계어는 자신들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일부 10대 누리꾼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커뮤니티를 만들어 외계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외계어에 맞춤법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를 사용하는 누리꾼끼리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따라 외계어 번역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한글을 입력하면 외계어로 변형해 주는 것이다. 외계어의 경우 네티즌 사이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극히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 편.
문제는 청소년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일상생활까지 이어져 우리말 파괴 현상이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쓰기 시간에 ‘축하’를 ‘추카’로, ‘게임’을 ‘겜’으로 쓰는 학생이 많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지적이다.


귀차니즘, 디찍병, 몸짱… 신조어 만연
국립국어연구원은 2003년 한해동안 방송과 언론에서 사용된 신조어 656개를 소개하는 '2003년 신어' 보고서를 내놨다.
이곳에서는 인터넷에서 주로 사용되던 상당수의 언어들이 신조어로 정리됐다는 점이 주목할만 하다. 귀차니즘, 디찍병, 폐인, 딸녀, 얼짱, 몸짱 등 통신언어 중 신문지상에 많이 쓰였다. 통신언어가 컴퓨터에서 벗어나 다방면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통신언어로 제작된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는 30만부 이상 팔리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소설을 쓴 인터넷소설가 '귀여니'(본명 이윤세)는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인터넷소설들이 영화로 속속 등장할 정도로 통신언어는 이 사회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통신언어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기능을 중심으로 한 1세대, 신조어를 등장시 킨 2세대 그리고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퍼진 '외계어' 등이다.
90년대 중반 PC통신에서 등장한 통신언어는 글자들을 줄여 전화비용을 낮추기 위해 등장한 표현으로 1세대 통신언어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게 ‘안냐세요’(안녕하세요), ‘ㅃ2’(안녕히 계세요), ‘방가’(반갑습니다) 등 줄임말이 많은 게 특징.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등장한 언어가 바로 2세대 통신언어다. 이 언어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다양한 신조어들을 탄생시켰으며 최근 통신언어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네티즌’(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답글’(타인의 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 등 인터넷용어와 함께 ‘다모폐인’(TV 드라마 ‘다모’의 열렬팬), ‘아햏햏’(아무런 뜻도 없는 사람의 감정) 등 새로운 언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숫자, 특수문자, 외국어들을 조합해서 아무런 뜻도 없이 글자 모양만 딴 언어인 ‘외계어’가 있다. 이 언어는 2002년부터 초등학생과 중학생들 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외계어’에 대한 불만은 높아 많이 활용되진 않는다.

통신언어 모르면 왕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통신언어나 인터넷에 활용되는 표현들을 알아두는 게 유익하다. 이른 바 통신언어를 모르면 젊은 세대들로부터 '‘따’를 당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고 인기를 얻은 단어는 ‘딸녀’. 딸녀는 딸기밭에서 양손에 딸기를 든 채 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의 애칭이다. 최근 합성사진이 유행 하면서 딸녀는 지난해 하반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인터넷의 왕따라는 표현인 '따티즌'(TTatizen)도 한동안 유행했다. 이 단어는 왕따를 당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알파벳으로 표현됐다. 영어공부 열풍인 지금 ‘네타티즘’도 알아둘만 하다. 이 단어는 영어를 배울 때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로 ‘네탓’ 즉 상대방의 핑계로 둘러대는 것을 지칭한다.
10∼20대 중심의 통신 신조어는 연애를 소재로 한 표현들이 눈에 띈다. ‘솔로부대’는 연인이 없는 청춘남녀를 지칭하는 말로 빼빼로데이(11월 11일, 연인끼리 빼빼로를 주고 받는 날)를 맞아 커플들을 훼방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를 일컫는다. 이와 반대말로 ‘커플부대’란 단어도 있다. 연인,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솔로부대를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통신언어의 재미는 바로 줄임말. 긴 문장을 하나의 언어로 간편하게 표현하는 말들도 있다.
‘KIN’은 ‘즐겁게 사세요’란 말을 줄인 ‘즐’이란 말을 옆으로 눕혀놓은 말로 온라인게임에서 등장했다. ‘ㅇㅋ’도 알아둬야 할 표현. ‘ㅇㅋ’는 ‘오케이’(Okay)의 자음을 따온 준말로 상대방의 말에 긍정을 표시할 때 사용한다. ‘악플러’는 상대방의 의견에 비방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악’은 나쁘다는 ‘악(惡)’의 한자어다. ‘플’은 영어로 ‘답변하다(reply)’의 리플라이의 두번째 글자를, ‘러’는 영어에서 사람격으로 표현되는 ‘er’로 이 세가지 단어가 결합된 단어다.


사회 전반에 ‘통신체’ 만연
인터넷의 급격한 보급 확산과 더불어 어린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말 오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메신저와 블로그 등을 통해 비속어·은어·축약어를 즐기는 젊은 세대의 용어는 이제 그들만의 언어가 아니다. 사회에서도 인터넷 언어를 인정하는 듯 방송이나 광고 그리고 직장인의 메일에도 쉽게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소개서에 사용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신세대 언어와 기성세대의 언어 차이가 날로 벌어지고 세대 간 단절감이 심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일시적인 것으로 가볍게 보는 시각도 있다. 어차피 주류가 아닌 언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교육과정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해져 난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교육계에서는 활동중심 교육으로 바뀌면서 칠판 글씨가 사라져 가고 숙제는 인터넷을 검색, 인쇄해 제출함에 따라 쓰는 시간이 줄어 연필을 잡는 힘이 예전에 비해 훨씬 약해졌다는 우려감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잘못된 한글 조기교육으로 글씨 쓰는 순서를 잘못 알고 있어 바로잡기가 매우 어려우며 학생이 작성한 발표문이나 게시판에 내용을 교사가 일일이 교정해 주기에는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교육과정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국어과의 내용은 듣기·말하기·읽기·쓰기·국어 지식·문학 등 6개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가운데 말하기와 쓰기 등 표현 능력에 대한 지도가 부족하다.
특히 우리말의 근본 체계를 이해해야 하는 국어 지식 영역의 학교 문법 지도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학교 국어 교과의 문법과정은 끼워넣기식이라 단계나 체계가 허술하다. 영어에서 주어와 동사라는 말을 가르칠 때 국어 시간에 들어보지 못한 경우가 많아 학생들이 이 문법용어를 생소하게 느끼며 배우고 있다.
서울의 모 중학교 교장은 “고등학교도 문법이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어 배워 보지도 못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교육을 받고 외국어 열풍에 휩싸여 있어 인터넷 시대에 사는 신세대들의 국어 능력이 우수할 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인터넷 세대의 한글 바로쓰기 교육을 위해서는 맞춤법과 문법 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형식적인 받아쓰기 수준의 교육이 아니라 내실 있고 실질적인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외래어 남용 심각
1997년 한글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세계의 언어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고 정보화 사회에서 유용한 문자로서 한글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정작 그 주인인 우리는 한글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물밀듯 밀려오는 새로운 문물과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새로 운 명칭이나 용어를 다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게 사실. 또, 한정적인 토박이말로 새로운 이름을 짓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적 불명의 외국어, 통신 언어 남용이 우리 글, 우리말을 알게 모르게 훼손하고 오염시키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공교롭게도 외국어 남용이 가장 심한 곳은 한글 사용을 올바르게 선도하고 이를 스스로 실천해야 할 '언론기관'들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라이브러리(KBS1), 해피 투게더(KBS2), 논스톱(MBC), 드라마 스페셜(SBS)… 등 외래어 제목 일색이다. 이는 외래어나 외국어는 세련된 말처럼 보이고 우리말을 쓰면 왠지 촌스럽고 고루한 듯한 인상을 준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터넷과 무선 통신 등의 사용이 일상화하면서 각종 매체마다 정체 불명의 은어와 비속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국적 불명의 표현까지 난무해 한글 훼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통신언어는 한글 훼손을 넘어 한글 파괴 현상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기성세대와 세대간 단절감마저 갖게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어 능력이 100점 만점에 평균 58.26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외래어나 국적 불명의 외국어를 남용하는 것 자체가 바로 사대주의 근성이자 주체성 상실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난무하고 있는 예의를 저버린 욕설 등 저속한 표현 사용은 또 다른 언어 폭력인 만큼 시급히 추방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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