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법적 제도 개선 시급해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법에는 '장애인'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 이렇듯 심신장애를 앓고 있는 장애인은 전 세계인구의 약 12%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장애인의 인구는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보다 철저한 대책과 복지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애인들을 위한 법률적, 사회적 제도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개선방향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아보기로 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부터 없애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애인에 대한 문제가 거론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즉 그들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과 태도의 문제다. 장애인 편견에 대한 문제점은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왔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장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고 장애인들은 말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부터 없애야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그에 따라 취업난이 심각해 지면서 장애인들의 취업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힘들 다는 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복지수준은 후진국 수준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는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이 하나라도 들어올라치면 그 지역구 주민들이 한데 뭉쳐 팜플렛까지 걸고 반대시위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다.
2000년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장애인의 실질 취업률은 71.50%로 보고 되어있다. 하지만 71.58%라는 수치의 이면을 보면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단순 노무직, 농어업 등 매우 취약한 고용환경에 종사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또한 장애인의 상당수가 무급 또는 매우 소액의 보수로 고용되어 있는 경우가 속속들이 밝혀져 장애인연합회나 인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 장애인이 남다른 훌륭한 재능과 자질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재능과 자질을 개발시키고, 교육시켜주며 긍정적으로 수용해주는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소중한 인력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를 모두 가지고 있던 중증 장애인이었던 헬렌켈러가 위대한 사회사업가가 되기까지는 그를 믿어주고, 이끌어주고, 재능을 향상시주는 주변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우수한 잠재적 재능이 개발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한 국가와 전 인류에 있어서도 큰 손실임이 틀림없다. 이것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장애인에 대하여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국가일수록 각 분야에서 성공한 장애인의 수가 많다는 통계도 있다. 헬렌켈러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준 미국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 미덕은 참으로 본받을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애인 편견, 범죄와 자살로 이어져
지난 4월, 장애를 가진 60대 노인이 장애인 형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노인은 부양의 괴로움을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아 극단적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해 충격을 더했다. 또한 "청각장애인인 형과 형수, 정신지체장애인인 조카 등 세식구를 돌보는 부담은 몹시 버거웠다"다며 "대학생 아들까지 뒷바라지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본인의 생계의 어려움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살인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고 처벌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왜 10년동안 살을 부비며 부양해온 가족들을 살해하는 극단 행동까지 저지르게 되었는지 정부와 사회는 신중하게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책임이자 의무다. 만약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충분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사는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 왔다면 적어도 이러한 안타까운 참극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위험천만한 장애인용 지하철 승강기와 혼자서는 아예 탈 수 조차 없는 버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게 만들어놓은 건물들의 높은 계단들은 장애인이 사회로 나아가는 길조차 막아서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장애인들의 한계에 다다른 생활고와 사회적 냉대는 이들을 자살로 몰고 가고 있다. 실제로 생계형 노점을 하다가 단속반에 의해 부과된 벌금 70만원을 감당할 수 없어 끝내 목숨을 끊어야 했던 청각장애인, 자신의 병원비 때문에 한강에 뛰어든 뇌병변 장애인, 구청현관에 목을 매 자살한 빈민장애인, 지하철에 뛰어든 수많은 정신지체장애인까지 장애인, 30년간 간병해온 반신불수 남편의 자살을도운 50대 부인, 부양대상자라는 이유로 가족에 의해 살해 당한 일가족 장애인 등 장애인들의 죽음의 행렬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장애인들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차별과 억압 속에서 최소의 생존권조차 보장 받지 못하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져버리고 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대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장애인의 취업과 승진의 차별은 이미 일반화 된 이야기이며 일반 회사는 두말 할 나위도 없고, 관공서에서 조차 차별은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는 장애수당으로 매달 5만원을 지급하고 있지만 사실상 장애로 인해 지출되는 평균 비용만 해도 15만 8천원으로 생계지원금으로서는 너무 터무니없는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도 통계상 70만 명에 달한다는 1~3급 중증장애인은 아예 취업의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어 장애인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장애인자살 대부분 '사회적 타살'
장애인자살 대부분 '사회적 타살'
장애인 자살은 대부분 '사회적 타살'이다. 장애의 부담은 장애인 당사자나 그들 가족의 몫만이 아닌 이유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할 책임과의무가 있다. 하지만 사회는 구체적인 대책과 방안 없이 장애인 본인에게만 그 책임을 떠맡기고 있다.
장애인 취업에 있어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노동부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고용이 절실한 중증장애인 고용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공무원 채용도 경증장애인 위주로 이뤄지고 있으며, 중증장애인에 대한 문제는 복지부가 알아서 할일 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죽어가고 있고, 또 죽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이 대부분 중증장애인들이다. 그리고 장애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실업의 고통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이다. 즉 중증의 장애를 이유로 사회에서 철저하게 버림받고 소외 되기 때문에 지금 장애인들이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계 일부에서는 중증장애인 문제는 연금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장애인들은 사실상 이런 방안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증장애인 문제를 연금만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결국 장애인을 기생계층으로 낙인 찍는 것이며 장애인 입장에서는 인간으로서 존중 받지 못하는 모욕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연금도 하나의 필요한 수단이지만, 장애인은 연금에 앞서 일자리를 원하고 비장애인과 조금 다른 모습의 인간으로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장애인도 국민임이 분명한 이상 장애에 적합한 직업을 가질 권리가 분명히 있으며 당연히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버리고 장애인의 기본 중의 기본인 이러한 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의 나라. 다양함과 광대함이 지나쳐 획일되고 단순화된 기준이 적용될 수 없는 나라. 그래서 장애도 하나의 차이와 다름에 불과한 나라가 있다. 이상적인 장애인 복지의 대명사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학교 밖의 학교, 즉 지역사회 자체가 장애학생의 산 교육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회는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두려움의 세계가 아니라 교육받을 권리를 이루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며, 앞으로 살아나갈 삶의 장소로 존재한다.
미국이 장애인을 사회로 전환, 촉진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은 각 기관간의 유기적 협조체제다. 각각 고유한 분야의 기관들의 독자적 전문성을 확보하고, 또 다른 기관들과 그물처럼 연계하여 사회에 나온 장애인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교육시킨다는 점이다. 또한 장애인 고용, 회사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직접적이 참여기회를 주어 각 전문기업들을 장애인의 교육의 장으로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국민 모두가 장애인의 장애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각종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장애인의 교육권과 생활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장애인의 고통과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며, 하나의 사건 정도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도 미국을 비롯한 각 선직국의 장애인 복지 문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여 오랜 시간 굳혀져 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참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정부는 정부가 지금까지의 의무고용률의 인상과 강제, 선심성 복지 혜택 등 민간부분에 부담을 주는 일이 아니라 장애인의 근본적인 재활과 사회적 통합을 위한 미래지향적이고 내실 있는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