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에서부터 인사동, 관훈동, 안국동까지. 우리는 이곳을 ‘인사동’이라 부른다. 인사동 말고도 다른 동네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예로부터 인사동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살았다. 율곡 이이가 여기에서 살았고, 효종 때의 이완 장군의 집터도 인사동에 있다. 중종시절 왕도정치를 주장했던 유학자 조광조의 집은 관훈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인사동에는 유명 가구점과 병원, 한옥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자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미술품과 고서적을 파는 상인과 화랑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간을 거치면서 ‘전통문화=인사동’이라는 공식이 형성됐다. 때문에 외국인들의 필수 여행 코스로도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다.
작지만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우리의 문화가 깃든 의미 깊은 곳. 이 인사동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조금은 노쇠하고 오래된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젊은 층과 함께 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세계적인 커피전문 체인점인 스타벅스가 문을 열었고, 쌈지길이 생겨 주말의 인사동은 북새통을 이룬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고미술을 취급하던 화랑들도 조금씩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예술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전시공간

예술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전시공간’을 추구하는 공아트스페이스는 기획, 초대, 대관을 담당한다. 또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고미술 중심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주식회사 마이아트옥션이 자리한 곳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미술전시, 고미술의 문턱을 한껏 낮춘 셈이다.
공아트스페이스를 이끌고 있는 공상구 대표는 “공아트스페이스는 상업 화랑”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그렇다고 공아트스페이스가 상업에만 치중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형전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인사동에서 공아트스페이스는 고미술은 물론이요, 근현대미술,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현대미술 등 수준 높은 준대형 기획전을 연다. 그리고 역량 있는 작가의 초대전도 연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도유망한 신진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 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해 우리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미래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작업도 빼놓지 않고 한다.
“작가들의 밑거름이 되는 공간이 되고 싶다. 5년 내에 미술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침체되어 있는 고미술 시장의 활성화를 이끌겠다.”
한편, 공아트스페이스는 다양한 장르의 아트페어, 고미술과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아카데미 공간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획전, 초대전, 대관전 모두 가능

이곳의 모든 전시장은 다양한 공간구성이 가능한 동시에 대규모 전시도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기획전, 초대전, 대관전이 모두 가능하다.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처음 기획했던 전시는 미술평론가인 하계훈 단국대 교수가 기획한 ‘인사동을 스치는 시선’, 월간미술 이건수 편집장이 기획한 ‘한국미술의 힘’, ‘행복한 그릇’이었다. 이 전시들은 공아트스페이스 개관과 동시에 열려 공아트스페이스의 시작을 알렸으며 또한 공아트스페이스가 나아갈 방향도 보여주었다.
앞서 언급했듯 공아트스페이스의 모태는 공화랑이다. 지금 회장직을 맡고 있는 공창호 회장은 고미술업에 종사하며 인사동을 지켜온 인사동 터줏대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아들인 공상구 대표와 함께 인사동

시대가 변하면서 인사동은 또 자연스럽게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공화랑이 공아트스페이스로 변화했듯 말이다. 그렇다고 예술의 가치가 변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을 사수하려는 이들과 그것을 응원하는 이들이 있는 한 인사동의 시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