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조상땅 찾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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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조상땅 찾기 논란
  • 글/김정숙 기자
  • 승인 2005.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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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후손들의 ‘조상땅 찾기’ 줄소송 실태
재산찾기 줄소송, 관련 특별법 정기국회 통과될 전망

해방 60돌을 기념하는 8월15일 신문을 받아든 사람들은 매국노 후손들의 파렴치함에 또 한번 치를 떨어야 했다. 을사늑약 때 왕실 종친으로 궁내 동정을 탐지해 일제 밀정 역할을 한 이재극(경술국치 이후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와 은사금 2만5천엔 받음)의 손자며느리 김신덕(82)씨가 국가를 상대로 "시할아버지의 땅인 경기 파주시 문산읍 땅 1만5천㎡를 돌려달라"며 소유권보존 등기말소 청구소송을 낸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땅 찾기 소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96년에 이어 또다시 충남지역의 대표적인 친일파인 김갑순의 후손이 지자체의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수십억원대의 땅을 찾은 것으로 밝혀졌다.
충남도는 ‘공주 갑부’ 김갑순(1872~1960)의 손녀가 최근 도의 ‘조상 땅 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충남 공주와 연기, 부여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름으로 등록돼 있는 땅 99필지 2만701㎡(6273평)를 찾았다고 지난 9월 14일 밝혔다. 김씨가 찾은 공주, 연기 땅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 주변으로 최근 평당 30만원대까지 올라 수십억원대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도는 1996년에도 김갑순의 후손(손자)에게 충남 공주시 금학동 등 공주 일대에서 당시 시가 100억원에 달하는 땅 156필지 11만3883㎡를 찾아 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전 시민·사회단체는 “김갑순은 1902년 부여군수를 시작으로 10여년 동안 충남도내 6개 지역의 군수를 지낸 뒤 1921년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3차례나 거치며 대전지역 땅의 40% 등 공주·대전지역에 3336만㎡(1011만평)의 땅을 소유했던 충남의 대표적인 친일”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국가 차원의 친일청산 등 역사 바로잡기가 이뤄졌다면 친일파 후손들의 땅 찾기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매국노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정부와 국회는 ‘재산환수법’을 제정해 친일 행위를 통해 재산을 모은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날 경우 후손들이 조상 땅을 찾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상 땅 찾아주기는 충남도가 1996년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직계 존·비속 이름의 땅을 모르는 이들에게 지적정보센터를 통해 조상이나 본인의 재산을 확인해 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성과가 좋자 행정자치부가 2001년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스님들도 ‘친일파’와 땅전쟁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 내원암역시 친일파 후손들이 한일합병 당시 물려받은 내원암 소유 임야를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취하한 것과 관련해 소(訴) 취하 동의를 거부했다.
불교조계종 봉선사(주지 철안 스님)는 친일파 이해창 후손들이 소를 제기했다 취하한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 청구소송’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의 재판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지난 1일까지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에 내야하는 소 취하 동의서 제출을 거부했다.
봉선사 총무과장 혜문 스님은 “이 문제는 내원암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정체성이 걸린 사안”이라며 “확실한 판례를 만들어 친일파 후손들의 토지반환 청구소송을 근절하기 위해 이 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봉선사는 4만8천여평에 달하는 내원암 소유의 임야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소송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봉선사는 조계종 중앙신도회, 민족문제연구소 등과 함께 9월 13일 오후 6시 30분 조계사 앞마당 야외무대에서 '친일 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을 위한 조계사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9월 11일 법장 총무원장의 입적으로 조계사에서 장례가 예정돼, 13일 열기로 한 촛불집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한편 이해창의 후손 21명은 지난해 말 경기 남양주시 내원암 소유 절터는 1917년 조선총독부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므로 돌려받아야 한다며 이 암자와 국가 등을 상대로 토지소유권 확인소송을 냈다가 취하한 바 있다. 이해창의 후손 21명이 국가와 내원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해 12월말이다. 후손들은 소장에서 “선조(이해창)가 일정 때인 1917년 10월1일 (산103-1번지를) 사정받아 소유하고 있다가 1945년 사망함으로써 호주상속과 더불어 이아무개씨에게 상속하였고, 그가 62년 숨져 후손들이 공동상속 받았다”며 “6·25 전쟁으로 등기부 원부가 전부 소실돼 등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국가가 소유했으나 관련 증거를 확인했으니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손들은 산103-1번지가 이해창 소유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임야조사부에 토지 소유자 이름에 이해창이 올라와 있다는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내원암쪽 변호인은 답변서에서 “임야조사부의 기재는 이해창이 소유자로서 임야를 받은 것이 아니고, 조선총독부로부터 무상으로 임대받은 것”이라며 “이해창이 소유자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내원암에 소유권보존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변호인단은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후손들이 소유할 권한을 갖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맞섰다. 내원암은 한발 더 나아가 "민법의 소유권 조항을 친일파 후손의 재산찾기 논리에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만약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 현재 30여건이나 진행중에 있는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찾기 소송은 헌재의 심판이 날 때까지 모두 중단된다.
위헌법률심판제청과 별도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이 공동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발의 특별법’도 친일후손들이 재산찾기에 나서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특별법은 식민통치에 협력,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과 작위를 받았거나 을사조약 체결을 주장한 고위 공직자 등이 당시 취득했거나 이들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 하는 내용이 뼈대다.

승률 50%, 30여건 넘어
지난 1992년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인 이윤형씨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땅 712평(당시 시가 30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승소한 이래, 지금까지 30여건의 크고 작은 친일파 후손 재산 찾기 소송이 이어져왔다.
법무부는 지난 5월 13일 지금까지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확인 소송은 모두 23건인데, 이 가운데 16건의 확정 판결이 났고 친일파 후손들이 실제 승소해 땅을 찾아간 경우는 8건이라고 밝혔다. 승률로 치면 50%. 승소 확률은 꽤 높은 편이다. 백동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소송에서 국가가 이기는 경우는 친일파들이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땅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팔렸음을 증명하는 경우뿐”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1997년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의 소송에서 “반민족 행위자의 후손이라고 해서 법률에 응하지 않고 재산권을 제한 박탈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 대체로 이 판례를 따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면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이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특별법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친일과 매국으로 얼룩진 치욕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률(대표발의 최용규·노회찬 의원)은 이르면 이번 정기국회 때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 협력한 반민족 행위자가 그 당시 축재한 재산을 국가의 소유로 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1조)을 법률 제정 목적으로 못박고 있다. 또 친일 반민족 행위자는 일제에 협조해 훈작을 받거나 을사보호조약이나 정미7조약 등을 주도한 고위 공직자와 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및환수위원회’(위원회)가 정하는 사람(4조)으로, 그들의 재산은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국고에 귀속(19조)된다. 이완용과 송병준 후손의 땅을 국가가 빼앗아오는 법적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반민족 행위 재산권의 연관성 확인 어려워
과연 법률은 민족의 정통성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관련해 임대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이 1993년 「역사비평」 가을호에 낸 ‘이완용의 변신 과정과 재산 축적’이라는 논문이 관심을 끈다. 지금은 익숙한 주제가 됐지만, 당시는 김성수·윤치영 등 친일 행위가 뚜렷한 사람들의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와 이윤형(이완용의 증손자)씨 등의 재산 환수 소송이 잇따르며 큰 파문을 낳았다. 임 연구원은 논문에서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힘의 압력이 있어서인지 전자(김성수·윤치영 서훈)의 문제는 원점으로 회귀되어 하나의 포말로 사라지지만, (땅 찾기 소송은) 모든 이들의 공분을 일으키며 재산 환수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적었다.
위와 같은 비판은 법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법률이 재산 환수 대상으로 꼽은 것은 일제로부터 훈작을 받은 ‘매국형 친일파’ 60~70여명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훈작을 받은 ‘조선 귀족’ 출신들은 1세대들이 죽은 뒤 대부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완용 후손의 경우 1930년대까지는 거부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이후의 기록에선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송병준 등 다른 ‘매국노’들의 경우, 자손간의 다툼으로 재산이 공중분해됐다는 사실을 당시 신문 기사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엄청난 액수의 은사금도 5년 거치 50년 상황의 공채인데다 이자도 턱없이 낮아(5푼), 실제 가치는 액면 가치의 20분의 1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3 ·1운동 이후 문화통치가 도입되면서 조선 귀족들의 효용 가치는 더욱 줄었고, 일제의 푸대접도 심해졌다. 대표 매국노 이완용의 경우 3·1운동 이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4월5일치 1면 톱으로 “동포의 자중을 당부한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발표했지만, 담화의 약발이 없었던 듯 2차 경고문은 사회면 중간으로 찌그러졌고, 3차 경고문은 아예 지상에 실리지 않았다. 전우용 전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조선 귀족들은 일제의 비호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권세가 크게 줄었고 재산도 흩어지는 과정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 자리를 일제와의 결탁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했던 매판 기업가·지주 등 ‘매판형 친일파’와 일제의 식민 통치에 이바지한 ‘부역형 친일파’가 메우게 된다. 한쪽은 식민지 시기 빠른 근대화 과정 속에서 급격히 몰락한 데 견줘, 다른 한쪽은 그 물결을 타고 사회의 지도 세력으로 성장한 셈이다. 후세까지 권력을 전하지 못한 매국노의 후손들은 60년 만에 재산을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
법률은 적용 과정에서도 수많은 난관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조기룡 법무무 법무심의관실 검사는 지난 6월 17일 국회 법제사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환수에 관한 특별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친일 행위자가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만을 무효로 보는지, 친일 행위자의 재산 취득 행위를 무조건 무효로 보는지 불명확하다”라고 지적했다.

적극적 법 해석으로 재산 환수 막아야
이완용의 경우, 1907년 이후 3~4년 동안 재산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 재산의 대부분이 나라를 판 대가로 형성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1997년 증손자 이윤형(71)씨가 소송을 통해 찾아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545일대 3필지(712평)가 어떻게 이완용의 손에 들어갔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법안 도입에 적극 찬성하고 있는 이헌환 서원대 교수(헌법학)도 “반민족 행위와 재산권 사이의 연관성을 엄격하게 확인하지 않고, 친일파의 후손이란 이유만으로 재산권 침해 논란을 잠재워가며 재산을 환수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땅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땅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매각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은 이 경우 그의 다른 재산을 환수해야 할지, 또 그 돈을 종자돈 삼아 재산을 불린 경우에는 환수 범위는 어디까지 정할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정치는 때때로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백동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대상이 60여명에 불과하고,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면 실제 재산 몰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소수의 피를 역사의 제단에 뿌린다고 “반민족 행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이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가 해소될 수 있을까. 전우용 연구위원은 “좋은 취지로 법을 만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법원이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해 친일파들의 재산 환수를 막고 사기의 표적으로 전락한 국가 재산 관리 체제를 재편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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