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입문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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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입문 과정
  • 유성경 기자
  • 승인 2011.12.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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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구도 안에서 갈등 빚었으나 후계자 확정까지 비교적 순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입문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일찍부터 후계자 반열에 올라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확실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후계자 반열에 오른 형제와 숙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 입문 후에도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파를 구분짓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1961년 7월22일 조선로동당에 정식으로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시작을 알렸다. 그는 입당 초기 학생당원의 신분이었으나 당시 내각 국무총리였던 아버지 김일성 밑에서 주체사상 지도에 관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조선로동당의 평당원으로 활동해오던 김 위원장은 1964년 6월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이 되었으며, 그 후 1973년 9월까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지도원, 과장, 부부장, 부장으로 사업하였다고도 알려진다.

이 당시부터 김일성의 후계자에 대한 보도와 언급이 잦아지면서 사실상 잠재적 후계자 후보였던 숙부 김영주와 이복형제인 김평일 등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던 김 위원장은 1980년대 중반 숙부 김영주와 이복동생 김평일을 제치고 후계자 지위를 확정 지었다.

그 결과 1994년부터 집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평일은 외교관으로 계모 김성애는 정치적으로 숙청하는 등 정계에서 자신의 길에 장애물이었던 이들을 축출했다.

1990년대 이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행사 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김영주는 그의 배다른 동생 김평일과 김영일의 후견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후계 논의를 제기할 당시 후계자 낙점에 소극적이던 이들이 김 주석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계모였던 김성애의 치맛바람으로 빨치산 파들의 반발로 인해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일찍 결정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1969년 9월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부장 및 선전선동부부장을 지냈으며, 이후 로동당 중앙당 문화예술부장, 중앙당 조직 및 선전비서, 정치위원회 위원을 연이어 지냈던 김정일.

1972년 10월에는 조선로동당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당중위)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73년 9월 조선로동당 당중위 제5기 제7차전원회의에서는 당중위 비서로 선거되기도 했다. 또한 1974년 2월 당중위 제5기 제8차전원회의에서 당중위 정치위원회 위원으로도 선거되었다.

천리마 운동에 적극적인 참여로 경제성장 운동에도 동참해 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3년부터 전개된 3대혁명 소조운동을 조직해 직접 지도하였으며, 1970년대 말부터는 3대 붉은 기 쟁취 운동을 벌이며 근로자의 노동 능률을 높이는 데 노력했다.

그 결과 1980년 10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임을 확정지으며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 대회에서 김정일은 최초로 대중 앞에 자신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같은 당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거된 1982년 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7기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제8기, 제9기, 제10기, 제11기까지 대의원으로 연임되었다.
 
인민군 지휘관 취임이후 조선로동당 조직담당 비서와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거쳐 199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직을 넘겨받고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후 1992년 4월 조선인민군 원수 칭호를 받았으며, 1993년 4월 국가주석과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겸임조항을 정령에서 삭제하면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김정일의 정치권의 행보는 순탄했다.

그러나 군권과 함께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한 김정일은 이어 조선로동당의 당권도 장악하였으며, 초기 조선인민군 원수로 취임하고 이후 대원수에 취임하지 않은 대신 다른 원수들과의 구별을 위해서 다른 원수들은 ‘조선인민군 원수’라 하고 자신은 ‘공화국 원수’라 하여 구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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