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지구촌을 흔든 건 단연 민주화 열풍이었다. 한번 불붙기 시작한 자유열망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독재자는 항복했고, 국민들은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지구의 경고도 빼놓을 수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는 천재지변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이 밖에도 테러, 작별, 경제 위기로 정리할 수 있는 올 한해. 좋은 기운은 이어가고, 안 좋았던 기억은 2011년 저무는 해와 함께 묻어버리자.
‘민주화’ 빼앗긴 들에 봄이 찾아왔다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세계 곳곳의 민주화 바람이 2011년 지구촌을 휩쓸었다. 그 결과 카다피는 사망했고,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났으며,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나라를 떠났다. 수십 년간 독재에 울었던 국민들은 이제야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2월17일, 튀니지 중부 시디부지드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점점 퍼져나가 독재 정권에 움츠려있던 이들에게 촉매제 역할을 했다. 1987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벤 알리 전 대통령은 결국 시민 혁명에 떠밀려 지난 1월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으며, 23년간 지속했던 정권도 무너졌다.
아랍권에서 가장 오래된 왕정국가인 모로코에서도 결국 국민의 개혁 요구에 정부가 굴복했다. 국왕 권력의 상당 부분을 총리와 의회에 넘겨주고 국왕은 국가 안보와 군대,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만 권력을 행사하는 쪽으로 헌법을 수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모로코인들은 지난 2월부터 왕의 권력이양 등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왔다. 이에 모하메드 왕은 지난 3월, 위원회가 정당과 노조, 비정부기구(NGO)와 토론을 거쳐 헌법을 새로 만들도록 지시했다. 모하메드 왕이 TV연설에서 밝힌 수정헌법의 핵심 요소는 균형과 독립, 권력 분립이며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시민의 자유와 존엄이었다. 모하메드 왕의 연설 이후 일부 도시에서는 국기와 왕의 사진을 들고 거리에 나와 축하행사를 벌이며 개혁안을 지지했으며, 정치인들도 “현재 헌법과 비교했을 때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9월에는 33년간 장기 집권해 온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권력 이양안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사실상 권좌에서 물러났다.
예멘에서는 지난 2월부터 33년째 장기 집권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와 이에 대한 정부군의 강경 진압이 이어졌다. 특히 9월18일 이후부터는 예멘 전역에서 시위가 격화되고 예멘 정부군이 이를 무차별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며칠 후인 21일에는 변화의 광장에 ‘유례없는 수준의 폭력 사태’가 날아들었다.
현지 언론과 AP를 비롯한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예멘 정부군이 9월21일 수도인 사나(sanaa) ‘변화의 광장(Change Square)’에 운집한 수만 명의 시위대에게 박격포를 발사해 9명이 숨졌다. 당시 시위대는 지난 18일 이후 정부군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례식을 진행 중이었다. 예멘 정부군은 9월22일 알리 모흐센 알-아흐마르 소장이 지휘하는 사나의 제1기갑 사단본부에도 무차별 폭격을 감행, 민간인 2명을 포함한 9명이 숨졌다.
민주화의 정점은 이라크가 찍었다. 42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오던 카다피는 죽음이라는 최후를 맞았다.
로이터 통신은 10월20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 국가원수가 20일 새벽 최후 거점이자 고향인 시르테 인근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채 생포됐다가 결국 숨졌다”고 보도했다. 시르테 인근에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공습을 피해 달아나다 과도 정부 측 시민군에 발각됐던 것.
NTC의 아브델 마지드 최고군사 관계자는 “카다피는 발각될 당시 구덩이에 숨어 있었고, 생포 당시 ‘쏘지 마라, 쏘지 마라’라고 외쳤다”고 전했다. 또한 발각되기 전에 과도 정부군과 카다피 호위군들과의 총격에 머리와 두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카다피는 생포된 직후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곧 사망했다. 이로써 지난 1969년 쿠데타 이후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했던 카다피 시대는 막을 내렸다. 올해 아랍 지역을 휩쓴 ‘재스민 혁명’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카다피는 결국 자신이 휘두른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셈이다.
‘천재지변’ 지구가 경고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을 묵묵히 감내하던 지구가 서서히 이상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201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지진, 홍수, 태풍으로 사망한 이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2011년 천재지변의 시작은 브라질과 호주를 혼란에 빠뜨린 폭우와 홍수였다.
1월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에 폭우가 내려 741명이 사망하고, 207명이 실종됐다. 리우데자네이루 주 중에서도 테레조폴리스와 노바 프리부르고 지역은 특히 산사태로 인한 피해가 커 최소 300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이에 브라질 정부는 사흘동안을 공식 애도기간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호주 제3의 도시인 퀸즐랜드 주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내린 집중호우로 퀸즐랜드 주 전체 면적의 75%에 해당하는 약 146만㎢가 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폭우가 계속되면서 석탄광산의 생산 감소 등 호주 경제도 타격을 입었다. 당시 호주 정부는 폭우에 따른 피해규모로 200억 호주달러(22조 원 상당)를 예상했다.
지진도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2월22일 12시51분 뉴질랜드 제2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를 강타한 규모 6.3의 지진으로 최소 145명이 숨지고, 226명이 실종됐다. 이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붕괴되었으며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크라이스트 성체로마카톨릭성당도 붕괴했다. 뉴질랜드는이 지진으로 120억 달러, 우리 돈 13조 5,000억 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3월24일에는 미얀마가 그 희생양이 됐다.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지대에 인접한 미얀마 산악지역에서 6.8의 강진이 발생, 최소 75명이 사망하고 110여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장 최근에는 터키에서 강진이 발생했다. 10월23일 19시41분 21초, 터키 반 북동쪽 19km 지역에서 시작된 규모 7.2의 강진으로 지진 발생 이틀 만에 집계된 사망자만 해도 534명. 이러한 가운데 생후 2주일 된 여자아기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더미에서 48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되고, 19세 청년은 91시간 만에 구조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8세 청년 임다트 파닥도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102시간 만에 구조됐으며, 13세 소년도 108시간 만에 구조되는 등 기적이 이어졌다.
미국은 토네이도로 몸살을 앓았다. 5월22일 저녁, 시속 165마일(약 시속 265㎞)의 초강력 토네이도가 미주리 주를 급습해 125명이 사망하고 232명이 행방불명됐다. 24일에는 오클라호마, 캔자스, 아칸소 주에도 토네이도가 강타해 이로 인한 사망자가 16명 발생했다.
8월에는 시속 185㎞의 강풍을 동반한 강력한 허리케인 아이린(Irene)으로 뉴욕시가 사상 최초로 ‘의무 대피령’이 내렸다. 뉴욕시는 25만 명에 대해 대피령을 발령하고 대중교통 운행도 27일 정오부터 강제 정지시켰다. 뉴욕 주에서 대중교통이 운행된 것은 2005년 관련 노조 파업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테러’ 귀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지난 1월24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 21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도모데도보는 모스크바에 있는 공항 가운데 이용객이 가장 많은 공항으로, 이 테러는 러시아 공항 역사상 최악의 테러 참사로 기록되었다. 당시 푸틴 총리는 “이번 테러는 무의미하고 잔인하다. 테러범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명확하게 표명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는 국가와 현 정권 등 모든 것과 모두에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적 테러리즘”이라고 분노했다.
그런가 하면 2월14일에는 러시아 다게스탄 지역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자살 폭탄테러로 경관 2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쳤다. 저녁 7시경 한 여성 자살폭탄 테러범이 경찰서에 들어오려다 경찰의 제지를 당하자 폭탄을 터뜨려 테러범과 군인 1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군인 4명이 부상당했다. 뒤이어 오후 10시40분쯤에는 테러범이 폭발물을 실은 자동차를 몰고 경찰서 근처로 접근한 뒤 자폭했다. 이 폭발로는 경찰 6명과 10여 명의 군인이 부상당했다.
4월11일에는 벨라루스의 한 지하철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오후 5시54분경,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중심부 지하철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최소 11명이 사망하고, 120여 명이 부상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폭발 직후 역사에서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얼굴이 피범벅이 된 승객들이 옷이 찢어진 채 역사 밖으로 뛰쳐나왔다. 손과 발이 잘려 나간 처참한 모습의 부상자들도 목격됐다. 또한 이 폭발사고로 지하철 역안 폭발 현장에는 깊이 1.5m 정도의 큰 웅덩이가 생겼다고 한 목격자는 전했다. 안드레이 슈베드 검찰 차장은 이날 폭발을 테러로 규정하고 “사건 조사를 위해 합동 수사팀이 꾸려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튿날 “안드레이 슈베드 검찰 차장이 11일 저녁 발생한 폭발 테러 사건에 연루된 몇 명의 혐의자가 체포됐다고 밝혔다”고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7월22일 오후 3시 30분경에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총리집무실 등이 있는 정부청사에서 폭탄이 터졌다. 폭탄 테러가 발생한 약 2시간 후 오슬로에서 30여㎞ 떨어진 우토야섬에서는 집권 노동당 청소년 캠프 행사장에 테러가 발생, 총 98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경찰 복장으로 우토야섬에 들어와 희생자들에게 90분간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겁에 질린 청소년들이 호수에 뛰어들기도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32세의 노르웨이 남성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변호사를 통해 “잔혹한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래도 필요한 행동”이라고 전했다. 아프텐포스텐과 VG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이슬람과 노르웨이 정치현실에 매우 비판적인 우파 민족주의자. 이번 연쇄테러는 지난 2004년 191명이 사망한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 사건 이후 서유럽에서 일어난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었다.
‘작별’ 우리들의 별, 하늘로 돌아가다
2011년, 우리 곁에서 영원히 스타로 남을 줄 알았던 두 명의 여인을 떠나보냈다. 세기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와 세계적인 여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가 그 주인공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3월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숨졌다. 향년 79세. 193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으로 건너가 10세 때 영화 ‘귀로(歸路)’로 데뷔해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1960년과 1966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미국의 대표적인 여배우였다.
영국의 세계적 여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그로부터 정확히 4개월 후에 사망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와인하우스는 지난 7월23일 오후 3시경 런던 북부 캠덴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한 외신들은 와인하우스가 2003년 가요계에 혜성같이 데뷔한 이후로 약물과 음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을 들어 사인을 약물 과다복용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와인하우스는 2008년 6월과 지난해 4월에도 재활치료를 받은 바 있다.
와인하우스는 2003년 1집 <프랭크(Frank)>로 데뷔한 이후 평단으로부터 독특한 음색과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주목받아왔다. 2006년에는 <백 투 블랙(Back to Black)>으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5개 트로피를 휩쓸며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경제위기’ 그리스여, 살아나라
그리스는 지난 2006년 이래 시멘트 생산이 60%나 줄고 철강 생산량도 급격히 감소하는 등 산업이 현저히 하락하고 있다. 이에 경제전문가들은 2011년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4%로 전망하며 올해 말까지 민간 부문에서 2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그리스의 실업률이 15%를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5월16일 뉴욕타임스는 그리스가 유럽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은 지 약 1년 만에 이런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리스 국민의 고통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그리스에서는 최근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채무불이행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작년에만 400억 유로의 예금이 인출, 예금 인출 사태도 확산됐다.
이러한 가운데 유럽연합(EU) 정상과 유럽은행들이 10월27일 자정을 넘기는 마라톤회의 끝에 새벽 4시(현지시간)에 대책안을 발표, 그리스가 한숨 돌렸다.
이 날 유로존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1조 유로(1조 3,09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하고, 역내 은행들이 1,060억 유로 규모의 자본을 확충하는 데 합의했다. 이와 함께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그리스에 1,000억 유로 규모의 추가 지원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 2년 간 국제금융시장의 발목을 잡으며 유로존 재정위기 해결의 걸림돌로 작용해 온 그리스 채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이 손실률을 50%로 합의하는 결론에 이르자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유럽연합(EU) 정상들의 위기대책 합의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됐다”면서 만족감을 표했다.
그러나 정상회의를 마친 후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의 채무 위기가 세계 경제의 불황을 초래한 미국 리먼 브라더스 사태처럼 유럽과 세계 경제를 혼란으로 내몰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