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의 방식과 일정 등을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던 민주당이 선(先)창당 결의, 후(後)통합전당대회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 11월28일, 차기 전당대회를 준비해온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12월11일 독자적인 전당대회를 열어 ‘혁신과 통합’ 등과의 신당 창당 안건이 의결되면 1월8일 통합전당대회를 여는 것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최고위원에 참석한 손 대표는 “힘을 합쳐 무서운 힘으로 승리를 향해 달려온 민주당의 전통을 살려 야권통합과 정권교체를 이루자”고 강조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과제는 여전
야권통합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민주당 통합전당대회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우선 통합지도부 선출에 있어서 방식을 둘러싼 문제다. 혁신과 통합 측은 이미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주는 완전국민참여경선제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박지원 원내대표는 전당대회는 곧 당원대회인만큼 당원들의 참여비율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혁신과 통합 측으로서는 상대적 열세인 조직력을 만회하기 위한 방안으로 완전국민경선제를 내세우는 것으로 풀이되며, 박 원내대표로서는 막강한 조직력을 통한 당권장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통합전대의 방식이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만큼 양측이 합의를 도출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의 이름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민주당이라는 현행 당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혁신과 통합은 ‘민주’라는 단어를 포함하되, 새로운 이름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한미FTA 비준안 국회 통과 이후 불거진 현 지도부에 대한 불신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 손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안일한 대처로 사실상 한미FTA 비준안 국회 통과가 이뤄졌다고 보는 측에서는 현재의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급기야 11월28일에는 조경태 의원을 비롯한 원외지역위원장들이 대의원 5,478명의 서명을 받아 12월11일 임시 전당대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요구서를 통해 손 대표를 포함한 현 지도부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어쨌든 손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극적 합의를 이뤄낼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통합작업에 속도가 붙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야권통합정당을 이끌게 될 새로운 지도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후보군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민주당 내에서는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한명숙 전 총리, 이인영 최고위원, 김부겸 의원 등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내대표의 경우 민주당의 정통성과 호남의 대표인물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 전 총리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출마를 권유하고 있는 측근들 사이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의 정부시절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서 첫 여성 총리에 올라 민주정부 10년을 함께했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친노세력이 주축인 혁신과 통합을 아우를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야권통합의 실무적 역할을 맡아온 이인영 최고위원은 ‘세대교체와 판교체’를 기치로 내걸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또한 3선의 김부겸 의원은 ‘더 젊은 정당, 더 큰 민주당’을 내세우며 전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과 통합 내에서는 문성근 상임대표가 유력하다는 소식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불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에 이용선 상임대표와 김기식 공동대표 등이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 통합연석회의에 합류한 한국노총에서는 이용득 위원장의 출마가 유력하다.
양진영의 후보군이 뚜렷해짐에 따라 경선룰을 둘러싼 기 싸움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선방식에 따라 정당 및 정파별 지도부 입성 여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통합도 가속화
한편 진보정당들의 통합 움직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11월27일, 민주노동당은 임시당대회를 열고 ‘진보통합안’을 승인했다. 이날 임시당대회에서는 재석대의원의 90.1%의 찬성으로 국민참여당과 통합연대 등 범진보세력을 아우르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결의했다.
이날 표결에 앞서 찬반토론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찬성 측은 “보다 강력한 진보정당을 만들어 사회의 약자인 노동자와 농민이 의지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가운데 “통합이 민심의 대세가 된 만큼 이를 거스르는 것은 시대의 낙오자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반대측은 “한미FTA를 추진한 정권을 계승하는 국민참여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후 “통합 추진 과정도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무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표결 결과는 찬성 측이 월등이 우세했다. 이날 임시당대회를 마친 후 우위영 대변인은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통해 한국사회 최초로 힘 있는 진보정당이 주도하는 진보적 정권교체를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참여당도 논평을 내고 “민주노동당의 결정을 크게 환영하며, 오늘의 결정이 있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은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지도부에 대해 감사의 말을 드린다”고 전했다.
진보정당의 또 다른 축인 진보신당도 통합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홍세화 진보신당 신임 대표는 11월28일 ‘진보좌파 정당건설을 위한 연석회의’를 제안하고 나섰다. 홍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대표단 이취임식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우리와 다른 쪽에서 진행되는 3당 통합에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1% 기업지배체제에 집중된 권을 99% 민중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은 우선 사회당과 창당을 준비 중인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등과 연대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월21일 사회당은 ‘진보 혁신과 통합 위원회’를 구성하고 진보통합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이외에도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통합연대의 통합논의에 동의하지 않는 노동계나 사회단체에도 연석회의 참여 여부를 타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신당설, 변수로 작용할 듯
정치권의 새로운 얼굴이자,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한 안철수 교수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 교수의 지지율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뛰어 넘어 50%대 고공행진 중이다. 이에 ‘안철수 신당’의 등장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현재의 지지율로만 보더라도 ‘안철수 신당’이 등장하면 50석 정도의 의석확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지난 11월14일 안 교수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안철수연구소의 지분 절반을 사회환원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시가 1,500억 원 상당의 주식이다. 이후 안 교수의 지지율은 급상승했고, 이러한 상승세는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보는 정치권은 안 교수의 지지율이 파격적인 사회환원을 통한 이미지 쇄신과 안개정국에 빠진 현재의 정치권 상황과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특히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한미FTA를 직권상정한 후 강행처리를 하면서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졌다는 점도 안 교수 지지율 상승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만약 안 교수가 직간접적으로 신당을 창당하고 총선에 개입할 경우 정치지형은 한바탕 요동을 칠 것으로 예상된다. 안철수 신당이 50석을 차지하게 되면 한나라당과 통합야당은 100석 이상씩 나눠가질 가능성이 높고, 자유선진당을 비롯해 진보정당 등 군소정당이 남은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안철수 신당의 출현 여부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지고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가정이 현실화 될 경우 여권보다는 야권에 더 큰 파장을 안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 교수가 보여준 야당성향으로 인해 그가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이토록 급박하게 바뀌고 있는 가운데 정작 안 교수 본인은 정치참여 여부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상태다. 언론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데다 가끔 등장해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총선정국에서는 범야권을 측면 지원한 후 내년 대선정국에 접어든 후 갑작스럽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안 교수가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그 시기와 방법이라는 것이다. 비정치인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50%대의 지지율을 받고 있는 데다 정치권의 여건 등을 고려해 볼 때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다. 오직 안 교수 본인의 의지와 결단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당 쇄신방안에 골몰
지난 11월22일 한미FTA를 전격 강행처리한 후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한나라당은 정책 쇄신안을 연이어 발표하며 정책쇄신에 힘을 쏟고 있다. 고용과 복지 등 민생에 직결된 정책들이 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왔던 국정운영 방향에 역행하는 정책들도 다수 눈에 띈다는 점에서 당청이 결별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당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 이반이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한 반발이라고 판단하고 청와대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내년 총선의 표밭 다지기에 들어갔다는 풀이다.
지난 11월27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서민예산 증액과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문제를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은 현 정부가 추진해 왔던 부자감세를 통한 경제활성화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른바 ‘버핏세’로 불리는 부자증세의 필요성은 당내 쇄신파 의원들이 이미 제기한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대표적인 친박계 의원으로 분류되는 유승민 최고위원 역시 이 같은 기조를 내년 총선 공약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날 한나라당은 당정협의회를 통해 약 9만 7,000여 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무기계약직 전환 방안 등이 포함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듯 한나라당이 정책쇄신안 시리즈를 잇달아 내놓는 데에는 청와대와의 차별화를 노리는 것과 동시에 당내 공천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란을 정책현안으로 집중시켜 해결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총선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공천경쟁을 정책에 집중해 내년 총선까지 현 지도부 체제를 유지하려는 홍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것.
이런 가운데 정두언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당 쇄신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이른바 ‘박근혜 역할론’이 공론화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박 전 대표의 책임정치를 강력하게 촉구한 것이다.
11월28일 정 의원은 “한나라당 민본21 쇄신 간담회에서 홍준표 대표체제 교체, 당 기조 대전환, 대대적 인적쇄신, 박근혜 전 대표 책임정치 등의 주장이 나오자 친박계 쪽에서 ‘너무 센 것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이는 아직도 사태를 안일하게 보거나 총선 패배의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지도자는 한마디로 책임지는 사람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한 “2006년 지방선거 중 발생한 테러 사건으로 지지율이 최고조에 이른 박 전 대표는 한반도대운하 등 공세를 펼친 이명박 대통령에게 추석을 계기로 추월당한 후 끝내 만회를 못했다”며 “이제 안철수에 추월당한 박 전 대표는 온갖 도전과 모색을 할 때인데 아직도 홍준표 체제 대안부재 등 부자, 몸조심 모드이니”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