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잡기에 앞서 강도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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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잡기에 앞서 강도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경찰
  • 취재_정대근 기자 / 사진_신혜영 기자
  • 승인 2011.12.0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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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향기 남기며 걸어온 41년의 세월, 다시 갈 길을 찾다

   
 
휴대폰을 통해 들은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절제와 예의를 갖췄지만,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배어 있는 음색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41년 동안이나 치안의 일선에서 발품을 판 구리경찰서장 안병정 총경이었다. 경찰서장과의 인터뷰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자는 가벼운 부담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의 온갖 범죄와 맞서는 사람에 대한 경이로움이며, 또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막연했던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던 까닭에 그리 당황했던 것이다.

‘흔적’을 남기는 경찰서장

구리경찰서장 안병정 총경은 41년이라는 최장기 근속 경찰관으로서 우리 경찰 역사의 산증인이다. 지난해 강남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당시 그의 관할구역이었던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됐던 서울 G20정상회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을 펼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그 이전에는 치안총수 6명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최고의 참모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렇듯 베테랑을 넘어 신화에 가까운 안 총경이지만, 유독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향기다. 그가 잠시라도 머물렀던 자리에는 어김없이 짙은 사람향기가 남았다고 한다. 마치 한 번 묻으면 백 리까지 따라간다는 백리향의 향기와도 닮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관할에 거주했던 주민들이나, 부하 경찰관들은 늘 그를 그리워한다고 했다.
안 총경은 유난히 꼼꼼하고 세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관할지역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구리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가 남긴 향기는 지역 곳곳에 자욱했다.

“지역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주민들의 목소리와 요구들 속에 치안의 열쇠가 숨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을 자주 만나려고 애씁니다. 지난 1월 구리서장으로 부임한 후 줄곧 관내 8개 동의 통반장들은 물론 각 학교장, 기관단체장들을 만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가 나누는 대화는 그저 말에 그치지 않는다. 그날의 대화는 ‘생생목소리카드’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만약 시민들의 불편사항이 접수되면 이 카드는 거의 누더기가 될 때까지 관리된다. 간부회의를 수시로 개최해 민원사항의 해결 여부를 확인하고, 사후 상황까지 챙긴다.
이는 구리경찰서장이 된 후 새삼스럽게 시작한 일이 아니다. 그가 경찰관으로 생활해 온 아득한 세월 동안 꾸준하게 진행해온 일상업무 중 하나다. 이제는 이러한 ‘생생목소리카드’가 시스템화 되어 맞춤치안으로까지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11월 현재, 총 355건의 건의사항을 수렴해 341건을 완료하고 예산 확보와 기관협의가 필요한 14건에 대해서는 구리시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전했다.

더 힘들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길로

“한 사람의 강도를 잡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고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애초에 강도에 나서지 않도록 미리 조치한다면 다치는 사람도, 처벌받는 사람도 생기지 않게 되는 셈이죠.”
이는 그가 줄곧 강조하고 실천해온 ‘예방치안’과 맞닿아 있다. 그저 듣고만 있어도 느껴졌다. 그것은 한 사람의 강도를 잡는 일보다 분명히 어렵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경찰관으로 살았던 지난 41년의 세월 중 20여 년을 사무실에서 잤다는 그의 이야기도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지 않으셨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에는 특유의 부드럽고 다정한 웃음소리였다.

“치안은 경찰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게 제가 가진 소신입니다. 안전하고 평온한 지역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신고와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경찰서의 문턱을 낮춰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렇게 직접 현장을 뛰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던 것은 경찰서와 서장이 주민들에게 다가갈수록 신뢰가 더욱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발품을 파는 만큼 주민들이 사랑해주시니 신이 안 날수가 없습니다.”
즐거움과 행복은 결코 위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그것이 마음에 닿을 때 비로소 웃을 수 있으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은 입이 아닌 표정과 눈빛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기자가 안 총경의 눈빛에서 봤던 것은 가득 차 흘러넘치는 즐거움과 행복이었다.

사람을 따라, 향기를 따라

그런데 안병정 총경은 내년 6월30일이면 제복을 벗어야 한다. 쉼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세월, 어느덧 정년에 접어든 까닭이다. 퇴임 이후 계획을 물었다. 그는 뒷바라지해야 할 자녀들이 있는 탓에 일을 좀 더 할 생각이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단다. 그렇다. 그는 아직 젊고, 소진시켜야 할 열정은 충만해 보였다. 그도 경찰관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아직은 어색하다고 했다.
“경찰관으로 한 평생을 살았다고 하면, 범죄자를 많이 만났을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위대하고 경이로운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제가 모셨던 많은 상관들은 한결같이 올바른 경찰상을 보여주신 분들이었습니다. 치안국장과 부산직할시장을 지내신 최석원 회장님, 박만종, 강두현 경찰국장님, 이광수 해양경찰대장님, 안응모 전 내무부장관님, 박배근 전 인천직할시, 대전직할시장님, 김우현 전 치안본부장님, 김원환, 김효은 박일용 전 경찰청장님은 제 인생의 스승이자 멘토였습니다. 제가 만났던 주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퇴임 이후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노년이 오기 전에 고향인 경남 함안으로 내려가 살고 싶다고 했다. 함안경찰서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그 시절을 통해 고향과 지역사랑이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되었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끝내 하지 못한 것이 있다. 안 총경은 분명 경찰관으로서 용맹하고 정의롭게 살아온 무관(武官)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그의 부임지에 남겨두고 온 것은 청백리(淸白吏)이자 목민관(牧民官)의 향기였다.
안병정 총경이 무엇을 하든 그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리고 그가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사람들은 그가 풍기는 향기롭고 짙은 사람향기를 맡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 번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의 전화번호는 절대 지우지 않는다는 안 총경. 그를 잠시 만났던 기자 역시 한 번 맡은 사람의 향기는 절대 잊지 않는다. 기자가 그의 퇴임 이후를 더욱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가 어디에 있든 그 아름다운 향기를 찾아가 다시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짧았던 인터뷰 시간이 아쉽지 않았던 것도 그 향기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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