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바람에 무너진 진보정당의 쓰라린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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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바람에 무너진 진보정당의 쓰라린 패배
  • 글_김영란 차장
  • 승인 2008.05.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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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대 ‘서민’의 대결? 서울 입성한 진보정치 가능성 있어

귀족 정치인이냐, 서민 정치인이냐
보수와 진보가 맞붙은 서울 노원병 선거구는 당초 예상을 깨고 보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진보신당 노회찬 의원은 40.05%를 얻는데 그쳐, 43.1%의 득표율을 얻은 홍정욱 후보에 뒤지며 원내 진출이 좌절됐다. 투표 중반까지 노 의원이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접전 양상을 보였지만, 개표가 막바지로 가면서 표 차이는 현저하게 벌어졌다. 홍 후보가 당선이 확정되면서 지난 1950년 제 2대 총선 이후 58년 만에 진보 정당이 수도권에서 의원을 탄생시키려는 계획이 무산됐다. 노 의원은 50%를 밑도는 저조한 투표율이 이번 선거에서의 패인이라 지적하고, 하지만 “현실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 ‘귀족’과 ‘서민’의 대결이라는 애칭이 붙었던 서울 노원 병 지역은 원래 민주당 임채정 국회의장의 지역구였으나, 임 의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후 홍정욱 후보와 노회찬 의원 등의 스타급 인물들이 대거 도전장을 내밀었다.


‘귀족’과 ‘서민’의 대결이라는 애칭이 붙었던 서울 노원 병 지역은 원래 민주당 임채정 국회의장의 지역구였으나, 임 의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후 홍정욱 후보와 노회찬 의원 등의 스타급 인물들이 대거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초 한나라당 동작갑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노원병 지역으로 전략 공천된 홍정욱 후보는 유명 배우의 아들, 밀리언셀러 작가, 하버드 최우수 논문상 수상자, 스탠퍼드 로스쿨 졸업, 미국 변호사, 미디어기업 CEO 등 화려한 이력을 가졌다. 홍정욱 후보는 “상대측에서 만든 ‘귀공자 대 서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며 “‘교육과 경제, 두 가지에 대해 누가 더 잘할 것 같으냐’며 정공법을 택한 것이 주효했다”고 밝히며 “발과 입보다는 가슴으로 일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말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줄곧 뒤졌던 홍 후보 입장에서. 이번 총선에서 이룬 승리의 기쁨은 더욱 큰 듯 하다.

한편 고교 때부터 유신 반대 운동을 시작한 후 30년 넘게 민주화 운동과 진보정치를 해왔던 노 회찬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거침없는 입담으로 보는 이들의 속을 후련하게 하기도 했던 대표적인 진보인물이다. 뜨거운 경합을 벌이다 결국 패배했지만 노 의원은 “이전에 한나라당, 민주당만을 찍었던 노원구 유권자들의 40%가 진보정치를 선택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면 이 40%의 유권자들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비록 패배했지만 짧은 기간 동안에 노회찬과 진보정치가 얻은 성과는 대단히 컸고, 서울에서 진보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결과”라고 이번 총선결과를 평가했다.
 
홍-정치인의 꿈 성취, 노-서울 진보정치의 시작 선거
20일을 앞둔 시점에서 한나라당 공천자 244명 중 244번째로 노원병에 전략 공천된 홍 후보는 30대의 젊은 나이로 국회의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7막7장’ 이라는 책으로 20~30대 젊은 층에 알려진 홍 후보는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아들로 최근에는 수십 년간 만성 적자를 이어오던 모 언론사를 인수,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홍 후보는 15세 때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고서부터 오로지 정치인을 꿈 꿔 왔다. 홍 후보는 “많이 배우고, 많이 취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길은 공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 그는 진보신당의 간판인 노회찬 전 의원을 2,000여 표 차이로 누르고 이 꿈을 이뤘다. 홍 후보는 화려한 이력과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져 자칫 ‘귀공자’로 부각될 수 있음을 염려해 그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명문 하버드대 출신인 홍 후보는 이번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교육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지역민들을 사로잡았다. ‘영어 나눔학교’개설공약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자신이 직접 매년 100시간 강연에 나서겠다는 이색적인 공약도 제시했다. 하버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자신의 이력 자체가 강점으로 작용했다. 상계뉴타운 건설, 창동 차량기지 4년 안에 이전, 경전철 구간 확대도 빼놓지 않았다. 선거 도우미로 개그맨 이봉원 씨를 내세워 자신의 엘리트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다. 장황하지 않고 정곡을 찌르며 명확한 타깃층을 공략한 홍 후보는 자녀들의 교육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지역 주부들을 집중 공략했다.

홍 후보의 성공적인 당선사례에서 전문가들은 지역민에 밀착한 맞춤형 공약, 그리고 뛰어난 메시지 전달력 등이 한몫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뉴타운’ 공약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서 홍 후보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홍정욱 후보는 “상계 뉴타운을 개발하고 창동 차량기지를 이전하겠다”고 주장, 당선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홍 후보는 “나는 추가 지정을 주장한 적이 없고 이미 지정된 우리 지역 사업을 잘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추가 지정을 약속한 사람들과 도매금으로 묶이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쪽이 홍정욱 당선인을 ‘향응제공’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양측은 엇갈린 해명을 내놓으며 팽팽히 맞서고 있어 검찰 수사 발표 전까지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18대 국회 입성에 실패한 노회찬 후보는 보도자료를 통해 “노원주민들의 지지와 성원에 감사드린다. 겸허한 마음으로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말한 뒤 “노원주민들과 함께 진보정치를 다시 시작 하겠다”고 말하며 새로운 진보정치에의 각오를 밝혔다. 노 후보는 “물론 아쉬움도 크지만 한 번 전투에서 졌다고 전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선과과정에서 ‘서민들을 위해 반드시 당선되라’는 명을 노원주민들로부터 수 없이 들었다”며 “노원에서 진보정치 다시 시작해 노원을 지키겠다. 노원을 진보정치의 요람으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노 후보는 진보정당의 참패에 대해 “서민들의 생활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진보의 욕구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수요는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공급자인 진보 정당과 진보 진영의 행태는 아직 낡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진보 정당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고,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을 못 하고 있다. 진보 진영은 아직 서민층이 요구하고 있는 민생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구태의연한 진보의 형태를 탈피를 강조했다. 새로운 정치신인의 등장과 새로운 진보의 모습으로 새롭게 도전해 나가겠다는 두 사람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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