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 점유율 15%, 3년내 세계 1위 목표

생산기술 획기적 개선으로 품질과 가격경쟁력↑

2011-10-09     남희영 기자

요즘 글로벌 경제는 무한경쟁시대다. 첨단 기술력을 자랑하는 전세계 다국적 기업을 당당히 제치고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한 국내 중소기업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기업은 바로 자동차 에어컨 부품인 패럴(Ferrule)과 머플러(Muffler)를 생산하는 (주)휘일이다. 최근 충남 아산시 영인면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하고 더 높은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유태승 대표이사를 만나 기업  경쟁력의 비결과 경영철학 등 성공스토리를 들어봤다.

‘가보로 쓸 칼은 정성으로 만든다’ 세계 1위 꿈꾸는 당찬 강소기업
가까이 들여다보면 정말 단순한 부품이다. 한 쪽을 막아 더 작은 구멍을 뚫은 짧은 파이프를 연상시킨다. 또 다른 제품은 파이프를 양쪽에서 불어 부풀린 풍선처럼 생겼다. 둘 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제품이다. 내부에 복잡한 장치도 없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어디에 쓰이는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주)휘일에서 만드는 이 제품은 자동차용 에어컨에 사용되는 부품으로 페럴(ferrule)과 머플러(muffler)라고 부른다. 머플러는 에어컨의 소음을 줄여주는 부품이고, 페럴은 에어컨과 머플러를 연결하는 이음매다. 머플러는 자동차 1대에 1개, 페럴은 10개가 사용된다. 현재 과연 이 기업 제품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품질과 가격이다. 한때 중국의 저가공세에 밀려 고전했으나 세계 최초로 획기적인 생산기술을 개발해 품질(손실률 3% 이내)은 물론 가격경쟁력도 갖춰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유 대표는 “기존 업계에서 10여 개 공정을 거쳐 하루 4천개 정도를 생산하는 일반적인 제조공정을 우리는 2개 공정으로 줄이고 하루 3만 개를 생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자동공법을 개발한 것”이라며 “이는 가격은 중국보다 싸고 품질은 세계 선진기업보다 앞설 수 있는 우리만의 무기를 장착한 셈”이라고 설명이다. 그 결과 패럴은 올해 약 1억 2,000만 개를 생산해 국내 자동차메이커 수요의 97%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머플러는 점유율이 올해 90% 수준까지 달성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15% 이상 끌어올려 품목의 글로벌 매출순위 4위 기업으로 도약을 예상하고 있다”며 “2014년에는 세계 1위의 자리에 반드시 올라서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충남 아산시에 1만 2,239㎡ 대지, 3,305㎡ 규모의 생산공장을 마련,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해외영업인력과 연구개발 인력을 보강해 향후 3년 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나가고 있다.

포기 모르는 끈기로 성공신화 창조 “아내 박지오는 최강 서포터”
회사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고, 그 고난의 과정을 꿋꿋이 이겨낸 결과다. 경기도 부천의 변두리 농촌에서 태어나 유한공고를 거쳐 어렵게 서울시립대를 나와 ROTC소대장을 지낸 뒤 사회에 나온 유 대표는 첫 직장으로 유모차를 만드는 업체에 취직했다.그러나 고품질 고가격 전략을 추구했던 그 기업은 당시 유통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 경영악화로 폐업하게 됐다. 유 대표는 당시 거래관계에 있던 스프링공장을 맡아 운영해 보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게 솟았다고 한다. “기계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첫 직장이 쓰러져가는 상황에서 스프링회사를 직접 운영해 보고 싶었지만 인수할 여력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몇 년 안에 벌어서 갚을 테니 외상으로 회사를 넘겨달라고 요구했죠.” 이것이 바로 (주)휘일의 시작인 셈이다. 스프링회사를 외상으로 인수해 운영하게 된 유 대표는 생산에서 배달까지 특유의 성실성을 발휘, 일일이 발품을 팔며 입지를 다져 나갔다. 그리고 굴지의 대기업인 대우전자 등과 만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그런뒤 1988년 한 대기업 간부로부터 차량용 에어컨에 들어가는 페럴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고민을 많이 했다는 유 대표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각오로 제품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대기업은 중국 등지에서 부품을 들여오는 한편 가격을 낮추라는 요구가 거세져 급기야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일생일대 위기에 직면한 유 대표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신념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때 유 대표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부인 박지오 씨다. 지금도 (주)휘일의 살림살이의 한 부분을 맡고 있으며 회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부인 박지오씨는 유 대표의 열정과 성실함, 그리고 노력하는 역량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기에 재기의 바탕을 마련하고 묵묵히 지원하는 최고의 서포터가 되었다. 유 대표는 “사업한다고 자녀들에게 소홀할 수도 있었으나 아내는 자식들에게도 빈틈이 없었다”며 “현재 아들 유강은 L전자에서 월급을 받으며 명문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딸 유내는 모 대학병원 전문의과정에서 근무 중이니 기업과 자식농사 둘다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성공시킨 아내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유태승 대표는 아들이 군복무중일 때, 50가지 테마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1등 할 품목 5개 구상 끝났다”
유 대표는 사업의 성공에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지만 운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사업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공도 이룰 수 없기에 평소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잔머리로는 잔일을, 큰머리로는 큰일을 생각하고 일을 구상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를 혼동하는 사람을 볼 때면 마음이 많이 아프단다. 유 대표는 “남이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성실하게 살고, 가능한 한 내가 주위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성실하게 살아야함을 거듭 강조했다.

“처음으로 시화공단에 공장을 분양 받을 때 계약금이 없어 쩔쩔매던 때 거금을 주저 없이 빌려준 조철운 후배를 비롯해 주문이 몰려왔는데 기계 살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내 일처럼 도와준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이상혁 차장, 힘들어 할 때에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준 주위의 친구들의 도움들이 아주 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유 대표는 회사경영이 어려운 사업가에 대해서는 “누구든 돈이 없거나 절대절명의 위기에 닥치면 본능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이런 위기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획기적인 원가 절감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 즉 위기를 잘 이용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유 대표는 “10% 정도가 아니라 50% 이상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20원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며 “20원은 하찮은 돈이지만 7억개면 140억을 1년에 절감할 수 있는 등 커다란 수익성이 있는 제품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유 대표는 “지금 말하기는 이르지만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품목이 총 5개 정도 구상이 거의 끝났다”고 귀띔해 주었다. 이는 곧 (주)휘일이 전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개척할 무대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며 유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인 3년 안에 반드시 세계 1위 자리에 회사를 앉히겠다는 확신에 찬 의지로 읽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