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담은 그림을 그려야 감성적인 창의력 길러져”
‘어린이 미술교육’에 열정 쏟는 황은화 작가
‘미술전시회 보지 말고 읽어라!’ 그림이 무슨 책인가? 보지 말고 읽어 라니. 중견 서양화가 황은화 작가는 관람객에게 전시장을 한번 훑어만 보고 나오지 마라고 조언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제목, 주제, 색깔 등을 주제로 ‘아이와 오래 수다를 떨어’라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작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홍익대 서양학과를 거쳐 런던 첼시미술대학원까지 졸업한 황 작가가 요즘 어린이 미술교육에 꽂혀 ‘어린이 큐레이터’ 수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갤러리세인(서울청담동 2011.9.2~2011.9.29)숨쉬는 사물전에 참가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황 작가를 만나 최근 활동현황과 작품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벽면작업·설치작업·입체작업 등 공간만 있으면 다양한 작품 승화
철학에서는 미술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하면 미술은 ‘시각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황 작가의 회화는 평범한 평면에서 어느 귀퉁이 부조의 이미지로 튀어나와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며 또 다른 세계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게 한다. 입체회화, 공간회화로도 불리어지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공간의 변주와 시·지각의 전환, 실제와 환영에 대한 고찰이 그것이다. 그의 차원을 넘나드는 도형과 컬러는 지극히 ‘미니멀’하다는 평을 듣는다. 한마디로 그의 창작과정은 중언부언하는 수식어와 군더더기, 곁가지 등 진실을 오도하고 핵심을 흐리는 것들에 대한 ‘피발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황 작가는 “내 작업은 일반적으로 보여 지는 시·지각을 넘어 시각의 실제와 환영을 경험하는 독특한 기회를 표현하는 것”이라며 “시각의 전환과 인식의 제안이 주된 나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입체 공간인 3차원의 세계에서 2차원의 이미지인 평면으로 보여 질 수 있도록 ‘공간회화’를 시도한다. 때문에 그는 벽면작업, 설치작업, 입체작업 등 공간이 주어지면 다양하게 작품으로 승화시킬 줄 안다. 황 작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선 2차원의 이미지가 올려진 3차원 구조물을 자연스럽게 함께 검토하게 된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2차원 평면 위에 올라가는 회화의 정체성과 관련해 작가가 제기하는 ‘또 다른 시각’에 관한 진지하고도 이지적인 문제의식을 대면하게 된다. 선, 도형, 색면, 선묘의 특징들이 두드러진 황 작가의 회화에는 3차원과 2차원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아가 ‘주체와 대상’에 관한 현상학적 질문과 탐색이 짙게 배어있다는 평이다. 요즘처럼 한 가지 시선으로만 살기에 이 세상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며 ‘또 다른 세계를 바라보라!’는 황 작가는 낯섦과 닫혀진 시각에서 벗어나 타인을 진실 되게 바라보도록 그가 만든 신기한 프리즘을 우리의 눈에 들이대고 있는 셈이다.
중견화가의 남다른 ‘큐레이터 수업’
황 작가는 요즘 서울 잠실의 송파어린이도서관 초등 미술프로그램인 ‘나도 큐레이터’에서 3년째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 큐레이터 강좌’는 전시기획자로서 큐레이터 역할과 그림 감상법을 알려주고 직접 전시를 기획해 볼 수 있도록 꾸며지고 있다. 중견화가로서 작품활동에도 바쁠 텐데 그는 왜 어린이 미술교육에 푹 빠져있을까? 현재 송파어린이도서관은 국내에서 어린이도서관의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송파 어린이도서관의 최진봉 관장은 “다른 미술 프로그램들이 몇 차례 단발성으로 끝나는데 아쉬움을 느꼈다”며 “고교시절 친구인 황 작가에게 도움을 청해 이제 정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의 간절한 요청에 응하긴 했지만 황 작가는 이왕 내친김에 정교한 커리큘럼으로 어린이들에게 미술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한마디로 황 작가는 영국의 미술교육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황 작가는 영국 초등학교에서 미술 교수법을 배웠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황 작가와 같은 미술 보조교사를 수업시간에 참여시켰다. “5~6명 그룹수업이 진행되는데 배우거나 느낀 것을 드로잉으로 표현하게 했죠. 개성을 담아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주된 관심사였기 때문이죠.”
“어린이 미술교육에 열정을 쏟는 이유?”
황 작가는 ‘생각하는 그림’을 중시하는 영국의 교육환경에 큰 감동을 받고 요즘 송파어린이도서관 ‘나도 큐레이터’ 수업시간에서도 적용하고 있다. 가령 학생들에게 작품 속에서 인상적인 한 부분을 선택해 그려보라고 주문한다.
붓 터치, 색깔 넣는 법까지 매뉴얼대로 그린 듯한 우리나라 학생들의 붕어빵 그림에 답답함을 느낀다는 그는 요즘 가르칠 때마다 ‘생각하는 미술’을 강조한다. “점 하나, 선 하나에 콘셉트가 분명해야 해요.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뭘 표현했는지 꼭 발표를 시켜 봐요. 그래야 창의력이 길러지죠.” ‘생각하는 그림’을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열려있는 교육의 기본을 가르치고 싶다는 황 작가는 “꼭 미술 전문인을 양성하려는 의도가 아닌 영국 아이들처럼 미술의 감각을 바탕으로 감성적인 창의력을 기르는데 주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황 작가는 이처럼 어린이 미술교육에 열정을 쏟는 이유에 대해 “내가 가르친 아이들 가운데 한명이라도 미술에 매료돼 그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매력적인가요”라며 반문한다. 실제 지난해 가르친 한 여학생은 교육청 미술 영재아로 뽑혀 큐레이터를 꿈꾸는 자신의 장래희망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황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런던예술대학교 첼시미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까지 개인전 15회와 수많은 그룹전(서울 수원 런던 파리 북경등)을 가졌으며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 홍익여성화가협회 등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원여자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한편, 황은화 작가는 제17회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예술의전당 2011.10.6~10,12)에 전시 계획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