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의원 뒷 이야기
2005-09-29 글/편집국
각종 의정활동 중간평가결과 구태 여전한 것으로 드러나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치우친 구태의연하고 부패한 정치를 바꿔보자고 국민들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얼굴에게 표를 던졌다. 이 같은 국민들의 열망은 70%에 가까운 현역의원 교체라는 결과로 표출됐고, 의원들 역시 국민의 뜻에 따라 윤리와 개혁을 내세우며 힘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현재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국민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하고 있을까. 변화와 개혁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한 17대 국회의 현재모습을 살펴보도록 한다.
폭행·투기…부패정치 여전해
작년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한 17대 국회의원들에 대해 국민들은 고작 '51점'을 매겼다. 또 의정 활동 평가에 있어서도 '잘못되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73.4%에 이르렀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KBS스페셜'과 한길리서치연구소가 17대 국회 개원 1년을 맞아 벌인 공동 조사에서 나타났다.
17대 국회 의정활동 평가와 관련해서 '아주 잘못하고 있다'가 21.3%, '다소 잘못하고 있다'가 52.1%로 조사돼 부정적 평가가 73.4%에 이르렀다. 이 같은 평가는 40대(76.2%), 서울(80.3%), 대졸 이상(76.6%), 자영업(80.9%)과 블루칼라(76.8%) 계층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운영평가에 대해서는 '과거의 국회보다 못해졌다'(13.9%)와 '비슷하다'(69.5%)라는 부정적 의견이 83.4%로 나타났다. 과거의 국회보다 나아졌다는 견해는 15.0%에 불과했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점수를 줄때 평균 51.02점으로 조사됐으며 91점 이상은 0.5%로 극소수를 차지했다.
17대 국회가 나아진 점(중복응답)에 대해서는 '여성의원 수의 증가'를 45.5%로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세대 교체(8.7%)-진보정당의 원내 진입(25.9%)-국회의원 관련비리 부패 감소(23.9%)-권위의식 탈피(19.6%) 순이었다. 또한 소속 의원이 당론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의 66.6%가 '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므로 의원 개인의 소신에 따라 당론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응답해 '당론을 따라야 한다'(30.6%)는 의견보다 두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국회의원의 표결 결과 완전공개에 대해 조사대상의 81.1%가 찬성했으며, 교섭단체 결성기준 완화에 대해서도 72.4%가 찬성했다.
폭행·투기…부패정치 여전해
희망을 안고 출발한 17대 국회는 폭행과 투기 등 예전의 부패정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윤리에서 어긋나는 투잡을 비롯해 각종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아 국민의 신뢰감을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이기도 하다. 특히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회상을 정립하겠다는 취지로 설치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이런 문제의 의원들에게 제식구 감싸기식 처분을 남발하고 있어 ‘있으나 마나한 윤리특위’라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정치개혁·윤리는 오간데 없고, 폭행사건과 투기의혹, 부적절한 겸직 등으로 점철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맥주세례로 물의를 빚었던 한 국회의원은 “행사진행이 편향적이어서”라고 어처구니없는 배경을 설명했고, 술병투척으로 물의를 빚었던 한 국회의원은 “나도 억울하다”고 변명에 급급했다. 술자리 폭행 사건으로 도마에 오른 한 국회의원은 “최초 보도한 언론사가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사건 자체를 부인했지만 해당 언론사는 “그런 적 없다”고 일축, 거짓말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의원으로써 물의를 빚은 사건에 대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모두가 변명과 발뺌으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땅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두 명의 국회의원들은 이들 역시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했다. 고위공직자들의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 누구보다 목청을 높이며 다양한 비난을 쏟아내던 국회의원들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에 대해서는 어쩌면 그렇게도 똑 같이 “몰랐다. 아니다”로 답이 하나가 되는지, 비난여론이 일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국회의원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남을 대하는 잣대하고 자기를 대하는 잣대가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이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윤리의식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국회 내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MBC가 참여연대 조사자료를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본회의 출석율은 16대 85%에서 17대에는 90%로 높아졌다. 그러나 높은 출석율에도 불구하고 입법활동의 척도인 안건투표율은 74%에 그쳤다. 일부 의원들의 경우 안건투표율이 20%를 밑돌았다. 100%출석, 100%투표라는 진기록(?)을 세운 열린우리당 김재윤 의원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표결”이라고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잠 잘 시간도 없이 바쁜 것이 의정활동”이라고 꼬집었다.
잠 잘 시간도 없이 바쁜 의정활동 중에서도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른바 ‘투잡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활동과 겸직하고 있는 의원들의 직업분포는 의·약사가 95명으로 가장 많았고, 변호사 57명, 교수·사학 관계자 54명, 기업체 대표 등 7명 순이었다. 특히 변호사 겸직의원들의 경우 지난 2004년 6월부터 2005년 2월 사이, 많게는 7백여건, 적게는 40여건씩 수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의원은 국회내 의원회관에서까지 수임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회의원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치활동비가 모자라서”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투잡족’
변호사 겸직 의원 34명의 사건 수임 현황을 받아 분석결과 17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된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모두 2,40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 한 사람이 70건의 사건을 맡은 셈이다. 지난해 4·15 총선 직후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 때부터 따지면 2,993건으로 늘어난다. 의원 변호사의 사건 수임 내역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7대 임기를 시작한 뒤 지난 2월까지 제일 많은 사건을 수임한 의원 변호사는 조성래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조 의원은 자신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부산의 법무법인 동래가 맡은 769건의 사건에 담당변호사로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같은 당의 최용규 의원 672건, 최재천 의원 180건,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 165건, 자민련의 김학원 의원 78건 순이었다. 법무법인 미래의 구성원 변호사로 있는 최용규 의원이 맡은 사건은 대부분 한국자산관리공사나 한국주택관리공사를 변론하는 양수금 소송 사건이다. 최 의원은 총선을 치르고 나서도 한국자산관리공사 법률고문을 지냈다.
천정배 법무장관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사건 수임에 담당변호사로 이름을 걸치는 방식으로 46건,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0건을 수임했다. 이와 달리 박희태 국회부의장은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을 지켜 한건의 소송도 맡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금배지 ‘후광효과’를 보며 사건 수임 건수를 늘린 의원들도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의원에 당선된 2004년 4월16일~2005년 2월 말까지 이전에 비해 9건이 늘어난 73건의 사건을 수임했다. 이상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같은 기간 1건에서 4건으로 3건이 늘었다. 특히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총선 바로 전에 개업을 해서 그런지, 과거엔 한건도 없다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야 9건의 소송을 맡았다. 초선은 아니지만 천정배 장관은 같은 기간 41건에서 51건으로 9건이 늘었으며, 강재섭 원내대표는 4건, 열린우리당의 조배숙·이종걸·송영길 의원, 한나라당의 김영선 의원은 각각 한건씩 증가했다.
의원들은 민·형사 사건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사건 내역을 보면 지역구 민원인에서부터 금융기관, 정부투자기관, 기업체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또 자신의 이름으로 재판부에 답변서를 제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법정에 나가 변론을 하는 경우도 포착됐다.
대부분 ‘이름값’을 받고 일해
하지만 로펌에 소속된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름값을 받고 있다. 최용규 의원은 매달 500여만원의 급여를 받는다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밝혔다. 다른 의원 변호사들도 월급 형태로 매달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을 가져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형편이 낫거나 실적이 좋은 법인의 경우 의원 변호사에게 법인 차량과 수천만원 이상의 배당금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에 한 변호사는 “국회의원이 변호사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사건 관련자에게서 돈을 받고 영리활동을 추구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도덕성뿐 아니라 변호사 윤리에도 맞지 않다. 사건을 맡는 것 자체가 직·간접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압력”이라고 지적했다. 의원 변호사들이 한사코 법무법인에 이름을 걸어놓는 이유는 법인의 처지에서 봤을 때 의원이 이름값을 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의정활동도 하면서 가외 수입을 누릴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의원 변호사의 광고효과는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법원의 처지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본업 포기않고 국회의원 겸직
의·약사, 회계사, 법무사 등 전문직종 출신 의원들도 대부분 애초 본업을 포기하지 않고 영리활동을 계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등포 독일치과의원을 운영하는 김춘진 열린우리당 의원 역시 마찬가지. 그는 임시국회가 열린 지난 6월에도 병원에서 수시로 환자를 진료했다. 그는 “국회가 열릴 때는 점심 시간밖에 치료하지 못한다. 비회기 중에도 오전에 잠깐 진료를 하기 때문에 국회에 들어오면서 1억원이 넘는 적자가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약사 출신의 장복심 의원은 조제는 하지 않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압구정동 태양약국에 종종 들러 약품의 재고 상태 등을 파악한다. 회계사 출신의 한광원 의원은 인일회계법인으로부터 매달 500만원을 가져간다. 지난 3월에는 2,400여만원의 배당소득을 받았다. 돈을 받는 만큼 일도 한다. 회기 중이든 아니든 거의 꼬박꼬박 1주일에 한두번씩 회계사무소에 들러 직접 결재를 한다고 사무실 관계자들은 밝혔다.
공무원인 국회의원들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영리활동 추구는 임기 동안 기업체을 운영하거나 사기업체의 임직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코스닥 등록업체인 (주)소디프신소재의 사외이사로 뛰고 있는 무소속의 신국환 의원은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참석해 안건을 심의하고 경영 자문을 해준다. 소디프신소재쪽에서는 그에게 다달이 300만~4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업체와 관련될 수 있는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재정경제위 소속 의원이다. (주)금호생명보험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신중식 의원은 업체의 감사 업무를 하면서 매달 30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겸직 의원 본회의 출석률 떨어져
학교법인 신흥학원 이사장인 강성종 열린우리당 의원은 요즈음 수시모집을 하고 있는 신흥대학에 나간다. 학교 안 이사장 관사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대학 관계자는 “이사장이 회의를 주관하는 경우는 한달에 한두번 정도지만, 최근에 거의 매일같이 관사에 머문다”고 밝혔다. 그는 방학 때 학교에 나온 학생들이나 수시모집 응시생들과도 수시로 접촉한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강 의원은 동두천 관광호텔 대표로도 있으면서 매달 500만원의 급여와 법인 명의로 된 에쿠스를 몰고 다닌다. 의원들의 가장 많은 겸직으로 꼽히는 교수의 경우 정교수는 대부분 휴직을 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겸임·객원·초빙 교수 등으로 이름을 걸쳐놨지만 실제 대학에 나가 강의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모두 9개로 가장 많은 겸직을 하는 정몽준 의원의 활동 중심은 대한축구협회다. 협회장인 정 의원은 거의 매일같이 협회로 출근한다. 이런 이유로 의원들의 겸직활동은 의정활동의 성실도를 낮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겸직활동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만큼 의정활동에서 시간과 정성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겸직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 출석률은 그렇지 않은 의원보다 낮게 나왔다. 의원들의 겸직은 자신의 이해와 입법활동에 반영돼야 할 이익의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상존시킨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의원들의 영리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직종에 대한 겸직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17대 국회 중간평가, ‘구태 여전’
한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17대 국회 개원 시점인 지난해 6월 5일부터 올 7월 6일까지 13개월 동안 진행된 본회의 출석과 투표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7월 임시국회까지 총 59회 본회의를 개최했으며 의원 평균 본회의 출석률은 90%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16대 국회 평균 본회의 출석률 85%에 비하면 다소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본회의 안건 투표율은 74%(총 569건)로 출석만 체크하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의원은 과거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본회의에서 처리한 569건의 안건 중 투표에 절반도 참여하지 않은 ‘무책임 의원이 28명’, 90% 이상 투표에 참여한 ‘모범의원은 모두 59명’으로 집계됐다. 또 본회의 출석률이 90%가 넘는 209명의 의원 중 안건투표율이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원은 26명에 달했으며, 정당별로는 열린우리당 12명, 한나라당 12명, 무소속 2명 순이었다. 또한 안건 투표에 절반(50%)도 참여하지 않은 의원은 9명으로 열린우리당 김희선, 신계륜, 염동연, 한나라당 공성진, 곽성문, 유승민, 이재오, 주성영 의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재윤 의원(제주 서귀포시 남제주군)은 17대 의원 중 유일하게 본회의에 100% 출석하고, 100% 표결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나 의정활동의 성실성과 책임성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이에 대해 김 의원측은 “법안을 만들고 표결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며 “‘100% 참석, 100% 투표’는 이런 의무를 다하고자 노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당별로는 처음 국회에 입성한 민주노동당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민노당은 본회의 출석률 90%, 안건 투표율 83%로 평균을 상회한 가운데 열린우리당은 출석률 91%, 투표율 77%, 한나라당은 출석률 90%, 투표율 72%로 나타나 출석률에 비해 안건 투표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의 투표율은 각각 56%, 43%로 집계됐다. 특히 당선횟수별로 초선의원의 경우 본회의 출석률과 투표율이 각각 91%, 78%로 본회의 참여율이 높은 반면 당선횟수가 높은 중진 의원의 경우 본회의 출석과 안건투표율이 저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정감시센터는 “주로 정당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중진 의원들이 국회의 최고 의사결정 과정인 본회의 안건 투표에 소홀한 것으로 조사돼 국회의원의로서 마땅히 비판받을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 김홍일 의원은 본회의 출석률 53%, 안건투표율 4%(20번)로 국무위원을 제외하고 안건투표에 있어 최하위를 기록했다. 또한 민주당 이정일, 자유민주연합 김학원, 이인제,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은 17대 국회 개원 이래 현재까지 표결에 30%도 참여하지 않은 의원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