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서의 질주본능, 한식의 세계화에 날개 달다

맛, 서비스, 인테리어, 시스템화가 세계화 경쟁력

2011-10-07     정설진 기자

26년간 최고급 한우만을 사용, 자타 최고의 명품브랜드인 ‘벽제외식산업개발’(김영환 회장)은 ‘벽제갈비’(4개점)를 시작으로 ‘봉피앙’(7개점), ‘벽제구이로’(2개점), ‘벽제설렁탕’(2개점) 등 4개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해외 프랜차이즈로는 ‘벽제갈비’ 중국 북경점(허난호텔)과 ‘벽제봉피양’ 중국 산동성 위해점(위해위호텔)이 있다. ‘벽제갈비’는 2003년에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아시아 5대 음식점으로 선정, 2005년에 세계 27개 대도시 대표음식점 50선에 선정되는 등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적 한식 브랜드이다. ‘벽제외식산업개발’은 1986년 신촌에서 ‘벽제갈비’를 개업한 이래로 최상급의 한우의 공급체계를 확립하고 최고의 맛집이라는 명성을 키워왔다. 이렇듯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온, 한식뿐 아니라 외식분야의 박사로 불리는 창업자 김영환 회장의 아성이 너무 커서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당찬 포부를 일관되게 뿜어내는 2세 경영인 김태현 이사를 만났다.

2세 경영, 재도약의 타이밍
“회사의 이사로서 경영에 처음 임했을 때 부담감이 컸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요. 그러나 차츰 제가 모든 걸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기 시작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매장에 나와 일을 거들며 현장감을 익혀온 김태현 이사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사라는 직함을 받아 경영에 참여하고서부터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은 당연했다. 오죽했으면 한동안 우울증까지 느꼈을 정도다. 그러나 브랜드 ‘벽제구이로’의 대표로서 브랜드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으면서 김영환 회장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벽제구이로’의 기획단계부터 네이밍, 메뉴구성, 효율적 방안의 즉각적 도입 등 신세대적인 도전과 과감함이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성공궤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젊은 2세 경영인으로서 주목받기 전에 김 이사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학창시절 놀기만 하고 꿈이 없었다고 솔직히 말하는 김태현 이사. 한 번은 아버지인 김 회장으로부터 ‘네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엉겁결에 카레이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로부터 당시 잘나가는 카레이서 이름을 들었을 뿐 레이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상태. 카레이서 중에 누구를 아느냐는 김 회장의 연이은 질문에 얼핏 떠오른 선수 이름을 댔고, 김 회장이 직접 그 선수를 찾아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때부터 김 이사는 그 선수의 제자가 되어 레이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선수는 국내 아마추어 자동차 경기 대부분을 석권하고 드리프트(차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측면 미끄러짐 현상을 멈추지 않고 계속 유지시키게 하는 운전기술)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신윤재(슈퍼드리프트 팀) 씨였다.

21살 때 레이싱을 시작해서 처음 나간 아마추어 경기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레이서로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김 이사. 이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레이싱이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이겼을 때의 짜릿함이랄까 점차 진취적이고 분석적이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전에 없었던 승부욕이 생겼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지고 싶지 않은 근성이랄까”라는 김 이사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한 레이싱의 스승인 신윤재 씨를 멘토라 칭했다.

세계 유수의 외식업계가 경쟁 상대
“아버지가 26년간 명품브랜드를 만들었다면 지금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은 시스템 구축입니다.” 김태현 이사의 일성이다.
김 이사는 부친이 일궈놓은 ‘벽제외식산업개발’의 각 브랜드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화를 꿈꾸고 있다. ‘맛이 없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김 이사의 호언 섞인 바람은 ‘벽제외식산업개발’의 차별화 전략에 기인하고 있었다.

우선, 포천의 계열목장인 ‘한창목장’에서 제공하는 한우는 최고급으로 정평이 나 있다. 최우수 시범목장으로 지정된 한창목장은 최적의 환경 조건은 물론 맞춤사료를 만들어 사육함으로써 1++(투플러스 1등급)등급 소의 출현을 높이고 있으며, 자체 브랜드인 ‘설화한우육’은 미식가의 미각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 기업의 차별화에는 생갈비, 등심, 설렁탕, 냉면, 김치 등 각 분야 최고의 장인을 기업의 자산으로 인정하고 있음이다. ‘벽제외식산업개발’의 명인 조리장들은 업계에서도 최고의 장인으로 통한다. 이동이 잦은 조리기술자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10년, 20년 이상 장기 근속자가 많다.

김 이사는 수시로 국내외 외식업계의 맛, 서비스, 인테리어 등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부친과 더불어 수많은 곳을 다녔다. 그는 기업이 인테리어, 제품의 고품질 양산 체제, 메뉴와 서비스, 가격 형성 등 많은 부분에서 업계의 선도적 역할을 해왔으나 그 위상을 국내에 국한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계화를 겨냥해 벤치마킹을 다녀온 후에는 조금이라도 보완할 점이 있으면 즉시 반영시키면서 세계를 겨냥하고 있다.

요즘에 김 이사가 집중하는 분야가 있다. 회사 시스템의 정립이 그것이다. 26년간 기업이 양적으로 성장해 오면서 브랜드 육성과 함께 많은 것을 이루어왔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실질적으로 규모 있는 성과였는가라는 자문에는 고개를 젓는다고 했다. 모든 부서의 유기적 협조 강화, 직원들의 자율성을 독려한 팀제 운영, ERM(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구축, 주먹구구식이 아닌 자료의 데이터화 등 시스템 정립을 통해 실질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확립하겠다는 것이 김 이사의 포부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는 현장감이 좋다. 각 분야가 한 눈에 들어온단다. 일반 기업들에 비해 다소 뒤처져있는 외식업계의 수준이 높아졌으면 하는 소망 또한 비쳤다. 외식업의 특성상 자국 내에서의 인지도가 타국에서도 현지 고객으로부터 똑같은 인식을 받게 되는 속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고가 음식점에 대해 비싸다고 압박만 가할 것이 아니라 ‘벽제갈비’와 같이 맛있고 품격 있는 레스토랑이 많아져야 세계에 진정한 한식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자국민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한식이 세계에서 인정받겠습니까? 저희 기업은 세계 유수의 외식업계를 보고 달려왔습니다. 식상한 말일지 몰라도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앞장서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김태현 이사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어쩌면 레이서의 질주 본능을 타고 났는지도 모르겠다.
외식업계의 인력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요즘 사회가 자격증 등 스펙 쌓기 열풍이잖아요? 그런데 스펙 쌓기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말고 현장에서 배웠으면 합니다. 외식업계에도 좋은 인력이 들어와 같이 커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장에 답이 다 있으니까요.”
현장을 중시하고 현장에서 직감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김 이사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