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논란
2005-09-20 글/편집국
개똥녀 전 대통령 총살 등 사이버 피해 심각
발 문: 특정 개인에 대한 인터넷 신상공개와 네티즌들의 공개심판은 더 이상 새롭거나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집중 포화를 받았던 이른바 ‘개똥녀’ 사건은 특별히 더 알려진 경우일 뿐, ‘신상공개’는 이미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규제방안으로 존재하고 있다. 인터넷 신상공개는 법이 다스리지 못하는 파렴치범에 대한 네티즌들의 응징, 그리고 개인인권에 대한 폭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의 극단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 신상공개의 문제는 갈수록 증가, 지난해 기준으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신고된 사이버 명예훼손 건수는 2001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이 불러온 폐해, 인터넷 명예훼손 과연 해법은 무엇일까.
자살한 여자친구의 미니홈피에 이름이 오르내린 K씨, 도서관 폭행사건 가해자 K씨, 지하철에서 애견의 배설물을 방치하고 내린 개똥녀(일명)들은 모두 개인의 행동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시작된 사건들이다. 법의 허점으로 처벌할 수 없으면 우리라도 나서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논리가 일방적 여론으로 매도된 개인에게 적용되면서 심각한 피해를 낳고 있는 상황. 어머니가 딸의 자살사연을 인터넷에 공개한 뒤 자살의 원인으로 알려진 남자친구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사건, 그리고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학생들의 집단비난에 직면해 가출까지 한 A양 등 신상공개로 피해를 입은 사례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는게 현실이다.
정보기술 최강국의 멍에, 인터넷 명예훼손 첫 처벌
정보기술(IT) 최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 수가 최근 3,0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97년의 인터넷 이용자 수가 100만명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하드웨어 측면에 있어서 실로 폭발적인 성장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이 새로운 정보통신 매체로 등장하면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커다란 긍정적 변화가 우리 생활 곳곳에 생겼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을 꼽는다면 삶의 편리성 향상과 학문 및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터넷으로 인한 역기능 또한 심각하게 대두됐다.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과 사이버폭력 등의 문제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2004년에 경찰청에 접수된 사이버범죄 신고 건수는 20만건을 상회하고 있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만을 내세우기에는 인터넷의 역기능으로 인한 폐해가 너무 심하다.
인터넷에 의한 일방적 여론몰이를 빗대 ‘네카시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네티즌’과 ‘매카시즘’을 합친 말로 50년대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카시즘과 인터넷에 의한 인신공격이 서로 유사하다는 점에서 생긴 말이다. 인터넷 상에서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은 그 가해자를 색출해내기가 어렵다는 익명성 때문에 더 클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최근의 ‘개똥녀’ 사건은 익명의 가면을 쓴 사인들에 의해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큰 형벌이 가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계기로 인터넷 실명제를 주장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해 표현의 자유에 한계가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정부는 인터넷실명제 도입을 검토해 오는 10월에 입법발의를 하겠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도 실명제를 실시함으로써 자기 주장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부응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는 부득이하게 실명으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져 표현의 자유는 도처에 넘쳐흐르고 있다.
아직까지 체계가 잡혀져 있지 않은 인터넷 명예훼손과 관련, 검찰이 처음으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기소,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몰래 알아낸 뒤 이를 닉네임(별명)으로 사용해 인터넷에 저급한 글을 올린 것에 대해 검찰이 처음으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최근 이 같은 사례를 적발해 손모(32·무직) 씨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손 씨는 지난해 7월 서울대 학생으로 위장해 도서관을 출입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서울대 법대생 K 씨의 이름을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닉네임으로 사용한 혐의다. 손 씨는 이 포털사이트에 ‘서울대 법대 ○○○’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해 “유영철 같은 의인이 많이 나와야 한다” “더러운 직업의 여자들은 토막 살인해야 한다”는 등의 저급한 글을 170회에 걸쳐 올렸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손 씨의 행위는 이름을 도용 당한 사람을 직접 비방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이름을 도용 당한 사람이 그런 글을 올린 것처럼 오해받도록 한 것인 만큼 명예훼손 혐의로 엄중 처벌하고 판례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손 씨는 8월 5일 서울대 도서관에서 상습적으로 학생들의 물건을 훔친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손 씨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적힌 수첩을 갖고 있는 점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지난해 피해자 K 씨로부터 받은 진정 사건을 연계해 추궁하자 손 씨가 범행을 자백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인터넷 마녀사냥 ‘개똥녀 사건’
얼마 전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한 여성의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적이 있다. 이른바 ‘개똥녀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화는 2005년 한국 인터넷 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개똥녀 사건’.
이 사건은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대변을 치우지 않았던 20대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지하철에 안고 탄 애완견이 바닥에 배설을 했음에도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내린 한 여성의 이야기에 네티즌들은 격분하며 ‘개똥녀’라는 이름까지 붙이고 네이버, 다음, 야후 등 포털사이트로 옮기면서 퍼트리기 시작했다. 사건은 포털을 타고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급기야는 개똥녀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없이 원본 그대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그녀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악플을 달기 시작했고 그녀의 측근이라며 실명을 언급한 댓글이 올라오는 등 개똥녀의 신상정보가 낱낱이 공개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렇게 흔히 일어날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느 네티즌이 이를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림으로써 개똥녀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네티즌의 의견도 분분했다. 사회적인 매장을 시켜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에서부터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비난과 동정을 오갔다.
현재까지도 그녀를 향한 네티즌들의 욕설과 비방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감수되더라도 얼굴사진을 여과없이 올린 부분과 실명이 공개된 것, 다니는 학교와 학과까지 밝혀진 것은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을 모면할 수 없게 됐다. 만약 개똥녀가 인터넷에 사진을 올렸던 사람과 이를 퍼 나른 네티즌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면 사건의 파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이 논란으로만 그친 것은 개똥녀 입장에서 그 어떤 해명과 반론도 없었기 때문이다.
파문의 확대재생산공간, 인터넷 포털
이 동영상이 확산된 인터넷이란 도구 속에서도 핵심은 포털 사이트다. 하루 1천만명이 방문하는 포털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 포털을 통해 과거 같으면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할 일들이 사회를 뒤흔드는 파문으로 확대재생산된다. 문제는 이 포털을 통해 재생산되는 새로운 뉴스거리들이 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인기 검색어로 등록되면 개인 정보든, 사생활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는 등 포털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포털 사이트 내에서 이를 예비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는 자신들은 유통업체일 뿐 미디어는 아니라고 주장하며 애써 책임에 대해 외면해 왔다. 하지만 이미 포털은 뉴스생산기능을 명백하게 갖고 있다. 다만 뉴스생산자로서의 도덕적인 규율은 전무한 편이다.
그동안 네티즌은 미군의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여중생 추모 촛불 집회를 이끄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신고된 사이버명예훼손 사례가 10배 이상 증가하는 등 부정적인 면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법의 허점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자신들이 단죄하겠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주장이지만 부정적 측면도 만만치 않다. 모니터 뒤에 숨어 ‘정의’라는 이름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네티즌의 마녀사냥 모습은 결코 누가 다음피해자가 될지 알 수 없는 무서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지난 5월에는 한 여성이 자살한 사연이 인터넷에서 퍼지기 시작했고 자살 원인으로 헤어진 남자친구가 지목됐다. 네티즌은 이 남자의 실명, 전화번호, 주소, 심지어 가족정보까지 공개하고, 남자가 다니는 회사에까지 압력을 행사했다. 네티즌은 남자의 회사 제품 불매운동과 해고 요구 등 남자를 ‘응징’할 것을 주장했다.
다시 불거진 인터넷 실명제 논란
개똥녀 사건을 비롯한 각종 명예훼손 사건은 2004년 개정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규정한 이후 두 번째로 실명제 도입 필요성에 불을 지폈다.
정계에선 개똥녀 사건으로 촉발된 인터넷 사생활 침해의 해결카드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지난달 1일 정통부는 하반기 전략회의에서 학계와 관련 업계, 시민단체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터넷 실명제 연구반을 구성해 실명제 도입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네티즌의 입장도 지난 2004년과는 달리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다음, 야후 등 포털이 개똥녀 사건으로 제기된 인터넷 실명제 도입 찬반의사를 묻는 투표를 실시한 결과 네티즌의 60% 이상이 실명제 도입에 ‘찬성’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두고 시민단체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7월 7일 열린 인권·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들은 현재처럼 주민등록번호가 새나가는 인터넷 환경에서 실명제 도입 효과가 의심스럽다며 차라리 사이버상 명예훼손 범죄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실명제 도입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관공서를 비롯한 모든 사이트에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것을 반대 한다”며 “실명제 도입은 결국 사회적 공론의 장인 인터넷의 기능을 축소하는 역할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명제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서는 관공서 사이트나 포털 등 각각의 매체에 맞는 규정을 둘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명제의 기준, 그 모호한 경계선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 실명제의 논란 속에서 중요한 하나를 빼두고 있다. 바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관련 실무를 맡고 있는 정통부 조차 “학계나 시민단체나 저마다 말하는 범위나 개념이 다르고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도 정확하지 않다”며 “개념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거친 후에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라는 답변만 들려주고 있다. 그저 논의되는 기준으로 작성자의 실명을 밝히는 것에서부터 실명 대신 아이디를 쓰게 하는 방법, 인터넷뱅킹처럼 신용정보회사 등의 인증을 거치는 방법, 이름과 신원까지 확인 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 범위와 기준이 각기 다르다. 또한 실명제를 도입을 결정하더라도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포털에만 적용할 것인지, 관공서 사이트에만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각 사이트 게시판에 적용할 것인지 등 적용 범위도 명확치 않다.
게다가 비리 고발 등 익명을 보장해야 하는 필수적인 경우에 대해서도 명확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도 심각하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를 실명확인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지, 다른 대안이 없는지 검토 중”이라며 “올 하반기 안에 이에 대한 연구작업을 마친 결과를 공론화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명예회손, 해결방법은
실명제 찬성쪽은 인터넷상에서 범람하는 명예훼손 등의 문제를 막으려면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인터넷의 대부분의 포털은 아이디 접속 등을 통한 댓글달기를 실시하고 있어 실명제를 운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욕설이나 인권 침해성 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적발 되더라도 포털 자체에서 삭제하는 수준으로 그치거나, 명예훼손으로 신고되어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그 강도가 매우 미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터넷에서 명예훼손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며 사용자들의 인터넷 문화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실명제를 한다고 명예훼손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네티즌들의 인식을 높이는 장기적인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유명연예인 합성사진 유포의 주범이 초등학생이라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미디어 교육 부재는 심각한 수준에 있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양적인 팽창에 준한 미디어 교육의 도입이 하루라도 빨리 어린 세대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발전적인 대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그 기준을 사회적 요구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보보호법 강화를 통한 처벌 사례를 만들어 인터넷 명예훼손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도 네티즌에게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