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냉각기류 해결 위해서는
2005-09-24 글/ 편집국
독도문제, 혐한류 등 한일관계 시한폭탄 도처에
올해 초부터 한일관계는 각 분야에서 냉각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3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의 날’ 제정으로 촉발된 독도분쟁부터 시작해 한일관계가 급속 냉각현상을 보이면서 뒤이어 한국의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표, 한류에 이은 혐한류의 등장 등으로 최근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에 올 한해 한일관계를 되짚어 보면서 올바른 한일관계의 모색에 대하여 집중 조명해 보도록 한다.
네티즌을 분노케한 ‘만화 혐한류’
7월 26일 발간된 일본의 '만화 혐한류(マンガ嫌韓流)'가 발매 5일만에 10만부(아마존 집계 )가 팔리면서 일본 인기 만화 대열에 들어서 한국 네티즌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추천도 별 5개 만점에 4개반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 만화는 고객 리뷰수만도 152개에 이른다. '만화 혐한류'는 8월 2일 현재 1시간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아마존 랭킹 순위에 계속 1위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아마존 사이트는 몰려드는 주문으로 인해 배송은 4~6주후에나 가능하다고 공지하고 있다.
책 리뷰를 작성한 대부분의 일본 네티즌들은 책에 대한 내용이야 어떻든 일본인이 ‘한국을 배우는 최고의 입문서’라는데 뜻을 같이하며 ‘기대이상의 양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리뷰를 작성한 한 네티즌은 “2002 월드컵에서의 더티 플레이 등 젊은이가 흥미를 가지기 쉬운 테마를 채택해 한국인의 미숙함이나 독선성을 전하려 하고 있는 점은 높게 평가한다”고 밝히며 “한국은 성숙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아와 같은 언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와 향후 어떻게 접해 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적었다.
또 이 만화를 통해 “한국의 이상함이나 문제점 뿐만 아니라, 일본언론의 한류에 대한 편향 보도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었다. 일한 문제를 배우는 입문서로서는 딱이다”라고 리뷰를 작성한 네티즌도 있었다.
한류 붐이 일기 전부터 한국 드라마의 팬이었다는 한 네티즌은 “지금도 한국 드라마는 좋아하지만 한국을 좋아하진 않는다. 드라마안의 세계는 아름답게 만들어 있으니까 한국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인들이 드라마나 관련책 , 그리고 몇차례의 한국 여행만으로는 한국의 일면 밖에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한번 더 생각하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것에 의해 진짜 한국을 아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류 붐으로부터 갑자기 한국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시야를 펼칠 수가 있는 책으로서 추천”이라고 써 놓았다.
반면 일부 네티즌들은 “시세를 따르지 않는 선정적인 책”이라고 얘기하면서 “혐한류가 돈벌이 수단이 되는 것”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혐한류’는 인터넷을 통해 지속돼 온 ‘혐한’ 움직임을 주제로 한일관계, 한국인, 한국에 대한 왜곡된 주장을 만화 형식으로 소개한 책으로 출판사들로부터 출판이 거부됐다가 지난 7월 신유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모두 9개장을 포함해 에필로그, 칼럼, 극동아시아조사회 리포트 파일 6개 등으로 구성됐다. 책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내용과 검증되지 않은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제3장 ‘재일 한국인이 걸어온 역사와 강제연행의 신화’에서는 일제 당시 일본 기업들이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연행하지 않고 모집공고를 냈을 뿐이며, 국가 예산의 20%를 조선에 투입해 근대화를 앞당겼다고 주장한다. 또 제6장 ‘한글과 한국인-자칭 세계 제일의 우수한 말, 한글의 역사와 비밀’에서는 일본이 한글 사용을 탄압한 것이 아니라 보급을 확대해 한국인의 지식 수준이 올라갔다는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인터넷을 통해 만화 혐한류의 내용이 국내에 유포되면서 국내 네티즌의 일본에 대한 분노는 일본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번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네티즌들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일부 흥분한 네티즌들은 “우리가 이렇게까지 당해야 하나”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한 네티즌은 “한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야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반면 일부 네티즌들은 “일본인들도 저 만화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믿지 않을 것”이라며 대응할 필요성조차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한 네티즌은 “솔직히 우리들 중에서 이 만화에서 나온 내용들을 다 알고 있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생각해봐야 한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역사전문가는 “역사 교과서 왜곡에 못지않은 망발”이라며 “일본이 가장 주특기로 내세우는 만화라는 장르까지 혐한의 굴레를 씌운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광복 60주년, 일본의 반성은?
한일관계의 이상조짐은 비단 만화혐한류로 비롯된 민간 문화 차원을 떠나 각 분야에서 보여왔다. 특히 올해 초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의날 제정을 비롯해 잊을만 하면 떠오르는 일본 정계의 망언 역시 한일관계를 끝없이 냉각시키는 요인이다. 올해로 광복 60주년을 맞으면서 한국측은 일본의 반성을 변함없이 바랐고 일본은 마지못해 총리담화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패전기념일을 맞아 총리 담화를 각의에서 결정하기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 이래 10년 만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담화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모두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담화는 “두번 다시 우리나라가 전쟁의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는 결의를 새롭게 한다”고 강조하고 한국과 중국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함께 손잡고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담화에서 한국과 중국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자신의 야스쿠니신사참배 등을 둘러싸고 더욱 악화되고 있는 두 나라와의 관계개선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러나 관계악화의 단초가 된 자신의 야스쿠니 참배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담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유력인사들이 앞다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지도부가 언급한 ‘반성과 사과’가 어떤 진정성을 담고 있는지 의심을 받고 있다. 단순한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일본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고가 마코토 전 자민당 간사장과 히라누마 다케오 전 경제산업상 등 ‘다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47명이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참배했다. 대리인까지 포함하면 130명에 이른다.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와 가와사키 지로 전 운수상, 민주당 니시무라 신고 의원 등은 별도로 참배했다. 현직 각료 중에서는 오스지 히데히사 후생노동상이 참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인근에 있는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역을 방문, 꽃다발을 바쳤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은 각의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참배와 관련, “야스쿠니문제 때문에 한국, 중국 등과 다른 분야의 모든 관계가 나빠질 성격의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총리가 참배를 계속하더라도 관계개선은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뜻이 담긴 고이즈미 담화를 평가하면서도 “실천이 담보돼야 한다”고 8월 16일 일제히 촉구했다.
아사히 신문은 사설에서 총리가 식민지지배와 침략을 다시 사죄하고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을 제안한 것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사설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고 강조하고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하거나 부주의한 발언을 하면 담화는 순식간에 휴지조각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총리는 말의 무거움을 잊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담화가 발표된 이상 총리는 스스로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니치는 고이즈미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정신에 맞춰 정권을 운영했다면 역사인식에 관한 각료들의 망언을 제지했어야 하는데도 이를 묵인해 왔다고 지적하고 담화 발표 후에도 각료들의 문제발언을 방치하면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신용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일 정부, 진정한 반성있어야”
정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15일 담화와 관련, “일본 정부는 종전 6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깊이 새기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실천적 노력을 통해 양국간에 합의된 21세기의 미래지향적 우호협력관계 구축에 매진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이날 이규형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그동안 우리 정부는 올바른 역사인식의 확립이 한일관계의 근간이라는 입장하에 과거 일본의 지도자들이 수차에 걸쳐 행한 사죄와 반성이 이웃 국가의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진실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스스로의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일본 정부의 이러한 공식적인 사죄와 반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지도자들 중 진정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치 않을 수 없는 언동을 계속함으로써 일본의 식민지 침략의 희생을 당한 주변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상처와 분노를 안겨주어 왔다”고 지적했다.
멀고도 가까운 한일관계
현재 한일 양국은 지속적인 교류· 협력을 통해 동북아 안보는 물론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관계 개선과 성장을 이룬 게 사실이다. 광복 이후 한일관계의 첫 걸음은 1965년 6월 22일 당시 이동원 외무장관과 시이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상간에 체결된 한·일협정에서 시작됐다.
한·일협정에서 한국은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 확보라는 실리에 급급한 나머지 대일본 개인 청구권 등 '역사 부채' 청산의 명분과 기회를 정치논리로 희생시켰다는 비판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으로부터 얻어낸 무상 3억달러,유상 2억달러 ,상업차관 3억달러의 자금은 한국경제 건설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주춧돌 역할을 했고 이후 한·일양국의 경제·인적교류도 비약 적인 성장을 이뤄왔다. 실제로 1965년 한국의 대일본 수출과 수입은 각각 4,000만달러와 2억달러에 지나지 않았지만 2004년에는 수출 217억1천만달러,수입 461억4,4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 같은 비약적 경제 교류를 바탕으로 이제 일본은 중국, 미국에 이어 한국의 3번째 교역국으로,한 국도 미국, 중국에 이어 일본의 3번째 교역국으로 각각 급부상했다.
관광객 등 입국자 기준으로도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244만명,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157만명에 각각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965년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5095명 일본을 포함해 전세계로 나간 한국인이 고작 2만8,088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을 감안하면 실로 비약적인 발전인 셈이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야말로 일본사회 저변에 거대한 문화산업으로까지 성장한 '한류 열풍'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본은 냉전시기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을 형성해오면서 남북관계가 급격히 진전된 최근에도 그 ‘유효성’은 일정 부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괄목할 만한 성장과 결실에도 불구하고 한·일관 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과 진정으로 '가깝고도 가까운'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상존하고 있다. 이는 지난 수십년동안 되풀이돼온 일본 주요 인사들의 ‘식민 침탈’을 부인하는 역사인식과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의 우경화 등 때문이다.
올 상반기 한일관계는 지난 3월 16일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조례 통과에 이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였다. 특히 일본 집권 자민당이 자위군 보유와 국제평화 활동 참여를 명시한 헌법개정 초안 1차안을 마련하는 등 일본 사회의 우경화 움직임도 주변국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국이 버려야 할 것
그러나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일본측의 노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한국일보와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한일 국민의식 공동조사’에서 드러난 우리국민의 일본에 대한 신뢰도 수준은 9.2%인 것으로 나타났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양국의 미래에 대한 그 어떤 긍정적인 전망도 떠올리기 힘든 수치다. ‘21세기의 동반자’, ‘아시아 태평양 시대를 함께 할 파트너’ 등은 그저 구호로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의 한일관계는 이와 사뭇 다르다. 경제ㆍ인적 교류 규모로 따지면 일본은 결코 먼 나라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일본 수출과 수입은 각각 219억 달러와 461억 달러. 중국 미국에 이어 우리의 3번째 교역국이다. 해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3명 가운데 1명이 일본인이다. 실제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양 국민은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서로를 세 번째 중요한 국제적 파트너로 꼽았다. 7월 서울신문과 일본의 도쿄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우리국민의 절반 이상(53.5%)이 “일본이 한국을 위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지난 해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의 종군위안부 발언과 지난 4월 가수 조영남씨의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뷰 후의 역풍은 현재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발언 내용을 과학적ㆍ학문적으로 분석하거나, 인터뷰의 행간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아예 없었다. 단 하나, ‘국민정서법’만 통했다. 이 교수의 주장이 결코 일제강점의 미화가 아님을, 조씨의 발언이 독도 문제에 대처하는 일본의 영악함을 지적하고자 한 거친 표현이었음을 인정하는 이들도 거센 여론의 뭇매를 그저 지켜볼 도리 밖에 없었다.
우리의 국민정서법이 이처럼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몰염치 탓이다. 일본에게는 미래가 더 중요할 지라도, 한국민은 과거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고서는 현재도 미래도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서울신문과 도쿄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일본이 과거 한국 식민통치에 대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사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89.7%나 됐다.
국회 한일의원연맹 소속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피해와 가해의 역사, 툭하면 터져 나오는 극우정치인의 망언 등이 두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한 뒤 “그러나 우리도 이제는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열린우리당의 대표적 일본통 강창일 의원도 “일본은 일국이기주의 차원의 국가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재의 감정적인 반일은 우리에게 결코 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열린 시각으로 일본을 보는 것, 때로는 뜨거운 가슴을 녹일 만한 차가운 머리를 가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난 날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담보하는 제대로 된 처방전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