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에 FC 육성 아카데미 원장을 꿈꾼다
팀원들과 함께 공통된 꿈을 꾸고 하나 된 마음으로 전진
지난 90년대부터 오랜 시간 MBC 버라이어티의 전설이었던 이경규. MBC에서 6번이나 대상을 수상했던 이경규는 2007년부터 2009년 까지 그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슬럼프를 겪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언제부터인가 잊혀 갔고, 언론들은 ‘시대에 떨어지는 개그를 한다’, ‘이경규가 설 자리가 없다’라는 보도를 연이어 쏟아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KBS에서 다시 재기를 한 것이다. 슬럼프를 극복하려 노력했고 그의 열정과 노력이 그를 지금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해줬다. 이것은 현재는 정상에 있지만 최고의 자리까지 오는 길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연예계의 대부’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된 그는 앞으로 후배들을 인도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듬직한 소감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이며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다시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의 연륜을 충분히 인정하고 존경함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갓난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자주 넘어지고 다친다. 많이 넘어져 본 아기가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하고 잘 걸을 수 있다. 많이 넘어지지 않고는, 많은 역경을 경험하지 않고는 성장하기가 힘들다. 김원겸 FC는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목표와 꿈꾸는 미래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자신은 아직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우리 회사가 업계에서 튼튼한 자산 건전성과 안정성이 높은 회사로 인정받기까지는 먼저 정글을 헤쳐나가신 선배님들의 힘이 컸습니다. 저도 SM님을 비롯해 많은 선배님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 걸어가신 선배님들이 찍어 놓으신 발자국대로 길을 잘 쫓아가려고 합니다. 한 발 한 발 나가다 보면 제가 준비하고 있는 목표와 꿈꾸는 미래를 ING가 보여줄 것이라 자부합니다.”
김 FC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ING생명은 좋은 지도 방법과 선 후배간의 조직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현재 고등학생들에게 인생목표에 대한 강의를 기획, 준비중에 있습니다. 또한 리크루팅 활동을 통해 후배 FC 양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들어오는 후배들이 겪을 역경을 조금이나마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ING에 들어온 것이 기회이며 행운이라고 말하는 김 FC. 그에게는 10년 후에 FC육성 아카데미의 원장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 FC Job에 관한 소개 및 활동 영업스킬에 관한 강의를 하여 후배들을 키우고 싶다는 게 김 FC의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찍어야 할 발자국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언젠간 그가 걸어간 길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가려고 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열심히, 그리고 많은 발자국을 찍어야 할 이유이다.
트럭운전에서 깔끔한 슈트, 김 FC의 2막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을 통해 회사에 취업 했다는 김 FC. 그는 야간 전문대를 진학하여 일과 학업을 마쳤지만, 7년 이라는 사회생활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과감히 퇴사를 선택한 그는 노량진의 유명한 학원을 다니며 공무원 시험에 도전을 하였다. 그러나 고시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처음 한 도전이어서 부푼 마음을 안고 시작을 했으나 경제적인 부분과 잦은 스트레스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하여 낮에는 트럭운전을 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하려 마음을 먹었다. 낮에 일을 하고 밤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김 FC가 방탕한 생활을 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을까. 처음에 마음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공부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손을 놓아 버렸다. 작업복을 입고 출근해서 트럭운전을 하고 저녁때가 되면 동료들과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매일을 보냈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깔끔한 수트를 입고 회사를 다니는 정말 평범한 회사원. 이것이 그가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냉혹했다. 경제적으로 삶에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이랬던 그를 보다 못한 친구가 소개해준 ING생명. 지금의 SM인 친구가 이끌어 준 ING는 그에게 제 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김 FC가 일을 하게 된 지 2개월이 되었을 무렵 그는 어머니 친구 분을 소개로 만났다.
“이미 만 65세가 넘으셔서 본인의 보장은 준비를 못 하시는 연세였지만, 저에게 연금을 가입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새벽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건물 미화 일을 하시면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막내아들을 위해 자신이 죽으면 연금이라도 있어야 혼자 살 수 있지 않겠냐. 자신이 남겨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일할 수 있는 나이까지 본인이 납입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고객은 김 FC에게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가슴 깊이 느끼게 했으며, 그의 인생을 열심히 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는 보험금을 지급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보험에 대한 의미와 확신을 다시 한 번 새기는 때인 것 같고요. 어려운 상황일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이 보험이라는 확신이 제 고객들에게도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까지 더욱 열심히 고객을 만나고 일할 것이라는 김 FC의 말에서 그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었다.
고객의 삶에 편안함을 주는 맞춤 설계사
재무설계사는 고객의 재산을 보호하고, 고객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 기본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험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한번 고객은 평생 자신의 고객이라 생각하고 가족처럼 유대관계를 형성해야하는 것이 무엇보다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평생고객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일 수 있을 까.어렸을 때부터 김 FC는 강원도에 자신만의 펜션을 짓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자신의 가족을 비롯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것.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동료들과 선후배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그의 꿈을 응원하고 도와 줄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그는 지금도 힘차게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