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세광’, 그래도 초심 유지
“사랑에 빚진 자, 그 빚을 사회에 갚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터”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에폭시몰딩 전문기업인 ‘(주)세광 엔지니어링’의 고남철 대표는 기업을 지금의 궤도에 올리기까지 지난 9년간 여러 번의 고비를 만났다. 그는 이 고비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로 삼아 그때마다 뜨거운 열정을 불살랐다.
잘 나가던 전기 기술자, 빛을 밝히다“쉬운 말로 아시는 분은 다 아세요.”
에폭시 관련 업계에서 세광엔지니어링의 지명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날아 온 고남철 대표의 답이다. 이는 자신이 만드는 제품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고 대표의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에폭시몰딩 전문기업으로 마그네틱 코일과 리니어모터를 주력품으로 하는 이 회사에서 제작되는 제품의 특성은 수입(구입)되는 재료부터 철저하게 선별, 관리된다. 특히 에폭시 몰딩 후 발생할 수 있는 각기 다른 소재로 인한 팽창 계수를 철저히 관리하며, 생산을 위한 금형 재료 제작 방식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생산 과정 중에도 온도, 진공도 등을 체계화해 관리, 생산함으로써 고객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고 대표는 ‘이화전기공업’이라는 곳에서 18년간 근무한 전기 계통 기술자 출신이다. ‘이화전기공업’은 전원공급장치 생산기업으로는 국내에서 규모가 제일 큰 업체이다. 이 회사는 1980년대 국내 최초로 특수변압기인 에폭시몰드 변압기를 만들었는데, 고 대표가 이 사업부에서 과장이라는 낮은 직위로 공장장 직책을 맡을 정도로 기술력과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때였다. 그는 지금도 당시를 ‘후회 없는 직장생활’이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만든 제품들은 당시 서울·부산·대구 지하철에 납품될 정도로 중요했고 그만큼 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이화전기공업’과 ‘정원산전’의 공장장으로 근무하면서 에폭시 관련업계에서 고 대표의 기술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소개나 소문을 듣고 고 대표를 찾아와 이러저러한 아이템을 제작해 달라는 요청도 잦았다. 하지만 근무하던 회사 여건상 고사해야만 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던 중 ‘리모스’라는 업체에서 리니어모터를 제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일을 맡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워낙 간곡한 부탁에 그가 제작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제품이 전시회에 출품돼 히트를 쳤다. 마침 회사 일을 교회의 부목사와 상담하던 중에, 그런 의뢰가 들어오는 일을 직접 해보는 게 어떠냐는 부목사의 제의를 우연찮게 받고서 신앙으로 그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2002년 6월, 세광엔지니어링을 설립하게 된다. 회사 이름은 세광(世光). 다니던 교회의 이름이었다. “전기는 세상을 빛으로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 설립하는 회사의 사명으로 ‘세광’만큼 안성맞춤인 것이 없었다”고 고 대표는 설명한다.
아파트를 팔아 빚을 갚고 난 나머지 돈 7,000만 원과 퇴직금 2,000만 원을 합쳐 사업을 시작했다. 첫 해 매출은 1,0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듬해 3월, 통장 잔고를 보니 다음 달까지 쓰면 잔고가 없을 지경이었다. 30대에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어야했던 악몽이 다시금 재현될까 그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일감이 없어 다른 곳에서 부업거리를 얻어다 공장에서 작업하면서 인건비를 메워나갔다. 그렇게 혹독한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자 거래처에서 오더가 수주되고 다른 거래처들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2003년 3월에 바닥을 치고 서서히 성장세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 거래를 맺은 곳에서는 재주문과 주문량 증가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성장은 2007년 7월까지 이어졌다.
‘갑’과 ‘을’ 관계 떠나 함께 문제 해결하는 상생관계
하지만 세상은 고 대표를 더욱 강하게 키우고 싶었는지 또 한 번 시련 앞에 그를 내놓았다.거래처인 우진산전에 납품했던 제품에 크랙 하자가 생겼던 것.
“우리 제품은 망치로 부셔도 깨지지 않을 만큼 제품에 자신 있었는데 크랙(갈라짐)이 간다는 건 믿을 수 없었다. 자체 조사를 해보았더니 제품에 하자가 있음이 발견되었고 거래처에서는 관련 제품이 입고된 시점부터의 모든 제품을 리콜 하라는 조치가 내려왔다. 2년 전에 에폭시 납품 업체에서 환경문제로 수입이 안 되는 품목이 생겨서 다른 것으로 교체한다는 통보가 있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그들의 말을 믿고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어쨌든 리콜 조치 금액이 무려 13억 7,000만 원이었다.”
소규모 제조업체인 세광엔지니어링에서 감당하기에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계속 거래를 하려면 리콜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거래 포기를 해야 할 기로에 놓이게 된 고 대표는 “내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부분을 해결하겠다. 다만, 구매 담당자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해 달라. 그들은 나를 믿고 구매한 일 밖에 없다”면서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로 결정했다. 자살 충동까지 들 정도로 혹독한 시간이었지만 고 대표는 ‘신이 고난을 주실 때는 이겨낼 지혜와 힘도 주시리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 대표의 이러한 책임감이 거래처에 긍정적으로 보였던지 세광엔지니어링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그간 납품한 전체 품목이 아닌 실제로 하자가 있는 품목에 대해서만 리콜 조치하는 걸로 결정이 나서 리콜 금액은 4억 원으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단기간에 A/S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우진산전에서 맡기로 했다.
냉정하게 따지면 세광과 우진산전은 하청을 주고받는 갑과 을의 관계다. 하지만 상생의 모습을 보이며 문제를 해결해나간 두 업체는 지금도 끈끈한 거래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다.
여전히 세광에는 여기저기서 새로운 아이템 제작 의뢰가 들어온다. 하지만 고 대표는 선뜻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규모가 커서 욕심을 낼 법도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에게 지금 이 시점은 산을 오르다 잠깐 숨을 고르면서 다시 올라갈 준비를 하는 단계다.
고 대표의 경영방침은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초심을 놓쳤기 때문이란다. 이 말에는 감사하는 마음, 성실하려는 마음, 윤리적인 마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모두 담겨있다.
“저희 회사가 지금보다 더 잘 됐을 때도 지금과 같은 초심을 잃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그리고 이 회사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커 온 만큼 사회에 공헌하고 그 도움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신을 ‘사랑에 빚진 자’라고 표현한 그는 교인들의 기도, 가족들의 희생, 지인들의 물심양면 배려, 회사가 성장하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의 사랑을 빚으로 꼽으며 마지막 말을 인사로 남겼다. “사랑에 빚진 자로서 그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