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울리는 존 레논의 꿈, 사랑, 음악이야기

2011-07-06     신혜영 기자

강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 감성음악극 <존레논을 위하여>


60년대 전 세계를 열광시킨 비틀즈의 한 멤버이자 또 하나의 음악성을 지닌 가수로 기억되는 존 레논의 음악이 연극적 형식을 통해서 보다 강한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다.

최근에 불어 닥친 옛 노래들의 리메이크 붐은 빠른 템포와 속된 가사들, 그리고 일정한 패턴의 단순한 리듬으로만 구성된 현재의 음악들과는 다른 다소 아날로그적이지만 속 깊은 가사들과 절절히 전해져 오는 음성, 그리고 높은 음악성을 지닌 옛 노래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드라마 팩토리’의 감성음악극 <존 레논을 위하여>이 오는 7월14일(목)~31일(일)까지 게릴라극장에서 열린다.

<존 레논을 위하여>는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추억을 되새긴다. 존 레논과 비틀즈의 주옥같은 명곡과 더불어 영혼을 울리는 존 레논의 꿈, 사랑, 그리고 음악이야기를 잔잔한 감동과 함께 느낄 수 있다.

극중 존 레논의 음악은 남성이 아닌 여성 보컬인 최윤희의 감성 있는 목소리로 전달되어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지난 2010년 공연을 통해 많은 호평을 받아 앵콜 공연까지 진행된 <존 레논을 위하여>는 작품성과 공연성을 검증 받은 이 작품은 2011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의 공식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  예약 및 문의 : 02-763-1268


사랑, 평화, 혁명을 꿈꾸며 세기를 가로지른 아티스트
인간으로 태어나 신화가 된 팝 아티스트

영국 리버풀 노동 계급의 결손가정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음악에 몰두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정치적인 이념과 사상을 반영하기도 했던 존 레논은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가사에 선율이 아름다운 곡들로 그 작곡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은 로큰롤 음악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실력에 안주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때문에 그는 비틀즈에서의 엄청난 업적에 비해 솔로로서의 활동은 비교적 간과되기도 했다.
 
비틀즈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이미 상업주의의 최고봉에 올라있었을 당시에도 그의 반전주의적이고 기존 권위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했으며, 66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비틀즈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한때 기독교도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비틀즈 활동 중에도 솔로로서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존 레논은 68년, 그의 연인이자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인 오노 요코(Ono Yoco)와 실험적인 사운드로 이루어진 [Unfinished Music, No. 1: Two Virgins]를 발표했다. 두 사람의 누드를 실은 앨범 자켓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이후 그는 요코와 결혼하고 그들의 신혼 여행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반전시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받은 MBE 훈장을 반환하고 영국과 미국의 비아프라(Biafra), 베트남 참전에 항거한 존은 요코와 함께 12개 도시를 다니면서 'War Is Over! (If You Want I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화를 위한 캠페인을 지속한다
 
이후 마리화나 소지죄로 미국 영주권이 거부되고 74년 오노와 이혼하게 되면서 LA로 거주지를 옮긴 레논은 소위 'lost weekend'라 불린 1년 반 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도 존의 음악 작업은 계속되었고, 74년 'Whatever Gets You Through the Night'라는 엘튼 존(Elton John)과 공동 작업한 곡으로 히트를 기록한 [Walls and Bridges]를 발매한 후, 그는 다시 오노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가졌다. 1980년 오랜 침묵을 깨고 게펜 레코드사(Geffen Records)와 계약을 맺은 그는 [Double Fantasy]를 발매해 호평을 얻고 앨범과 싱글 '(Just Like) Starting Over'를 나란히 차트에 올린다. 그러나 새로운 활동으로 재개한 그의 창창한 앞날은 80년 12월8일 암살자 마크 데이비드 채프만(Mark David Chapman)의 총격에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비록 비틀즈 이후 존 레논의 음악은 상업적 가치와 예술적인 완성도 면에서 그다지 뛰어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록 스타로 자리매김한 70년 초 혁명적인 활동가로 정치시위에서 TV 토크쇼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사회사상을 반영함으로써 음악과 삶에 있어 극단을 취했던 그는, 사후 약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