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업은 정성과 신뢰가 생명입니다”

신뢰와 정성을 팔아 조국애 실천하는 거상을 만나다

2011-06-13     김정현 기자

역설(逆說)의 묘미는 서로 모순된 의미를 양립시킴으로써 본래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데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 뜨거운 얼음,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을 나는 돛단배. 이 명징한 역설들에는 언어의 그릇에 다 담을 수 없는 명랑하고 발랄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흘러넘치고 있다. 재향군인회상조회 역시 이러한 역설의 매력을 온전히 담고 있는 조직이다. 영리활동에 연연하지 않는 회사, 이 심상치 않은 역설을 온전히 이끌고 있는 한재룡 대표의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빛나는 역설의 증언자들

얼마 전 교육방송에 출연한 여성 강사가 “남자들이 군대에서 배워오는 것은 사람 죽이는 기술이다”라는 실언을 뱉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강조하기 위해 비유한 것일 뿐, 남성이나 군대를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식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그 강사의 이야기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군대는 살상을 전제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다만 군대라는 조직 그리고 군인이라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역설을 간과한 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뛰어난 성능의 무기와 잘 훈련된 군인 그리고 투철한 애국심은 막강한 국력의 근간이다. 이를 단지 살상의 매개이자 수단으로만 본다면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다. 하지만 이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의 수호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비로소 역설의 묘미가 피어오른다. 살상과 평화 이 양극단의 가치가 강력한 역설을 빚어내며, 그것은 고스란히 안도감과 자랑스러움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때 조국의 평화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내놨던 사람들. 그들은 낡았지만 빛나는 군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교통정리를 하고, 불행한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구조 활동에 매달린다.
그들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봉사활동’이라는 단순한 행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때론 살상의 매개라는 오해와 모욕을 들을지언정, 조국과 국민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던 그들의 성실함과 우직함이 빚어내는 역설 덕분이다.

물 샐 틈 없는 그물이 건져 올린 ‘신뢰’

올해로 창립 5주년을 맞이한 재향군인회상조회의 성과는 실로 경이롭다. 현재까지 확보한 고객만 자그마치 20만 명. 이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상조업 관련 개정법률 시행 후 각종 상조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이들 업체들의 불공정 행위와 예탁금 운영에 관련된 불투명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재향군인회 상조회(이하 상조회)는 그리 길지 않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마치 강철로 만든 깃발처럼 단단하고 우직하게 업계를 지키고 있다.
“국민 대다수와 혜택을 나눈다는 공익 및 사회공헌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따라서 저희가 하는 활동은 영업행위라기보다는 이웃끼리 서로 도왔던 품앗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요. 이는 박세환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장님이 펼치고 있는 친목, 애국, 명예단체로서의 향군의 뜻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한재룡 대표는 상조회가 특별한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업계에서 공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고객예탁금을 통한 펀드, 부동산 투자도 일체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제1금융권에 예치해 언제든 환급해 줄 수 있는 만반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이 상조회가 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는 결코 만만치 않다. 일체의 영업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나날이 늘어나는 자산과 고객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를 테면 또 하나의 역설이자 반전인 셈이다.
매년 외부감사와 향군감사 그리고 공인회계사 감사를 받아 회계의 투명성을 검증하고 있다. 그야말로 물 샐 틈 없는 그물망 시스템을 구축하고 오로지 고객의 서비스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렇듯 촘촘한 그물에 가득 담긴 것은 고객들의 신뢰였다. 포장과 허언으로 가득한 이 불신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목말라했던 것은 다름 아닌 우직하고 단단한 신뢰였던 셈이다. 상조회는 마치 훈련소를 갓 퇴소한 신병처럼 원칙과 약속을 절도 있게 지켰던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성과로 드러나게 됐다.

수익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 회사

탄생과 죽음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겪는 가장 경건한 순간이다. 전자는 삶에 대한 설렘이 담겼다는 점에서 기쁘고 경이로운 일이지만, 후자는 기약 없는 이별의 순간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슬픈 일이다.“장례는 한 사람의 생애를 마무리 하는 일입니다. 당사자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의 애달픔을 달래줘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여기에 맹목적인 수익성을 추구한다는 건 어쩐지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상조회가 가진 조직 특유의 공익성 덕분에 이러한 서글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재무구조의 안정성, 투명한 회계관리, 전국 의전 직영화가 ‘돈벌이’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재향군인회 조직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고객이 원하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전문성을 갖춘 의전팀장들을 출동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한 대표는 관련 법률 개정 이후 대기업을 비롯한 금융권까지 상조업에 나서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죽음을 상품화하거나 사업화하는 것이 못내 마음이 편치 않다는 뜻이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상조업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품앗이 정신이라는 정도(正道)를 지킨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구도 속에서 이를 지킨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죠.”
한 대표의 진심어린 한숨은 상조회가 받고 있는 고객들의 무한한 신뢰와 업계 내에서의 지위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핵심이기도 했다.
이에 그는 상조업에 관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제재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상조업의 무분별한 상업화를 막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이자, 슬픔에 젖은 유족에 대한 또 다른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업과 단체 그리고 개인들은 그 규모와 분야에 따라 각자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합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도 마찬가지지요. 가령 대기업이 자신들의 명성에 의존해 상조업을 계열사로 창업했을 경우 그 명성에 부합하는 수익을 내려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기업들이 상조업 창업에 기울일 열정과 자본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더욱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에는 애틋함마저 배어 있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상, 돈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하고 가족과도 등을 돌리는 참으로 삭막한 세상이지만, 생애의 끝자락이라 할 수 있는 장례만큼은 투명하고 경건하게 치러졌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라고 했다.

충무공의 칼과 목민관의 가슴 사이에서

재향군인회상조회를 이끌고 있는 한재룡 대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목민관 정약용 선생’의 리더십을 동시에 갖춘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날카롭게 빛나는 칼을 뽑아 든 채 상조회의 돌격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칼끝이 향하고 있는 곳은 적진이 아니다.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놓은 것도 누군가를 베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충무공의 정신이자 의지의 표상인 것이다. 따라서 이는 무기가 아니라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강철 깃발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의 가슴 속에는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가 비석의 글귀처럼 새겨져 있다. 청렴과 절검을 지킬 것이며, 명예와 부를 탐내지 아니하고, 백성(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의 정령을 두루 알린다는 굳은 신념 말이다.

“수익을 추구하지 않다고 해서 경영활동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치밀하고 세심한 경영철학을 필요로 하지요. 이런 점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조국애와 목민관 정약용 선생의 애민(愛民)정신은 저 자신과 상조회를 지탱해주는 시금석이 되어 줍니다.”
한 대표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업활동에는 그토록 무심하건만, 교통방송과 함께 지난 3월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효(孝) 캠페인’에는 유난히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삶의 끝을 다루는 일을 하다보니,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유심히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예로부터 효 사상은 충과 함께 가장 중요시 되어 왔던 덕목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많이 희박해진 것이 사실이죠. 이에 허물어져 가는 가정과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정이 바로 서면 범죄가 줄어들고, 그만큼 사회는 건강하고 튼튼해질 테니까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 기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한 대표가 가진 ‘장사꾼’의 기질을 찾아내고 말았다. 단, 상품을 팔아 돈을 버는 세속의 장사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국애로 엮어낸 그물로 국민의 신뢰를 거두는 사람, 그 신뢰를 팔아 다시 조국에 바치고 있었다.
신뢰와 정성을 파는 거상(巨商) 한재룡 대표. 인사를 대신하며 덧붙인 그의 마지막 이야기가 돌아오는 길, 기자의 귓가에 내내 맴돌고 있었다.
“상조업은 정성과 신뢰를 팔아 상생의 길을 추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