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받고 긍지가 높은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그의 머릿속에는 학생을 위한 아이디어 공장이 돌아간다
황량한 농촌, 그러나 자연은 살아있다
마치 한바탕 화재가 휩쓸고 지나간 듯하다. 아이들이 뛰놀고 있어야 할 들녘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사람들의 웃음으로 넘쳐나야 할 산자락에는 허리 굽은 약초꾼의 한숨소리가 흐를 뿐이다. 하지만 ‘자연’은 분명 살아있다. 또한 그 일부인 사람들을 어떻게든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귀농·귀촌의 조짐이 그러하고, 각종 생태학습과 체험학습을 중심으로 한 농촌방문의 활기가 그 증거다. 이는 자연의 경이로운 재생능력이라 풀이할 수밖에 없다.
담양고등학교(http://www.damyang.hs.kr/김윤선 교장/이하 담양고)가 실시하고 있는 ‘농어촌 지역중심고 육성사업’ 역시 그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담양고는 학생들과 학부모가 스스로 돌아오는 농촌학교, 이른바 ‘무지개 학교사업’을 통해 ‘사랑과 사람이 넘치는 농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예전 이 지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면 인근 대도시인 광주로 진학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학력이 낮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만 담양고로 진학했죠. 따라서 나날이 학생 수가 감소하고 전반적인 학력 저하현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담양고가 농어촌 지역중심 고등학교로 지정된 후부터 상황이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담양지역을 중심으로 인재양성 붐이 일었다. 전라남도교육청은 물론이고 담양군에서도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답지했고, 이를 토대로 본격적인 ‘명문고 인재육성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됐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신입생들의 계절인 3월, 담양고 주변은 학생들로 북적이게 됐다. 그야말로 궂은비가 내린 뒤 활짝 핀 무지개처럼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고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담양군이 국어, 영어, 수학 3개 영역에서 전국 수능 30위권 안에 드는데도 일조를 했다.
이를 두고 교육계에서는 담양고가 신뢰받는 공교육의 역할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의 기숙형 고등학교에서는 담양고의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끊임없이 문의전화를 걸어오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발적, 자기주도적 학습의 비밀
이른바 ‘담양고 신화’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김윤선 교장은 그 중심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개별 처방식 맞춤형 학습프로그램’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개인별 적성검사와 학력을 진단해 능력에 맞는 맞춤학습을 실시하는 특별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심화반 학생들이 자기주도형 학습을 하다가 의문사항이 있으면 ‘쪽지’로 교사에게 질문을 하고, 이를 접수한 교사는 1대 1 멘토링 수업을 진행하는 식이다.한편 핵심과목이라 할 수 있는 국어, 영어, 수학 등이 부진한 학생들에게는 수준별 이동수업과 학습계약제를 통한 수능 대비 맞춤형 선택학습 등을 마련해 학생들이 한결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한 EBS 수능방송을 수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메가스터디와 사이버 학습을 통한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 집중교육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스마트 학습은 담양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24시간 내내 전산실을 개방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무조건 학습을 강요한다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 스스로가 학습에 대해 얼마나 큰 열정을 갖췄는가가 중요한 법이지요. 이러한 동기부여를 위해 진행하고 있는 학습플래너 ‘나의 꿈 나의 미래’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김 교장이 언급한 ‘나의 꿈 나의 미래’는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스스로 설계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가야하는지 기록한 다음, 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연간·월간· 주간·일일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목표를 선택하고 계획을 만드는 전 과정은 해당 학생의 몫이다.
이 외에도 담양고에는 학생들의 학습욕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활성화시켜주는 깨알같은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작성했던 기록물이나 수상, 또는 실적을 모을 수 있는 ‘학교생활 이력철’을 나누어 주어 관리하도록 하며, 독서 활용교재인 ‘희망의 뜨락’, 수능 각 영역별 출제 경향 및 공부비법을 소개한 ‘그래 난 할 수 있어!’ 등을 자체 개발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소문을 들은 타 학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담양고의 성공모델이 담양지역을 넘어 전국 교육계의 신화로 옮아가고 있는 셈이다.
“학생 그리고 교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사 자질향상 프로그램이 탄생했고, 유명강사 초청강연, 각종 동아리 활동 활성화, 우수 대학 캠퍼스 탐방, 해외 문화 체험활동 등 여러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지요.”
‘아이디어 뱅크’ 김 교장의 머릿속에는 담양고를 위한 ‘프로그램 공장’이 하루 24시간 가동되고 있는 중이다. 그 원동력은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그 성과들은 고스란히 우리 공교육의 내실화로 이어지고 있다.
멀지만 신명나는 길 위에서
“신뢰받고 긍지가 높은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세웠지요. 이는 몇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교사는 열정으로 가르치고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고 학생들은 간절하게 꿈꾸고 뜨겁게 도전해야 하지요”어쩌면 긴 여정이 될 수 있는 그 길에 대해 김 교장은 다음과 같은 지름길을 제시했다. 학교구성원간의 ‘신뢰’가 그 길을 힘들고 지루하게 하지 않게 이끌 것이고, 원만하고 폭넓은 ‘인간관계’가 그 대열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 줄 것이며, ‘열정’이 추위와 비바람으로부터 대열을 따뜻하게 보호해 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후 본 기자는 바이런의 시 구절을 속으로 또 한 번 읊조렸다. ‘자연이야 말로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폭풍이 지나간 들판에도 꽃이 피고, 불이 탄 자리에도 풀이 돋는다’ 그리고 이에 몇 구절을 더 보태어 본다.
“그 사랑과 생명을 논함에 있어 사람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곧 희망이고 기적이다. 사람 역시 저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한 부분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