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정보 분야 전문 인력 양성하는 산업역군의 메카

산학연계 맞춤형 인력양성사업으로 특성화고의 활로를 찾다

2011-06-03     취재_공동취재단

일제강점과 동족상잔의 비극 직후 이 땅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조차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황폐해졌다. 그 폐허 위에 건물을 짓고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이제는 그 감흥조차 무색해져 버린 ‘산업역군’, 그들은 전쟁터 같은 국내외의 산업현장에서 청춘은 물론 목숨마저 초개와 같이 버리며 활약했었다. 따라서 우리의 현대사의 주인공은 몇몇 정치인들이 아니라 산업역군으로 불렸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흘린 피와 땀 그리고 눈물 덕분에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 섰으며 IT강국 대한민국의 풍요로운 국민으로 살 수 있게 됐다.

‘산학연계 맞춤형 인력양성사업’에서 길을 묻다

이렇듯 신산스럽기 이를 데 없었던 현대사를 관통하는 동안 산업역군을 양성하고 현장으로 배치하는 사관학교가 있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로 통칭되던 공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들이 바로 그곳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역시 상업고등학교 출신이다. 이렇듯 실업계 고등학교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가히 신화에 가까운 것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각종 특성화된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가워졌다. 물론 산업현장과 단단하게 묶여 있던 연대의 끈도 느슨해졌고, 전문 산업인력 양성이라는 본연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공부 못하는 골칫덩이 학생들의 집단’ 정도로 비하하는 인식도 생겨났다. 진리의 상아탑이자 학문의 전당이었던 대학이 과거 실업계 고등학교가 맡았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대학들과 너 나 할 것 없이 일단 진학하고 보자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 탓에 범국민적 평균학력이 꽤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기이한 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산업현장에서는 인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고, 사회에는 고학력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최근 ‘산학연계 맞춤형 인력양성사업’ 대상 학교로 선정돼 특성화계 고등학교 부활의 서막을 올린 경주정보고등학교(김도현 교장/이하 경주정보고/http://www.internet.hs.kr)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이 교육 사업은 중소기업청이 주관하여 정부와 기업 그리고 학교가 서로 힘을 합쳐 특성화고 3학년생 및 대학 졸업생을 기업에서 원하는 인력으로 교육시키고, 졸업과 동시에 협약기업에 취직할 수 있도록 연계시키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준 높은 교육시스템의 3박자

“경주정보고는 6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상업·정보 분야의 교육기관입니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에서의 경쟁력은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김도현 교장의 소개말에서는 은근한 긍지와 자부심이 배어나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반 특성화고로서는 다들 힘들다고 하는 정보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것을 비롯해 각종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많은 저작권을 확보하고 있다. 그 중 ‘에듀시스(EduSys)’라는 프로그램은 개발완료 시점부터 각 방송사 등 각종 언론에서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것은 학내 창업동아리에서 상용화 과정을 거쳐 판매개시 3개월여 만에 1,0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을 올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교육계와 산업계는 이러한 성과에 대해 ‘경주정보고만의 수준 높은 교육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김 교장은 경주정보고가 갖추고 있는 ‘3박자 교육시스템’에 대해 언급했다.

“먼저 기능(올림픽)반 운영을 통해 개발 및 기능인력 보급과 수준 향상을 도모하고 우수한 기능인을 발굴하여 표창함으로써 학생들의 사기진작과 학습의욕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진로탐색의 날’ 등 학생 스스로 진로에 대해 설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넓혀 꿈이 곧 현실로 이어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주고 있기도 하지요. 끝으로는 각종 교내 기능경연의 장을 활성화시켜 다양한 취업관련 기능향상과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김 교장의 짤막한 언급과는 달리 이들 3박자 시스템이 빚어낸 성과는 실로 혀를 내두를 만큼 놀라웠다.
지난해 한국정보올림피아드 공모부분에서 경주정보고가 경북본선 1위로 예선대회를 통과하는 기염을 토해냈고, 곧이어 전국무대에서 입상할 만큼 그 저력을 실제 입증해내기도 했다. 현재 경주정보고에서는 축적된 실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에 따른 기능올림픽 직종인 정보기술직종, 웹디자인 직종, 그래픽디자인 직종, 게임개발 직종 등 4개 분야를 준비하고 있다. 진로탐색 및 설정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 역시 내실 있고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교장이 언급한 진로탐색의 날 운영을 비롯해 취업을 희망하는 재학생과 산업체에 진출한 졸업생을 연결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졸업생 멘토링제’,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해 진로 선택이나 인생의 좌표 설정에 대한 경험이나 조언을 듣는 ‘Yes Leaders 기업가 정신 특강’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시기마다 교내에서 실시하는 각종 경진대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14일 개최된 ‘상업정보 경진대회’는 정보기술 및 상업교육 관련 7종목을 두고 역량 있는 학생들의 열정이 뜨겁게 타올랐다는 후문이다. 6월17일 개최 예정인 ‘진로설정 포트폴리오 경진대회’는 취업과 창업 그리고 진학에 이르기까지 학생 자신의 능력 및 경력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현재 상황에 대한 포트폴리오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경쟁력 향상에 필요한 포트폴리오를 창의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매년 실시되는 특색 있는 프로그램이기도하다.
경주정보고가 가진 저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Be the CEOs 교내 대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창업에 이르기까지의 프로세스 전 과정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창업에 대한 이미지 제고 및 기업 경영마인드를 함양시키는 게 그 목적이다.

21세기형 실사구시로 선진 대한민국 이룩

경주정보고를 이끌고 있는 김도현 교장은 조선시대 철학사상의 토대가 된 실사구시의 학문태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실학자들의 공로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발전된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었다.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게 상업·정보계열 산학연계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에 선정됐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존재감이 거의 사라진 고졸 사무기능요원을 각 산업체에 다시 구인을 희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각종 특성화 교육프로그램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와 우리 학생들이 흘리고 있는 이 땀이 결실을 보게 된다면 고비용 저효율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사무기능직 구인 인력 분야에 새바람이 일으킬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 교장은 정성스럽게 빚은 떡을 내놓듯 경주정보고의 오늘과 내일을 하나하나 펼쳐 보였다. 각양각색으로 먹음직스러운 향기와 빛을 내고 있는 그 고귀한 떡들을 선택할지 말지는 순전히 우리 사회와 산업계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