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수사반장 최중락
2005-08-02 대담/김태현 정경부장
40년 강력사건을 담당한 수사경찰의 산증인으로 범죄자들 사이에서 ‘큰형님’...
경찰청이 최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일선 수사경찰의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작년 한 지방경찰청의 경우 정기인사에서 수사요원이 200명 전출했지만 새롭게 지원한 사람은 108명에 그쳤다. 충북의 한 경찰서는 15명이 전출한 반면 지원자는 단 한 명에 그쳤고, 수사부서에 배치된 뒤에도 끊임없이 타부서 전출을 희망하는 실정이다. 이는 과중한 업무와 잦은 위험노출, 그리고 낮은 승진율은 현장의 수사형사들이 떠나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경찰 집계에 따르면 전체 수사경찰관 가운데 5년 미만 경력자가 59%에 이른다. 그만큼 이동이 잦다는 것으로 당연히 수 십 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들을 찾아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이는 곧바로 민생치안과 직결된다. 베테랑들의 오랜 수사경험이 그대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TV드라마‘수사반장’ 실제모델
이와 같은 상황에서 수사 베테랑인 최중락 전 총경은 현재도 끊임없이 수사 일선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기에 주목을 끈다. TV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이자 보안업체 에스원 고문인 최씨는 지금도 '현역' 형사다. 그는 40년 가까이 강력사건을 담당해와 한국 수사경찰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그는 범죄자들에게는 악명이 높았으며, 동시에 범죄자들에게 염라대왕과 동시에 '큰형님'으로 통하기도 했던 수사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또한 서울 중부서 형사계 근무를 시작으로 서울지방경찰청 강력계장과 형사과장 등을 거치면서 1,300여명의 강력범을 체포한 베테랑으로, 1990년 퇴직한 그는 퇴직 닷새 만에 '무급' 경찰청 수사연구관으로 위촉됐다. 최씨는 요즘에도 밤새 발생한 전국 강력 사건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후배 경찰관 수사에 각별한 조언
지난해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등 유난히도 강력범죄가 많이 발생했다. 그만큼 '우리의 영원한 수사반장'인 최중락씨는 잇따라 발생했던 살인사건 해결을 돕기 위해 부단히 발로 뛰었다. 그의 일성은 “범인을 빨리 잡아야 할텐데?”라는 걱정이었다. 작년 부천 수사본부에 들러 현장을 둘러본 최씨는 "원한이나 금전문제 등의 살해동기가 있으면 범인검거가 쉬울텐데, 이렇게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는 수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며 "설사범인이 자백하더라도 아무런 증거자료가 없다는 측면에서 범죄혐의를 입증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걱정을 덧붙였었다. 또한 그는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은 성폭행을 한 흔적 등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면식범의 소행"이라며 "범인이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모방한 것같다"며 화성연쇄 살인사건을 언급했다. 지난 87년 당시 인천청 수사과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경기도로 파견돼 화성 수사본부장으로 4개월간 수사현장을 지휘, 10개의 살인사건 중 한 건의 범인을 붙잡기도 했다. 이처럼 최씨는 풀기 힘든 범죄에 자신의 수사 경험을 바탕삼아 수사 방향, 법률적 문제 등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관계자들에게 조언하고 있다.
대도 조세형과의 남다른 인연
그는 대도 조세형씨와도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 최씨가 조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시경 강력계에서 경사로 근무하던 시절 당시 절도 초범으로 체포된 16세의 조씨를 신문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최씨는 조씨에게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소년원으로 보냈으나 조씨는 결국 그 후에도 19차례나 더 드나들며 전문 절도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최씨는 회고했다.
살아있는 전설에서 범죄 연구관까지
최씨는 지난 1950년 순경으로 경찰관 생활을 시작, 90년 경찰청형사지도관(총경)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40년 동안 수사 외길을 걸었다. 퇴직 후 보안전문회사에서 범죄예방 업무와 교육을 담당한지도 벌써 15년째가 넘는다. 고희를 넘은 나이지만 요즘도 아침6시50분이면 경찰청 5층 형사당직실에 들러 야간사건을 물어본 뒤 1층 수사연구관실로 내려온다. 명예 수사연구관으로 각종 강력사건에 대한 후배들의 자문에 응하고 있는 최씨는 "40년간 수사경찰만해서 그런지 요즘도 간밤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가 제일 궁금하다"고 말했다. 현역시절 강력범죄자를 870명이나 검거해 포도왕을 3번이나 수상했던 그는 70~80년대 인기를 끌었던 MBC 드라마 수사반장(최불암분)의 실제 모델이었다. 강력범죄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지 가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최씨는 "지금처럼 범죄가 많이 일어날수록 경찰을 질타하기보다는 경찰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사경찰의 위기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단지 최근 훨씬 강도가 심해졌을 뿐이다. 처우개선과 새로운 제도에 대한 고민도 논의된 지 오래다. 수사경과제 등 일부 제도는 이미 시행중이다. 위험에 항상 노출되기 때문에 총기를 대체할 새로운 자위수단에 대한 고민도 새롭게 고민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사형사들의 사기진작책이라는 게 중론이다. 수사형사라고 현실적으로 돈이나, 근무여건을 무조건 파격적으로 바꿀 순 없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형사들 사기를 높여주는 것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할 것이다.
최중락 인터뷰
▲형사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10년전만 해도 형사가 선호 대상이었다. 하려는 사람이 많아 시험을 봐서 통과되어야 형사가 될 수 있었다. 경찰관 하면 형사였다. 사회 정의를 세운다는 측면에서 꽤 매력이 있었고, 보람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한마디로 3D 업종이 되었다. 업무도 힘든 데다가 국민도 경찰을 불신하며, 언론도 경찰이 잘못한 것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형사라는 직업은 사기를 먹고 사는 것인 만큼 힘이 날 리가 없다.
▲형사를 기피하는 젊은이에 대해
젊은 경찰들이 수사나 형사분야 업무를 기피하는 현상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세상에 위험이 따르지 않는 일이 없다. 편한 것만 생각하는 사고는 버려야 한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의는 반드시 불의를 이긴다는 철학을 갖고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이 아쉽다.
▲요즘의 사건 경향에 대해
"1960년대에는 연간 서울 지역 미제사건이 한두 건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10~20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범죄 수법이 지능화하면서 증거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강도나 성폭행 등에 그치지 않고 살인까지 서슴없이 저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강력 사건 발생 건수가 해마다 비슷한 대신, 흉악성과 치밀성은 크게 심화되고 있다."
▲무동기 범죄 확산 대책방안
"범죄자 개개인의 정서와 감정에서 우발적으로 나오는 범죄를 막을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게 현실이다. 유교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되살리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 아닐까 싶다. 재소자 인권 보장에만 주력해왔던 교정 당국도 앞으로는 재소자 인성 교육에 힘써야 한다."
▲사형제에 대한 견해를 말해달라.
"나는 사형제에 찬성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본다면 살인범을 살려두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태도는
"검거한 1,300여명의 강력범들 중 7명을 사형대로 보냈다. 죽음을 앞두고 보이는 태도는 사형수마다 다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끝까지 자신이 한 일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김태화와 조경수가 그랬다. 이들은 평범한 여성들을 죽여놓고도 부자를 없앰으로써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경찰 후배들에게 한마디
과중한 업무,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 그리고 미궁에 빠진 사건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수사경찰관은 사회 안전망의 근간이다. 자부심을 갖고 스트레스를 잘 다스려야 한다. 수사가 벽에 부딪혔을 때는 자포자기하지 말고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 2005년부터 수사 인력을 독립시키는 수사경과제가 시행되면 업무 여건도 크게 나아질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