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초대형 지진을 아십니까”

국내 최고 인재(人才)들과 함께 인재(人災)에 맞서는 이 사람

2011-05-16     김정현 기자

지난 3월 발생한 일본 동북부 대지진에 세계가 경악했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복구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간 일본이 제2위의 경제대국이자 매뉴얼의 왕국으로 불렸던 터라 그 충격은 더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규모 9.0의 천재지변 후 이어진 일련의 인재(人災)들은 그들이 자랑했던 매뉴얼 탓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매뉴얼은 너무나 견고했으나 정작 그것을 컨트롤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인재(人才), 즉 사람의 판단과 관리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설비나 기술보다도 오직 사람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을 새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매년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초대형 지진’

“사고 대처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죠. 애초부터 대처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의미입니다.”
지난 3월7일 공식 취임한 (사)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이하 협회) 유성진 회장은 활기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취임 직후 발생한 일본 동북부 대지진 탓에 눈 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국내 건축물의 지진 대비 현황에 대한 문의가 폭증하고 있는 탓이다. 한편 협회 본연의 업무라 할 수 있는 건설재해예방 관련 연구 및 현장 활동도 부쩍 분주해졌다.

협회는 1985년 설립된 이래 인간존중 이념을 바탕으로 건설재해예방에 앞장 서 온 국가대표격의 건설안전전문기관이다. 협회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건설재해예방에 관한 기술 지도를 비롯해 건축물의 구조 및 재해 진단, 교량·터널 등의 안전진단, 재건축과 리모델링 진단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협회의 활동범위는 사실상 건설안전 전 분야에 대한 기술지원 서비스 제공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번 대지진으로 큰 희생자가 발생한 점은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지진의 안전지대라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수천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로 인한 죽음입니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9만8,645명이 재해를 입었다. 이 중에서 사망자만도 2,200명에 달한다. 매년 초대형 지진을 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안전대책이 강구되었더라면 상당수의 부상자와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유 회장이 스스로의 가슴을 치며 한탄하기에 충분한 일이다.
“아직도 일부 발주청의 경우에는 안전관리 조직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체계적인 지도 및 관리감독이 이루어지기 힘들지요. 특히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도 부과되지 않아 재해예방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유 회장은 발주자가 참여하는 안전관리체계 강화 및 활성화를 강조했다. 이 같은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되면 당연히 사전 안전성 검토가 강화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안전의식이 변화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산절감이나 효율적 건설분야가 아닌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따라서 협회는 지난 몇 년에 걸쳐 ‘건설업안전관리체계구축 연구자문회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조사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와 함께 건설현장에 건설안전전문가를 의무적으로 배치하게 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지만 유 회장은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의 임기 내에 반드시 성사시켜 낼 것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가장 큰 자랑거리는 바로 사람입니다”

“최근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국내 지진대비 분야 역시 그 출발점은 안전진단이어야 합니다. 내진대비를 갖춘 건축물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상황에서 무작정 내진설계 기준만 강화한다면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대한 안전은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니까요.”
이와 함께 유 회장은 내진설계 등급제를 제시했다. 정보통신등급제도와 같이 내진설계 수준에 대한 등급을 부여함으로써 내진설계라는 요소가 소비자로부터 신뢰받는 주요 항목으로 자리 잡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또한 비상시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작은 실천운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이는 모든 건축물의 비상 대피로를 외부에서도 파악할 수 있도록 표시하는 캠페인이다.

이렇듯 세심한 정책과 사업은 협회의 월등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기술력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기획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22년 간 대형건축물과 대형사고 등을 진단하며 쌓아온 노하우는 고스란히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돼 있다. 이는 언제어디서든 즉시 대응할 수 있는 기동력과 신속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큰 자랑은 바로 사람입니다. 협회를 구성하고 있는 풍부한 기술인력은 국내 최고임을 자부하기 때문이지요.”

유 회장 역시 건설 학의 명문으로 알려진 인하대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에서 석사, 수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 건설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건설안전기술사는 물론이고 토목시공기술사. 도로 및 공항기술사 자격을 취득하는 등 현장전문가로도 탁월한 역량을 갖춘 한편 서울시청 등 공직을 비롯해 쌍용엔지니어링 이사, 도우엔지니어링 사장, 동남이엔씨 회장을 역임하는 등 공·사직을 두루 망라한 학문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건설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 것이다.

생명을 구하는 ‘전성기’를 위하여

20여 년을 훌쩍 넘어선 역사를 지닌 국내 최고의 건설안전문기관의 수장에 올라선 유성진 회장. 그는 기쁨보다는 어깨를 짓누르는 사명감에 숨이 가쁘다며 손사래를 쳐 보였다. 임기 내에 대한민국 건설안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그의 하루하루는 고스란히 공적인 고민들과 분주함으로 채워지고 있다.

“협회의 전성기를 열 수 있도록 전력 질주할 것을 매일 다짐하고 있습니다.”
유 회장이 말하는 ‘전성기’는 비단 협회라는 한 기관의 활성화나 발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매년 발생하는 어이없는 인재(人災)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사)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의 전성기는 국내 건설안전 분야의 전성기가 될 것이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