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지주회사 금융지주회사 설립 가능해지나

3년째 표류 중인 금산분리법 완화 국회 통과 임박

2011-05-16     최연화 기자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논란이다. 이 법안은 3년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표류해 왔다. 지난해 4월 여야의 합의로 정무를 통과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 법사위에 계류 중인 상태다. 논란의 핵심은 지주회사에 금융자회사를 허용하는 부분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울고 웃는 기업들

현행법은 일반지주사는 금융자회사 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금융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금융자회사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 보험사를 포함한 금융사를 3개 이상 보유하거나 금융자산 총액의 합이 20조 원 이상인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의무화하는 조항도 추가됐다.

문제는 법의 시행시기다.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시행기기가 언제냐에 따라 관련 기업들의 운명이 엇갈리는 탓이다. 특히 SK그룹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SK그룹은 2007년 7월 지주회사로 전환했지만 공정위가 지분정리 유예기간 연장을 허가해 지금까지 SK증권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예기간이 오는 7월로 만료될 예정이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7월 전에 발효되지 않는다면 SK그룹은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떠안아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SK증권을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 금융권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SK그룹이 법 개정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매각을 미뤄왔다고 보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7월 전에 개정안이 처리되면 SK그룹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순환출자 등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동반부실 위험이 높다. 단순하고 투명한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1998년 지주회사가 처음으로 허용된 후 이에 대한 규제는 꾸준히 완화돼 왔다. 이에 따라 LG와 두산, SK, CJ 등이 차례로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가 늦어질 경우 현재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하지 않은 삼성그룹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게 된다. 삼성은 출자구조가 매우 복잡해 별다른 제한 없이 금융 계열사를 10개가량 보유하고 있다. SK그룹이 지주회사를 선택한 후 증권사를 매각해야 하는 처지와 정반대의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공정위, 법안 통과 후 3개월 유예안 제시

지난 4월26일 정재찬 공정위 부위원장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관련해 법안이 통과 시기와 상관없이 3개월의 유예기간을 둘 것임을 시사했다. 금융자회사 보유와 관련해 개정안을 믿고 13개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했는데 법안통과가 늦어질 경우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자연적으로 법위반이 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또한 이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야당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4월에 개정안이 통과되면 8월부터 시행되고 6월에 통과되면 10월부터 개정안이 적용된다. 일반지주사가 금융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그룹 13개 중 7개가 중견그룹이다.
공정위의 이러한 입장변화는 개정안에 반대해 온 민주당을 향해 협상카드로 풀이된다.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면 법 시행 시점은 3개월가량 늦출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던 것. ‘공포 후 즉시’라고 명시돼 있던 법안 발효시점을 ‘공포 3개월 후’로 조정하겠다는 의미다.

이럴 경우 SK그룹은 개정안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6월까지 SK그룹을 매각하거나 최대 190억 원의 과징금을 떠안아야 한다. 이를 테면 공정위가 특혜시비의 중심에 있는 SK그룹을 내주는 대신 개정안 조속 처리를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정위의 제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2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공정위의 3개월 유보안은 일방적인 제안일 뿐 공정거래법 처리 문제는 결국 원내대표가 합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4월 국회에서 처리하긴 어렵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금산분리법이 뭐길래

금산분리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금하는 원칙이다. 금융의 특성을 감안하여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합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다. 즉, 기업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할 수 없게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1980년 대 초 전두환 정권의 은행 민영화에서 출발한 이 법은 “은행이 재벌 손에 넘어가면 사금고화 된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1982년 기업이 인수할 수 있는 은행의 지분율에 상한선을 두면서 시작됐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 비금융주력자는 은행 지분을 9% 넘게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자본의 금융참여 제한으로 인해, 외국계자본의 국내 금융산업 지배 현상이 심화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금산분리를 완화해서 국내자본으로 우리은행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따라서 2008년 4%인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지분한도를 10%로 확대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기존 은행법은 외국인과 금융전업 내국인에게는 10%까지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산업자본은 4%만 보유를 허용하고 그 이상의 지분에는 의결권을 주지 않고 있다. 이는 국내 산업자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의견도 있어, 금산분리 완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연기금 통한 재벌지배구조 개혁 ‘재계와의 한판승부’
친기업 표방한 이명박 정부 기업정책 전환 의미하나

지난 4월26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은 대기업의 거대 관료주의를 견제하고 시장의 취약한 공적기능을 북돋울 촉진자 역할을 연기금이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에 대한 제도적 견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재계와의 한판 승부가 예상된다. 곽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참모라는 점에서 그의 의중이 얼마나 반영된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특히 올해에 들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제기했고, 최근 이 대통령이 대기업 비상장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비판한 점 등을 감안하면 현 정부의 친기업 기조에 방향전환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만도 하다.

이날 곽 위원장은 “대기업들이 엄청난 규모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 데만 힘쓸 뿐 성장 동력 투자에는 불안한 모습”이라며 “미래전략사업 대신 중소기업 업종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으며, 대기업 위주의 과점체제와 수직계열화가 경제 전체의 창의력과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연기금 적립액 324조원 가운데 55조 원가량이 투자지분으로 들어가 있다. 연기금의 주주권 강화는 이처럼 막강한 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고 경영진을 감시, 견제하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같은 구상이 구체화되려면 상당한 진통과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청와대는 “곽 위원장의 개인적인 소신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청와대와의 연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 역시 금산분리 논란처럼 어려운 과정일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여론이라고 밝혔다.
이에 찬반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경제개혁을 지향하는 측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주주권 행사는 단순히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투자회사의 경영진과 주기적으로 협의를 함으로써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기관투가가 의결권을 포함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한편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치논리에 의한 관치 목적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지나친 경영권 간섭은 경영안정화를 훼손해 기업가치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연기금의 절반은 기업의 부담으로 조성되었는데, 이를 통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는 여론이 어느 정도 조성돼야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할 전망이다. 관건은 역시 정치적 악용가능성을 제거하는 일이다. 연기금이 정치적, 정책적 압력에 봉착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연기금 주주권 강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국민연금 자체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며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는 이사회 구조를 만들고 이사회에 의해 전문적으로 기금운용위원회가 통제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쟁점 금산분리 완화

기업의 무분별한 자금조달, 비자금 은닉에 악용될 소지도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된 금산분리 완화 부분에 대해 국내 금융주권을 지켜야한다며 완화에 찬성하는 목소리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금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자본의 효율적 활용을 내세우고 있다. 과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사태에서 보듯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국내 금융주권을 지키기 위해 대기업 자금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또한 금융회사 역시 대형화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삼성전자나 현대차그룹과 같은 대기업이 자사명의의 은행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금산분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기업의 은행 사금고화를 우려하고 있다.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자금난이 발생할 때마다 소유 은행으로부터 무분별하게 자금을 조달하게 되고, 투자와 사업확장에 은행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의 비자금 보관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도 포함하고 있다.
해당 논란의 당사자인 은행들은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기업 자본이 주주가 되면 경영권이 안정되는 측면이 있지만, 저축은행 대주주의 불법대출 사건과 같이 은행이 기업의 대출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장단점이 공존하고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