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민주당의 완승, 한나라당 텃밭 내주고 좌초
대부분 40%대 상회, 투표열기가 선거결과 희비 갈랐다
지난 4월27일 치러진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완패했다. 이른바 ‘빅3’ 지역으로 꼽혔던 주요 격전지 중 2곳을 내주고 1곳을 겨우 거머쥐었을 뿐이다. 1대 2의 전적임에도 불구하고 완패라고 평가받는 것은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불릴 정도로 전통적인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경기도 성남시 분당을 지역을 내줬기 때문.
한나라당 완패, 격전지 3곳 중 1곳 건져
최종 개표 결과 민주당 손학규 당선자가 51.0%의 득표율로 강재섭 前 한나라당 대표(48.3%)를 누르고 대승을 거뒀다. 손 당선자는 당선확정 직후 소감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 변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분당 시민들을 통해 표현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강원지사 보궐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 최문순 당선자(51.05%)가 예상을 깨고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46.63%)을 이겼다. 강원도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을 나타내는 지역인 데다 인지도 등 여러 측면에서 엄 후보가 우위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의 최대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최 당선자는 “최문순의 승리는 강원도의 승리이며 강원도 자존심의 승리”라며 “혼자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 연대정신의 승리이고 야권통합의 승리”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한편 김해을 지역에서는 김태호 한나라당의 후보가 당선돼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김 당선자 개인으로서도 지난해 8월 총리 후보 낙마 이후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48.98%)에 맞서 51.01%의 득표율로 막판 역전극을 연출해냈다.
김 당선자는 “김해가 동남권의 경제중심 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김해 일꾼으로 다시 뛸 수 있는 기회를 준 김해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패배한 한나라, 승리의 민주 희비 엇갈려
한나라당은 참패 확정 직후 안형환 대변인을 통해 “뼈를 깎는 각오로 국민의 뜻을 더욱 겸허히 받들겠다”고 밝혔다. 안 대변인은 “출퇴근 시간을 아껴 투표에 참여한 직장인과 궂은 날씨에도 투표장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어르신 등 모든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에 감사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을 지역 살릴 일꾼 뽑는 선거로 규정하고 지역을 살릴 진심을 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그러나 국민이 느끼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당 차 영 대변인은 “정권교체와 대안정당이 되도록 환골탈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의 변화에 대한 소망을 봤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국민의 뜻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도록 민주당이 먼저 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기뻐하기보다 앞길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은 이명박 정부를 심판했다"고 선언하며 “이번 선거는 야권이 연합·연대하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다”며 “겸손한 마음으로 생활 정치와 민생에 전념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도 승리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투표율, 민주당의 승리 이끌어
통상 투표율이 높을수록 진보성향의 야당이 유리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선거는 특히 높은 투표율을 기록해 주목을 끌었다. 재보선 전체 투표율은 대부분 40%에 육박해 상하반기 동시 재보선이 정례화 된 2000년 이후 역대 3번째로 높았다. 특히 분당을과 김해을 그리고 순천 등 국회의원 선거구 3곳의 경우 43.5%로 동시 재보선 사상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
야권의 잠룡으로 분류되는 거물급 인사들이 후보로 나서고 여권이 이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 의미를 부여한 것이 투표율 상승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한편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로 불렸던 ‘빅3(분당을, 김해을, 강원지사)’에서는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흥행카드가 연일 쏟아졌던 것도 투표율을 끌어 올리는 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20년 가까이 한나라당이 텃밭으로 다져온 분당을에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출마한 것을 두고 한나라당의 수성이냐, 민주당의 탈환이냐에 대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크게 높았다는 것이다.
김해을의 경우에도 故 노무현 前 대통령 적통을 내세운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를 야권단일 후보로 내세운 가운데 경남지사를 역임하고 국무총리 후보에까지 올랐던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맞서는 대조적인 양상이 벌어지면서 관심을 증폭시켰다.
강원지사 선거에서는 MBC사장 출신이자 춘천고 선후배 사이인 두 후보가 나란히 출마하면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는 선거결과 향후 정치지형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내년에 실시될 총선과 대선이라는 거대한 정치행사를 앞두고 있는 데다 여타 재보선에 비해 후보들의 무게감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의미 있는 승리’
민주노동당이 값진 승리를 일궈냈다. 광주전남 지역 최초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탄생시켰던 것.
순천에서 승리한 김선동 민주노동당 당선자는 대학 재학 중 서울 미문화원 점거투쟁을 벌이다 제적된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다.
전남 고흥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순천고를 거쳐 1985년 고려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3학년이었던 1988년 10월 광주항쟁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벌이다 구속돼 대학생활을 접어야 했다.
출소 이후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와 광주 기아자동차, 광주 금호타이어 하청업체 등에서 용접공 생활을 했으며, 민주노총 전남동부지구협의회 활동 등 노동자들과 동고동락을 했다. 또한 순천시민연대 조직국장을 지내고, 2002년 민주노동당 순천지구당위원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 바 있다.
이듬해 민노당 전남도당위원장이 된 뒤 2004년 전남도지사 보선에 민노당 후보로 출마하며 정치기반을 쌓았고,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민노당 중앙당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정치 역량을 중앙 무대로까지 넓히면서 지명도를 높였다.
특히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민노당 순천시 선대본부장을 맡아 지역의 정치 성향과 정서 등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번 선거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관심 밖 기초단체장, 기초·광역의원 재보선
이번 재보선에서는 6곳의 기초자치단체장과 5곳의 광역의원 그리고 23곳의 기초의원을 다시 뽑는 선거가 동시에 실시됐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광역자치단체장 재보궐선거의 뜨거운 열기에 묻혀 이들 지역의 선거는 상대적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울산 중구와 동구청장을 뽑는 재보선의 관심도는 지난해 실시된 6.2지방선거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다.
투표를 마감한 결과 동구청장 선거의 투표율은 47.5%로 지난 6·2 지방선거 때 최종 투표율 57.8%에 미치지 못했다. 31.6%를 보인 중구청장 선거 역시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55.1%에 비해 크게 떨어진 모습이었다.
이러한 무관심은 선거운동 기간에 이미 예측됐다. 심지어 재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는 “선관위가 나서서 투표를 독려해야 한다”는 볼멘소리를 낼 정도였다.
군수 다시 뽑는 충남 태안군에서도 4명의 후보가 나섰지만, 최종 투표율은 52.2%에 그쳐 선거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선거기간 내내 군 내 중심가에서 주요 정당의 지원유세가 펼쳐졌지만 군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양양군수 재선거의 경우 66%로 다소 높은 투표율을 나타냈지만, 중앙 정치권의 대리전이 되다시피한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밀려 분위기는 그리 뜨겁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선거기간 각 당의 거물급 당직자들이 잇따라 방문하면서 지원운동을 펼쳤지만, 도지사 후보 지원에 집중했던 터라 군수선거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것이다.
기초·광역의원은 사정이 더했다. 충북도의원 제천 2선거구의 투표율은 29.6%로 작년 6월 제5대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59.2%에 크게 떨어졌다.
제천시의회 '가' 선거구는 40.1%, 청원군의회 '가' 선거구는 43.6%로 선관위 예상 투표율이었던 40%를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
기초의원 3명을 선출하는 대구에서도 많은 시민이 선거에 무관심한 결과 투표율 16.5%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지역 기초의원 재보선 투표율은 서구가 16%, 달서구라 15.5%, 달서구마 18.5% 등으로 집계됐다.
높은 투표율이 ‘분당을’ 승부 갈랐다
투표 종료 1시간 전 ‘넥타이 부대’ 대거 등장
정치권에서는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고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다’는 속설이 떠돈다. 그것은 이번 4.27재보선에서도 여지없이 맞아 떨어졌다.
선거기간 내내 초박빙, 초접전으로 선거전문가들조차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던 분당을 지역이 다소 싱거운 승부로 끝나고 말았던 것. 이러한 결과에는 높았던 투표율이 한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투표 종료 후 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평균 투표율은 39.4%이다. 지난해 7.28재보선의 투표율 30.9%보다 8.5%포인트 높았다. 2000년 이후 치러진 재보선 중에서 41.9%를 기록했던 2001년 10.25재보선, 2005년 10.26재보선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투표율이다. 국회의원 재보선 투표율만 따지면 가장 높은 수치다.
지역별로는 분당을이 49.1%의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강원도 47.5%, 김해을 41.6%, 순천 41.1%였다.
직장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투표율을 끌어올렸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투표에 참여한 비율이 평소에 비해 훨씬 높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초미의 관심 지역인 분당을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새벽부터 직장인들의 투표가 이어져 오전에는 주요 지역 가운데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분당을에서는 투표 마감 1시간을 앞두고 5,000여명이 몰려 투표율을 42.8%에서 49.1%까지 끌어올렸다. 나머지 세 곳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특히 높은 투표율을 보인 분당을 선거에 대해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과 손 대표의 인물론이 한나라당의 조직력을 앞섰다고 분석했다.
분당을은 오후 8시35분부터 개표가 시작됐다. 이는 타 지역에 비해 10분 정도 늦은 시각이다. 개표 시작 전 무소속 이재진 후보 측 참관인이 투표 결과가 조작될 수 있다며 전자개표기 사용을 중지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 탓이다.
하지만 소동이 정리된 후 개표 작업은 속도를 내 오후 11시 50%대를 넘길 수 있었다. 개표 시작 1시간여가 지난 오후 9시50분쯤 첫 결과가 확인됐다. 1,170표를 개표해 보니 강 후보가 515표, 손 후보가 646표를 얻었다. 두 후보 득표율은 각각 44%, 55%였다. 손 후보가 9.7% 포인트 이긴 것으로 나온 YTN 출구조사 결과와 비슷하자 정자동의 손 후보 선거사무실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강원지사 ‘빅매치’
엄기영, 불법운동 악재 안고 좌천
‘빅3’ 지역 중 한나라당의 우세가 확실시 되던 강원지사 재보선에서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가 좌초했다. 이광재 前 도지사의 사퇴 이후 여야로부터 동시에 영입제의 받은 바 있는 엄 후보는 MBC앵커 및 사장 출신의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강원도를 되찾아올 최적의 인물론 꼽혀 왔다.
또한 여당의 평창 겨울올림픽유치전과 맞물려 김진선 前 강원지사와 안상수 대표 등 여권의 핵심 인사들이 적극적인 지원 유세로 엄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특위’ 고문 자격으로 엄 후보를 측면 지원했기 때문에 이날 패배는 한나라당과 엄 후보에게 더욱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엄 후보는 정치에 막 입문한 상황임에도 특유의 순발력으로 선거기간 내내 순항하며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강원지사 입성이 가능해보였다. 하지만 제동이 걸린 것은 선거를 1주 남긴 시기에 발생한 ‘강릉 콜센터 사건’이었다.
그의 지지자들이 강릉의 한 펜션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하다 적발된 사건으로, 깨끗한 앵커 출신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엄 후보에게 유리하게 풀리던 판세 또한 맞고소와 고발로 얼룩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박지원 원내대표가 직접 펜션 현장을 방문하는 등 기동력을 과시하며 엄 후보를 압박했지만,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대응을 보여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엄 후보는 이날 밤 패배가 확정되자 “최문순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 비록 선거에 실패했지만 강원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며 잠시 울먹인 뒤 사무실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