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우물을 파듯 보낸 18년 세월의 깊이

“사람은 큰 바위가 아닌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법이지요”

2011-03-16     취재_공동취재단

배수진(背水陣) 혹은 벼랑 끝에서의 사투는 그 광경 자체가 처절하다. 그곳에서는 허황되거나 장황함이 있을 수 없다. 오직 한 가지 진실, 이겨야 한다는 뚜렷하고 확실한 목표가 있을 뿐이다. 역량은 물론 잠재력이 총동원 되며 전투에 임하는 자세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진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공간적 특성과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빚어내는 당연한 결과다. 기아차 서대문지점 오경렬 영업부장이 지난해 판매왕 3걸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연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벼랑 끝에서 만난 천직, 영업

그는 수 년 동안 근육암으로 투병했다. 이제 완전히 치유했기에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는 적지 않은 고통과 시름을 떠안아야 했다. 하지만 그 병을 앓기 전이나, 앓는 동안이나, 또한 이겨낸 후나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늘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자신의 천직인 영업에 몰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병마보다 무서운 혹은 고통스러운 세상과 싸우는 중이라고 말하는 오경렬 부장. 그는 늘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하루하루가 절박하고, 그래서 더욱 진실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생활 문제로 고민하던 무렵 불의의 사고를 당해 병원신세를 져야했습니다. 그 탓에 조금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그의 말을 빌리자면 출발선부터가 불리했다. 사회경험도 없었고, 나이는 적지 않았다. 대단한 성공을 꿈꾸기는커녕 일단 자리를 잡고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게 더욱 절실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사회와 가정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당연 목표였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능력을 갖추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것저것 찾아다녔죠. 그렇게 선택한 업종이 바로 영업이었습니다.”

그는 영업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직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본질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현란한 말솜씨에 의지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해다. 발품을 팔고 땀을 흘려야 하며, 그것이 진실해야 비로소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오 부장은 수많은 영업 분야 중에서도 자동차를 선택했다. 셀 수 없는 부품들로 구성된 거대함이 주는 오묘함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자동차라 할지라도 주인, 즉 운전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저 비싸고 복잡한 쇳덩이에 불과한 법. 자동차 영업활동은 자동차 산업의 화룡점정이요, 무생물에 불과한 자동차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기도 하다.

18년의 세월이 파낸 우물

벼랑 끝에서 시작한 사회생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지라 그는 우직하게 한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물을 파듯 쉬지 않고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어느덧 18년. 그 오랜 세월이 판 우물의 깊이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온통 불리한 조건으로 시작했던 사회생활,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마음속에는 두려움만 가득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그가 파낸 우물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오 부장의 뒷목을 서늘하게 했던 벼랑의 높이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베테랑 딜러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사내에서는 팀장의 리더십으로 지점과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때때로 사내강사 역할을 수행하며 후배들의 역량강화에도 힘을 보태는 중이다.

“이제 좀 거대하고 화려한 목표를 세워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연고도 하나 없는 서울에서 맨손으로 시작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여 년을 눈앞에 두고 있지 않습니까. 그 동안 참 많은 것을 모았습니다.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을 모았고, 용기를 모았으며, 또한 꿈과 희망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우고 있는 목표는 그들에게 제가 가진 것들을 다시 나눠주는 것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오 부장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일보다 판매 이후 고객 관리에 더욱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뜻 보기에는 판매활동에 크게 매달리지 않는데, 고객들은 끊임없이 몰려든다는 것. 이를 테면 그가 파 놓은 우물에 고객들이 스스로 빠져드는 셈이다.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어야 잠이 옵니다. 언제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거든요. 가끔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 고객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는데, 그 전화벨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저를 가장 먼저 떠올려 주셨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흐뭇한 일입니까.”

사람은 큰 바위가 아닌 작은 돌부리에 쓰러진다

3,200여 명에 이르는 기아차 영업사원 중 판매실적 3위, 연간 판매대수 270여 대. 그는 이제 성공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맨손에서 시작해 이룩한 성과였던 만큼 그 동안 오 부장이 겪었을 고초가 오죽했을까 싶었다.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시작한 일인만큼 더 이상 잃을 게 없었거든요.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위기를 한 번 맞이한 적이 있었지요. 1997년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을 찾았더니, 허벅지 근육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죠.”

의학기술이 발달한 까닭에 암 완치율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암은 죽음과 동일시하는 무서운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처음 암 진단을 받고 그 역시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 후 1년 동안 병원신세를 지며 긴 투병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은 주로 끝없는 절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오 부장은 달랐다.

“병실은 고스란히 배움의 공간이었습니다. 주로 책을 읽었는데, 덕분에 아직까지 독서습관을 유지하고 있지요. 책 속에 세상살이의 진리가 있다는 것도 그 때 깨달았습니다. 독서를 통해 영업맨으로 견지해야 하는 원칙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의연하고 깔끔하게 그 암을 이겨냈다.
오 부장은 자신만의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 판매에는 왕도가 없으며, 고객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 둘째 작은 차이가 실적을 만들기 때문에 고객을 위한 것이라면 작은 것부터 세심하게 챙기는 것. 셋째 영업의 비법은 책 속에 있으므로 손에서 책을 놓지 말자는 것. 그리고 그는 그 설명을 맺으며 한 마디의 격언을 덧붙였다.

“사람은 큰 바위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마련이지요.”
이는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병마가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던 이유이며 판매보다는 사후관리에 신경을 쓰며 고객들의 대소사를 세심하게 챙기는 영업비법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사내에서 불리는 오 부장의 별명은 ‘고객불만 제로’이다. 확고한 원칙과 상상을 초월하는 세심함이 어우러져 종내에는 고객들의 높은 만족도와 재구매 혹은 지인 소개로 이어지게 되는 까닭으로 붙여진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간간히 고객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영업이라는 도자기를 굽는 장인의 풍모가 엿보였다. 영업맨이라면 누구나 이룩하고 싶어하는 ‘고객불만 제로’. 하지만 오경렬 부장에게는 한 치의 고객불만을 만들어내는 일이 더욱 어려울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