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목소리는 물 위에 뜬 얼음, 빙산을 닮았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을 만들고 싶어요”

2011-03-16     취재_공동취재단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에는 무척 섬뜩한 의미가 숨어 있다. 수면 아래에 잠재되어 있는 거대한 얼음덩이가 가진 파괴력 때문이다. 영화화 되어 더욱 유명해진 타이타닉호도 빙산에 부딪쳐 침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듯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빙산의 실체가 결국 ‘물’이라는 점이다. 그 유연하고 부드러운 액체에는 얼음이라는 또 다른 모습을 잠재되어 있는 셈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혹은 알사탕처럼 달콤한

대한생명 세종EA센터 김주은 대표. 인터뷰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물 위에 떠다니는 얼음, 빙산을 닮았다. 차갑게 똑똑 부러지면서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묘한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서울의 기온이 영상 10도를 회복하던 날이었다. 폭설과 한파가 잦았던 겨울의 끝 무렵이라 햇살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봄날에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인터뷰하러 가는 기자의 기분이 참 묘했다. 어색하고 냉랭한 자리가 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었다. 모름지기 인터뷰란 달콤한 엿가락처럼 길게길게 늘어져야 기사가 담백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김주은 대표를 직접 만나고 난 후 그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둥글둥글한 체형에 웃음기 가득한 눈매가 참 매력적이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유머와 재치는 깨물어 먹는 알사탕처럼 귓가에서 오도독거렸다. 다만 애로가 하나 있었다면 한사코 ‘자신은 할 말이 없다’며 단답형으로 일관하는 김 대표의 답변이었다.
“언니가 보험업계에서 활동했는데, 저에게 교육이라도 한 번 받아보라고 권유하기에 별 뜻 없이 참석했던 게 인연이 됐어요.”
그리고 또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고객을 만나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노하우나 전략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더욱 가관이었다.

“보험가입안내와 고객의 자산에 대한 보장분석 자료 딱 두 개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무실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담한 박스 6개가 단정하게 쌓여있었는데, 얼마 전 사무실 이사를 하면서 가져온 짐의 전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책상 위에는 그 흔한 상패나 액자 하나도 눈에 띠지 않았다. 개인용 PC와 필기구 몇 장의 서류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녀는 2004년 1월 업계에 입문한 이후 단 한 해도 놓치지 않고 ACE클럽과 MDRT를 달성했다. 이는 김 대표의 어법처럼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룩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분명 무엇인가 비밀이 숨어 있다는 뜻일 게다. 그날의 인터뷰는 그 기이한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 본 기자의 사명이자, 관건이었다.

행동으로 만들어 가는 말

“보험영업, 재무설계는 말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짧지 않은 기간 이 일을 하면서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말고, 행동으로 말을 만들자’는 소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인터뷰 개시 두 시간 만에 드디어 김 대표의 말문이 터졌다. 여느 판매왕들과 같은 재미나고 때론 애틋한 현장일화는 끝내 들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업계의 신화를 써내려가 가는 한 주역의 영업철학은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인이나 혈연을 중심으로 한 소개 영업을 자제한 지가 꽤 됐습니다. 주로 대한생명 데이터베스에 등재되어 있는 기존 고객들을 관리하며 계약연장이나 신규 상품판매에 주력하고 있어요. 소개 영업보다는 어려운 영역이긴 하지만 매우 담백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밝혀진 영업비법은 ‘시원함’이었다. 기자가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느꼈던 뜻 모를 차가움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을 듯싶었다.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러했다.

 “고객과 설계자가 마주 앉았다는 것은 계약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뜻이죠. 그것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시작하게 되면 고객과 설계자가 오히려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군더더기 없는 그녀의 영업방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런저런 문답을 주고받던 중 어느새 기자가 김 대표의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유머와 재치가 가득한 그녀의 이야기에 박장대소를 이어가는 동안 본연의 임무를 깜짝 잊고 말았다. 그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고객들과 통화하고, 만나며 보내는데 이에 대한 계획서는 최대한 간결하게 작성합니다.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머릿속에는 일에 대한 생각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고객이 가진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정리, 또한 시기별로 접근해야 할 영역과 만나야 할 사람들에 대한 것이죠.”

김 대표와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온 신정용 서울EA 센터장은 이를 “김주은 대표만의 폭발력”이라고 표현했다. 평소에는 마치 호수 위의 백조처럼 여유롭고 우아하게 떠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놀라울 정도의 폭발력을 발휘해 성과로 이어낸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MDRT 달성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업계의 분위기로 볼 때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역량을 응축시키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정말 보면 볼수록 빙산을 닮았다.

수면 아래의 빙산을 보았다

“고객과 설계자로 만나 계약을 전제로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인연을 맺는 것이기에 그 분들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일이 아니더라도 만남의 자리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오가게 되죠. 그러다 때론 그 자리가 인생사 전반을 아우르는 상담의 장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러한 마인드 때문인지 그녀가 가진 소망도 참 시원하고 소박했다. 설계사로서의 최고봉이나 수십억 원대의 실적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웃들과 무엇이라도 나누며 따뜻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뒤이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틈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는데, 보다 넓고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고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전했다. 마음 같아서는 세계의 모든 나라를 돌아보고 싶단다.

또 그녀는 말이 없었다. 마른 걸레를 다시 짜는 심정으로 아무리 짜내도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며 버텼던 것이다. 어떤 이야기든 한마디라도 더 전하기 위해 애를 쓰는 여느 인터뷰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기자는 더 이상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김주은 대표를 처음 알게 됐던 것은 작은 얼음덩어리처럼 떠다니는 목소리였지만, 두어 시간 동안 이어졌던 인터뷰를 마칠 무렵엔 그녀의 일상 아래에 숨어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찾아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