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절반으론 목마르다” 오라클, 업계선도 목표
포춘지 선정 100대 그룹 중 98개사 데이터 센터에서 오라클 제품 사용
2010년 기준 세계 6위의 부자. 사치스러운 생활과 기행으로 ‘실리콘밸리의 악동’으로 불리는 남자. 하지만 이러한 수식만이 래리 엘리슨의 전부는 아니다. 넘쳐나는 부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동으로 그를 평가하기에 엘리슨이 이룬 업적은 실로 엄청나다. 기업용 데이터베이스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오라클(Oracle)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의사를 꿈꾸던 청년 래리 엘리슨(Lawrence Joseph Ellison). 하지만 청년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방황하던 중 엘리슨은 아르바이트로 하던 컴퓨터 프로그래밍 경력을 살려 수년 간 여러 기업에서 자료를 백업하고 정리하는 컴퓨터 관련 단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암달(Amdahl Corporation)에서 스튜어트 폐긴을, 암펙스(Ampex)라는 AV 전문 회사에서 상사로 근무하던 밥 마이너(Bob Miner)와 동료 에드 오츠(Ed Oates)를 만나면서 그는 새로운 꿈을 품기 시작했다.
1977년 엘리슨은 마이너, 오츠와 미국 국방부의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Relational Database ManagementSystem; RDBMS)을 개발하며 이에 흥미를 느낀 엘리슨은 동료들과 ‘시스템 디벨롭먼트 레보토리스(SDL)’라는 컨설팅회사를 설립한다. 이후 ‘RIS’로 한 차례 사명을 변경했다가 1983년 다시, 국방부 프로젝트명이었던 ‘신탁’이라는 의미인 ‘Oracle’을 사명으로 채택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비즈니스 컴퓨팅의 세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과 의기투합해 SDL이라는 회사도 차리고 특정 기업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하청 받는 비즈니스를 실행하기도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한 엘리슨은 끊임없는 논의 끝에 IBM의 ‘시스템 R’ 프로젝트를 접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시스템 R’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자”라고 결심한 엘리슨은 동료들과 함께 IBM보다 앞서 시제품을 만들기에 이른다.
효율성, 보안성, 확장성, 용이성 고려한 ‘DBMS’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대표생산품이 windows 운영체제라면 오라클의 대표상품은 DBMS이다. 이는 데이터의 효율성, 보안성, 확장성, 용이성을 고려해 만든 제품이다.
오라클 최초의 RDBMS 버전 1은 프로토 타입으로 판매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그리고 1979년 버전 2가 RSX-11 운영체제를 갖춘 디지털사 PDP-11 미니컴퓨터에 최초로 공급되었다. 하지만 버전 2는 트랜잭션(Transaction) 개념을 지원하지 못하는데다가 단일 SQL문도 자동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후 오라클은 전체를 다시 코딩해 버전 3을 탄생시켰다.
버전 4부터는 판매량을 늘렸다. 1984년 소개된 버전 4는 읽기 일관성과 트랜잭션을 완전히 지원하게 되어 데이터를 읽으려고 하는 이와 쓰려는 이의 충돌을 방지하게 되었으며, 1985년과 86년에는 연달아 5.0과 5.1을 내놓았다. 5.1은 최초로 이종의 클라이언트/서버 아키텍처를 허용한 제품이자 최초로 분산 질의를 제공한 SQL 시스템이었다. 이는 오늘날 오라클 병렬 서버의 기초가 되는 협동서버의 초기 형태를 선보인 제품이기도 하다. 1988년에는 대용량 OLTP 환경의 요구사항에 맞도록 개발된 버전 6이 소개되었다. 여기에서는 빠른 커밋, 지연 쓰기, 시스템 가용성의 개선을 위한 온라인 백업 및 복구기능도 함께 발표되었다.
버전 7을 발표하는 데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연구·개발과 내부테스팅 및 고객 사이트 테스팅을 거쳐 1992년 발표된 버전 7은 보안 기능 및 분산데이터베이스 기능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통계정보를 생성하는 ‘ANALYZE’ 명령 사용 및 효과적인 옵티마이저를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버전 8부터는 i가 붙는다. 이는 인터넷 컴퓨팅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로, 인터넷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정보의 관리 및 액세스 방식을 바꾸어놓는 한편, 전통적인 OLTP와 데이터 웨어하우스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새로운 기능들을 제공했다. 이후 등장한 9i는 e-비즈니스를 염두에 둔 버전이다.
버전 10에서는 새롭게 g를 선택한다. g는 그리드(grid)를 의미하는 것으로, 10g에서는 그리드 컴퓨팅 개념을 도입했다. 그리드 컴퓨팅이란, 위치상으로는 분리되어 있으나 네트워크상으로 연결된 여러 대의 컴퓨터의 유휴자원을 가상으로 연결해 마치 하나의 대용량 고성능 컴퓨터인 것처럼 만들어 연산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다운타임 최소화, 고가용성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재는 11g까지 출시된 상태다.
엘리슨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성장 지속
현재의 오라클 제품을 사용하는 많은 이들은 5버전을 지나면서 성능 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 이전에는 버그도 많고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되었던 것. 하지만 이러한 제품의 단점에도 오라클이 계속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오라클의 창업자이자 현재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엘리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엘리슨은 제품의 단점을 끊임없이 해결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이용해 오라클의 입지를 키워 왔다.
1980년 당시 오라클은 IBM, RTI, dBase, 인포믹스, 사이베이스 등과 경쟁했다. 오라클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슨이 ‘오라클이 최후의 DBMS(Database Management System)’, ‘오라클의 제품은 어떠한 플랫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호환성을 자랑한다’라는 식의 공격적인 홍보를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용자의 수를 기준으로 소프트웨어를 팔던 방법에서 벗어나 기업 내 모든 사람이 제한 없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 라이선스(Site Licenses)라는 판매기법을 도입한 것도 주효했다. 그 결과, 수많은 기업들이 오라클의 제품을 구입하게 되면서 오라클은 초고속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오라클은 설립 이후 현재까지 부단한 혁신과 노력, 고객의 당면 과제 및 성공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 세계 최고의 기술 및 경영 마인드를 토대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왔다. 오라클은 오늘날 널리 보편화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의 활용을 실현한 최초의 기업 중 하나로 Oracle Fusion Middleware의 출시와 함께 기업 목표를 반영하는 새로운 제품 및 기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수준의 엔터프라이즈 기술을 연결해 고객이 신속하고 기민하게 시장 여건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액세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오라클은 현재 Real Application Clusters, E-Business Suite, Grid Computing, support for enterprise Linux 및 Fusion 모두 30여 년 간 오라클을 대표하는 특징이었던 혁신과 성과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결과 오라클은 전 세계 기업에서 데이터베이스 기술 및 애플리케이션의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정보 관리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독립 소프트웨어 회사로, 오라클의 기술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산업 부문에서, 그리고 포춘지 선정 100대 그룹 중 98개사의 데이터 센터에서 사용되고 있다.
매년 2배 이상 성장하다 1% 성장에 그치기도
오라클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것도 작용했다. 앞서 말했듯 ‘시스템 R’, 즉 RDB의 개념을 현실화한 것은 IBM이었지만 이것을 시장에 최초로 내놓은 것은 오라클이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기종에 따라 구동되는 소프트웨어가 각기 달랐는데 오라클은 이들을 통합해 어떠한 종류의 컴퓨터에서도 호환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이다. 시대를 이끄는 흐름이 없거나 새로운 마켓이 없을 때에는 과감히 시장을 만드는 시도도 주저하지 않았다. 창업자가 직접 나서서 제품 판매를 위한 강연회를 열어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고, 1990년대 초에는 주문형 비디오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정보 고속도로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매년 2배의 성장을 이어오던 오라클은 1990년 위기를 맞았다.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1% 성장에 그쳤고 이듬해 1분기 성적도 형편없었다. 투자자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결국 28달러에 달하던 주식은 6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걷잡을 수 없는 오라클의 하락에 투자가들은 제동을 걸었다. 방만한 경영에 소송을 걸었는가 하면 고객들은 소프트웨어를 환불하기도 했다.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르자 엘리슨의 얼굴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엘리슨이 아니었다. 그는 본래 자신의 성격대로 “다음 분기에는 나아질 것”이라면서 투자가들 설득에 나섰다. 구조조정을 실시해 직원의 10%에 대해 해고를 단행하는 등 매서운 칼날을 빼들었다. 그렇게 오라클은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초기에는 공격적 마케팅에만 의존하던 오라클이었지만 결국 고객이 선택하는 것은 제품의 질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고객들의 개선 요구에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제품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안정적이고 강력한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1977년 1,200달러로 시작한 오라클은 1,000만 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인재 관리도 오라클의 성장을 도왔다. 처음 회사를 운영했을 때, 엘리슨은 직원을 한 명 뽑으면 단말기를 두 대 제공했다. 단말기 한 대는 회사에, 또 한 대는 직원의 집에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장소불문 직원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려는 의도였다. 최고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면 최고의 보수도 아끼지 않는다. 오라클에서 학벌, 지연, 출신성분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회사가 요구하는 것은 영리함과 자신감이다.
IBM을 거부하던 썬, 오라클의 품에 안기다
2009년 4월21일, 오라클은 다시 태어났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라클은 이 날 썬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를 약 74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IBM이 끈질기게 구애를 하던 썬이었다.
그렇다면 합병을 추진해오던 IBM을 거부하고 썬이 오라클의 품에 안긴 것에 대해 업계를 깜짝 놀래켰다. IBM이 협상 종료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2주 만에 다른 업체에게 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썬의 맥닐리 회장과 엘리슨이 오랜 친분을 쌓아온 것도 합병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썬의 핵심 경쟁력인 자바와 블랙박스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업체가 오라클이라고 판단, 오라클을 최종 구매업체로 선택했다.
하지만 인수합병은 쉽지 않았다. 유럽공정거래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측에서 “오라클이 썬을 인수할 경우 DBMS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라고 인수를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해 12월 오라클이 유럽공정위에 “마이SQL에 지속적인 투자는 물론, 향후 5년 간 오픈소스 라이선스를 유지하겠다”라는 약속을 하면서 긍정적인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결국 2010년 1월21일, 유럽공정위는 “오라클의 썬 인수는 관련 시장에서의 경쟁과 혁신이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더욱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 탄생할 것”이라면서 인수를 승인했다. 엘리슨은 1월27일 인수합병을 완료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썬 비즈니스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향후 몇 달 내로 엔지니어 및 영업 부문에서 2,000명의 신규 인원을 채용할 계획이며 썬을 수익이 나는 회사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라클은 묻는다. “내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십니까”라고.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 분야에서 성공한 것처럼 미들웨어와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도 1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오라클의 목표는 오라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점을 두는 동시에,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함으로써 업계를 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