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게이트’ 일파만파, 등장인물은 삼국지 수준
거액의 로비자금 오간 비리사건, 피해자는 결국 건설노동자들
자본주의사회가 매력적인 요인 중에 하나가 ‘노력한 만큼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 다양한 불평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기회의 평등은 확실히 보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비리나 담합 혹은 권력이 개입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 권력, 명예 등 소위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이 더욱 많이 가지게 되는 부조리가 발생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기회의 평등’. 우리는 분명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기회의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돈과 권력이 장악한 현실 속에서 그 존재는 어느새 도덕책이나 헌법조문 속으로 숨어버린 듯 하다.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초대형 비리사건이 발생했다. 이름하여 ‘함바게이트’. 건설현장에서 운영되는 간이식당인 함바집 운영권을 둘러싸고 건설사 대표와 전직 최고위급 경찰까지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인 함바집은 일본말 ‘한바’ 즉 노무자 합숙소에서 유래한 것으로 건설업계의 현장 직원 식당을 일컫는다. 이는 건설사업장이 생기면 현장직원과 인부들의 식사를 독점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상당한 이권이 달린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공사기간 동안 사업에 투입되는 인원수만큼의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수익이 막대하고 안정적이다 보니 웬만한 인맥 없이는 운영권을 따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함바집 운영권은 건설현장의 대표적인 이권사업으로 꼽혀왔다. 업계 관계자는 함바집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건설사 현장소장이나 고위층과의 인맥을 활용해야 하며, 이렇게 선이 닿으면 보증금 명목으로 거액의 사례금을 지불하는 게 보통이라고 전했다. 이는 은밀하게 거래되는 일종의 뒷돈인 셈이다. 또한 현금에 가까운 확실한 수익성 덕분에 일종의 뇌물로 제공되는 경우마저 있다고 한다.
함바집 운영권을 두고 공개입찰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형식만 갖췄을 뿐 사전에 내정한 업체가 대부분 가져가게 된다. 웬만한 지원배후가 없으면 함바집 운영은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는 것일까. 1,000세대의 아파트 현장에서 일일 500여 명의 인부가 함바집을 이용한다고 가정해 보면 한 달 매출은 1억 5,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보통 한 끼 식사는 3,500원에 제공되며 인부들은 이를 하루에 최소 2번 이용하게 된다. 여기에서만 1억 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이와 함께 우유, 빵, 국수, 음료, 주류 등 간식판매 수익까지 합하면 1억 5,000만 원의 매출은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된다. 재료비와 인건비 등을 제외한 순이익률이 30% 안팎이라고 볼 때 연간 3억~4억 원의 순수익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순이익률은 현장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25%에서 많게는 4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규모 아파트 현장의 경우 3년 안팎의 공사기간을 필요로 한다고 볼 때 이러한 함바집에서는 10억 원 안팎의 이윤이 보장되는 셈이다. 또한 함바집은 기존 식당과 달리 건물 임대료나 수도 및 전기요금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건설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곤 했다.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번 함바집 비리사건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온 가운데 언젠가는 터지게 될 시한폭탄이었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모든 함바집에 뒷돈이 오가고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게 아닌데, 이번 사건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운영하는 함바집까지 왜곡된 시선을 받고 있다고 항변했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업계가 더욱 위축될 수 있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함바 브로커 유 씨의 몰락사
‘함바게이트’를 촉발시킨 함바집 브로커 유모 씨는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업유지에 동원했던 이른바 ‘바지사장’이나 친인척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유 씨 몰래 운영권 사기를 벌이면서 그를 더욱 수렁 속으로 떠밀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 씨는 지난 2005년 서울 잠실동 재개발 건설현장 식당운영권을 따기 위해 조합장 이모 씨에게 접근했다. 그는 조합찬조금 명목으로 3억 원을 요구했고, 유 씨는 중간 브로커를 시켜 1억 5,000만 원을 전달했다. 이 일로 유 씨는 2006년 5월 뇌물공여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승승장구하던 유 씨는 이 사건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건설경기마저 얼어붙어 함바집이 크게 줄어들어 급격한 사업위축을 겪었던 것이다. 그는 부족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식당업주로부터 미리 돈을 받아 로비에 나섰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애초에 현장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하나의 현장을 두고 이중계약을 해 업주들로부터 고소당했다. 그때는 이미 서울 송파와 경기도 성남 등에서 최소 10건 이상의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렵 유 씨의 그늘 아래서 ‘바지사장’ 노릇을 하던 이들과 친인척들이 하나둘씩 독립하기 시작했다. 막강한 배후를 보유한 채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던 유 씨가 힘을 잃자 직접 사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 씨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 유 씨가 부산지역 함바집 로비 창구로 활용했던 경부유통 바지사장 우모 씨는 2006년 11월 혼자 박모 씨를 만나 “경남 양산의 신축 공사현장 식당운영권을 주겠다”며 4,000만 원을 받는 등 단독활동을 하다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유 씨는 처남인 김모 씨를 사장 자리에 앉혔지만 그도 역시 혼자 운영권 알선에 나섰다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고위 인사들 대거 연루, 수첩에 1,000명 더 있다
항간에서는 유 씨가 벌인 로비 및 비리에 연루된 인물이 삼국지 등장인물 수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강희락 前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고위직 간부 다수와 청와대 인사 등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수사가 시작되고 보름이 지난 1월 하순의 현재까지 그 정확한 인원수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조현오 경찰청장은 1월20일 광주지방경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지휘관들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에 대해 13만 경찰관들이 자괴감과 상처를 받은 것에 대해 경찰 총수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조 청장은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으며 이번을 진정한 성찰과 쇄신의 기회로 삼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특단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브로커 유 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건설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징역형을 구형한 가운데 지위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향후 수사가 진행될수록 파문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강희락 前 경찰청장이 후배 경찰들과 유 씨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혐의도 속속 들어나고 있다. 유 씨는 이러한 강 前 청장의 영향권을 등에 업고 건설현장이 밀집한 수도권과 영남지역에서 광범위한 로비를 펼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유 씨와 접촉한 것으로 밝혀진 경찰들은 서울 비롯한 수도권, 부산·경남에서 경찰서장을 지낸 이들이다. 이는 강 前 청장이 근무했던 지역으로, 유 씨를 만난 대다수의 경찰들이 강 前 청장의 부탁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남지역 정·관계는 이번 사건으로 패닉에 빠진 상황이다.
지난 1월11일 검찰이 강 前 청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2009년 8월부터 12월까지 1억 1,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유 씨로부터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5개월에 걸쳐 1억여 원의 돈을 받은 대가로 부하 경찰관들을 소개시켜줬다는 점에 있어서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일각에서 ‘스폰서설’이 나도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관련 업계에서는 강 前 청장이 10여 년 전 서장시절부터 유 씨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유 씨가 일종의 후견인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강 前 청장이 유 씨와 1,000통 이상의 전화통화를 한 정황도 드러난 상태다.
이와 함께 유 씨의 다양한 로비 행태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청탁이나 주선을 거절하는 경찰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홍어, 와인 등을 선물을 배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명절 때는 해당 인사의 성향을 분석해 뭉칫돈을 건네거나 수억 원 상당의 상품권, 명품시계 등을 보내는 등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확보한 유 씨의 ‘로비수첩’에는 영남권 광역자치단체장과 정치인 등 1,000여 명이 올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 씨에게서 금품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수첩에는 대상자의 직책, 전화번호 등이 자세하게 기재돼 있어 신속한 수사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수사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정·관계를 휩쓰는 초특급 태풍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리스트는 50여 페이지로 구성돼 있으며 한 페이지당 20여 명의 명단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을 대상으로 유 씨와의 연관 여부를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 씨의 연고지인 광주·전남지역을 비롯해 사업을 하던 부산·경남지역의 정·관계 인사들이다. 이들은 현직을 비롯해 여당의 거물급 정치인도 여럿 포함돼 있어 박연차 게이트를 뛰어 넘는 폭발력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유 씨의 수첩에 적힌 인사들 대부분이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청탁을 받거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없다”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은 정밀검증을 통해 함바집 운영권 청탁과 관련된 인물을 가려내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함바게이트의 피해자들은 건설현장 노동자들
보통 함바집의 한 끼 식대는 3,000~4,000대에 불과하다. 6,000원을 훌쩍 뛰어넘는 시중의 식대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함바집의 식대가 싼 이유는 어느 정도 수익률이 보장되 있는 데다 임대료 등 부대비용이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식대를 구성하는 주요 재료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전제할 때 그리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함바집 브로커 유 씨와 그로부터 운영권을 넘겨받아 함바집을 운영했던 이들은 막대한 로비비용을 지불하고 막대한 이윤까지 챙겼다. 그러면서도 식대는 저렴한 가격을 유지했다. 현실적으로 따져볼 때 식재료를 선정하고 매입하는 과정에서 부족분을 채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건설현장의 노동자일수밖에 없다. 고되고 위험천만한 건설현장에서 그들이 먹었을 한 끼 식사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을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지독한 건설 불경기 속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더위와 추위를 잊은 채 성실히 일했을 노동자들. 그들의 허기를 채우줬던 한 끼의 식사에는 도대체 어떤 식재료들이 들어갔던 것일까. 과거로부터 숱한 비리사건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이 유독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경찰서 유치장과 구치소에서 밥을 먹고 있을 비리사건 관련자들의 입 속에는 또한 어떤 밥이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희대의 로비스트 유 씨, 왜 입을 열었나
‘믿었던 뒷배들의 배신’ 유 씨의 분노 자극했을 가능성
건강악화로 인해 보석 기대하고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규모와 파문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당초 이번 사건은 검찰이 입수한 첩보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브로커 유 씨가 검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금품으로 로비한 고위직 명단을 순순히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사초기 건설업계를 둘러싼 비리사건에 불과했던 이번 사건이 권력형 비리로 확대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유 씨의 순순한 수사협조를 두고 갖가지 의견이 제시됐다.
먼저 강희락 前 경찰청장의 배신과 유 씨의 ‘분노’가 작용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지난해 연말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방패막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강 前 청장이 유 씨에 4,000만 원을 건네며 해외도피를 권유하는 등 유 씨를 실망시켰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 씨가 공들여 관리해온 경찰 고위직 인사들 역시 유 씨에게 모두 등을 돌렸다.
오랜 기간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로비활동을 벌였던 유 씨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온갖 향응과 접대 그리고 금품까지 건네며 일종의 ‘든든한 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들로부터 정작 ‘보험금’을 타야하는 상황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 꼴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유 씨로 하여금 ‘분노의 선택’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 씨가 직접 거론한 인사들마저 ‘만난 적은 있지만 금품을 받은 적이 없다’거나 ‘질이 좋지 않은브로커에 불과하다’는 등 그와의 연관성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 씨는 구속된 이후에도 전화통화 등을 통해 지인과 주변에 도움을 끊임없이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구속 수감된 이후 급격한 건강악화도 이러한 유 씨의 선택에 힘을 보탰다는 분석이다.
그는 당뇨와 고혈압 등 지병을 앓고 있었는데, 구속 수감된 이후 이를 통해 보석을 기대했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석방이 무산되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진술폭탄을 터트렸을 가능성도 높다.
어쨌든 검찰로서는 유 씨의 협조로 비교적 수월하게 수사를 진행하게 됐다. 전직 경찰 고위 간부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거론되는 가운데, 자칫 단순한 건설업계 비리 정도로 덮힐 뻔했던 사건을 권력이 개입된 대형 비리사건으로 파헤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 씨와 만난 적이 있거나, 그의 수첩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은 밤잠을 설치며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형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