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질환 조기진단에 획기적인 전기 마련

미세 온도차를 이용한 ‘분자위치제어기술’ 개발

2011-01-07     공동취재단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진행된 인구의 고령화, 건강에 대한 관심의 확산 등은 질병의 조기 진단에 대한 중요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기진단이 치료 성패를 좌우할 만큼 큰  힘으로 작용하면서 미세한 농도차이에 의해 물질이 움직인다는 원리를 이용, 100만분의 1m의 작은 공간에서 단백질, DNA, 박테리아 등 생물겴피隙岵막?중요한 분자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암, 치매 등 주요 질환의 조기진단을 위한 전기가 마련되었다.

고려대학교 최연호 교수(생체의공학과), 서강대학교 강태욱 교수(화공생명공학과),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학(UCBerkeley) Luke P. Lee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빛을 나노구조체에 조사할 때 발생하는 온도차를 이용한 ‘분자위치제어기술’을 개발했다.
연구는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으로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단장 서상희 박사)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고, 지난해 11월19일 나노 및 마이크로분야에서 권위 있는 ‘스몰(small)’지 표지논문으로 소개되어 세계적으로 연구의 우수성을 입증 받게 되었다.
                                                                                   
미세한 온도차이로 작은 공간에서 분자 위치제어

일반적으로 물질이 공간상에서 농도 차이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실내에서 냄새가 퍼지는 확산 등)은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있는 보편적인 지식이지만, 물질이 미세한 온도 차이에 의해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기 어렵다. 최연호 교수는 “분자는 개별적으로 봤을 때 고온이나 저온을 좋아하는 특이한 성질이 있으며, 분자들을 원하는 곳에 국소적으로 모으는 방법을 찾던 중 온도차에 대한 분자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이번 연구를 착안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공동 연구팀은 50nm(나노미터?m의 10억분의 1)의 지름을 갖는 금 나노입자를 유리 위에 올려놓고 붉은색의 레이저를 조사함으로써 나노입자와 주변사이의 온도차를 유발하여 주변의 DNA를 한 곳에 모으거나, 다시 흩어지게 하는 등 분자를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까지 기술들은 세포와 같이 비교적 크기가 큰 물질에 대한 위치조절은 가능했지만 단백질, DNA 등 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의 위치를 조절하는 데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빛에 의해 유발되는 온도 차이를 바탕으로 손쉽게 분자들의 위치를 제어할 수 있다. 특히 시료의 양이 적고 농도가 적은 경우에도 검출 위치에 많은 양의 분자들을 빠르게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대상 분자를 검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연구로 평가 받는다. 이는 기존의 검출방법이 검출감도가 낮고, 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검출시간이 길었던 한계점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뿐 아니라 암이나 치매 등 주요질환의 조기진단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수력도약 현상 이용해 세포 컨트롤 기술 개발

미세 온도차를 이용한 ‘분자위치제어기술’을 개발한 공동 연구팀은 이에 앞서, 2010년 10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력도약현상(hydraulic jump)을 마이크론 세계에 적용해 ‘미세입자 위치제어 기술’을 개발에 성공했다. 수력도약이란 강물 등의 유체가 빠르게 흐르다 갑자기 속도가 줄어들면 운동에너지가 위치에너지로 바뀌면서 물체가 높이 올라가는 현상이다. 물이 댐 경사면을 따라 방류될 때 아래 부분 수면과 만나는 부분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다.

공동 연구팀은 중간부분이 볼록한 마이크로관을 설계해 이 관을 통해 흐르는 세포 등 마이크로 입자가 볼록한 부분에서 수력도약 현상에 따라 속도를 잃고 정지하는 구조체를 설계했다. 기존 바이오칩의 경우 구멍 속에 분석이 필요한 세포를 넣어 놓았기 때문에 작업이 끝난 후 이를 제거하기 어려웠지만 이들이 개발한 마이크로관은 모양, 입자의 크기와 속도에 따라 입자를 원하는 위치에 고정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로 인해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고 원형 그대로 고정해 연구자가 원하는 세포반응을 연구하고, 사용된 세포를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어 기존 방법보다 50% 이상의 비용절감이 가능해졌다.
공동 연구팀의 100만분의 1μm(마이크로미터) 수준의 공간에서 세포나 박테리아 등의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연구결과는 응용물리학 분야 학술지인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Applied Physics Letters)’ 11일자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되는 쾌거를 달성했으며, 신약개발이나 암세포 등 단일세포 대량분석의 가능성을 열었다.

암, 치매 등의 조기진단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

‘분자위치제어기술’은 암, 치매 등의 질환의 초기 진단을 하나의 칩으로 검사 할 수 있는 기전을 마련했다. 이 기술은 시료의 양과 농도가 적은 경우에도 많은 양의 분자들을 빠르게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소량의 혈액으로 간편하게 환자를 선별하고 치료 효과를 판정하는 검사로 활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각종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상용화를 위해서 공동 연구단은 각각의 암 표식(마커)을 알아내기 위한 분자 검출 연구와 실제 검사할 수 있는 바이오칩을 개발하게 된다. 더불어 공동 연구팀은 현재처럼 역할 분담을 통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할 경우 5년 후에는 실용화 단계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정확한 조기진단을 통한 질병예방에 앞장설 것으로 예상된다.  

융합 학문의 일장일단(一長一短) 성질을 강조하는 최연호 교수는 “같은 현상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각각의 새로운 현상으로 규명될 수 있습니다”라며 기존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융합연구를 위해서는 타 분야의 전공을 수용하고, 함께 노력하려는 연구자의 넓은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더불어 융합학문을 전공하는 후학들에게는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만 쳐다보지 말고 전체의 숲을 보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나무 자체도 자세히 보일 것입니다”라고 조언했다. 즉 폭 넓은 융합학문을 위해서는 폭 넓은 지식과 다각도의 시각에 대한 수용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설명이다.우리나라 사람 3명 중 1명이 걸릴 정도로 우리에게 흔한 병인 암의 조기 검진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재. 최연호 교수를 비롯한 공동 연구팀의 밤낮 없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